이 글은 코로나 상황에서 진행한 특별한 연말 파티에 대해 다룹니다.
최근 몇 년간 운영되고 있는 비공개 디자이너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이름 없는 디자이너 사조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현업에 계신 다양한 IT 디자이너분들과 메신저 슬랙을 통해 소통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2021년이 지나기 전, 송년회를 진행하는 것으로 조금 더 밀접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사실 이런 송년회가 처음은 아니에요. 사조직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연말 파티(혹은 비슷한 타이틀의 모임) 계획을 세우고, 한 해에 대한 회고와 함께 다음 해를 고민하곤 했거든요. 다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진행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 아래, 다 함께 조금은 특별한 송년회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이렇게 연말 파티를 계획하는 시간이 굉장히 기쁜데요,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고 계시는 디자이너 분들과 생각을 나누는 것 자체만으로 도움이 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가기 때문인 것 같아요.
... 이렇게 일 핑계를 대고 좋은 사람들과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이게 매년 재밌게 연말 파티를 디자인하고 참여할 수 있는 진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준비 과정을 돌이켜 보니 디자인 프로세스와도 닮아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연말 파티를 ‘디자인' 했다고 느껴지기도 했어요. 일반적으로 디자인할 때 브레인스토밍, 리서치, 실행, 피드백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 글을 쓰면서 전체 일정을 확인하니 비슷하게 진행된 것 같았거든요. 디자이너는 어떤 식으로 연말 파티를 디자인했을지 함께 확인해 볼까요?
맨 처음으로는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내고 수렴해보려고 했어요. 여러 디자이너 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주신 덕분에 이번 송년회를 착실하게 준비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분들을 알아보는 시간, 회고, 일 관련 썰, 포트폴리오 대공개, 콘퍼런스, 이직 관련 토픽 등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오갔습니다.
어느 정도 의견이 오간 후에는 송년회에 필요한 것들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었어요. 사조직의 수장이자 정리 왕이신 현지님의 일감 분배와 함께 여러 의견을 효과적으로 나누고, 빠르게 행사에 필요한 요소를 준비해나갈 수 있었어요(저는 사진 찍기와 글쓰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행사 계획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했어요. 코로나가 심해져 방역 수칙이 바뀐 것인데요, 코로나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송년회를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렇지만 송년회를 너무 하고 싶었던 우리는(...) 새로운 방역수칙에 맞게 수정이 필요한 것을 재논의 & 결정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송년회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빠르게 논의한 덕분에 무사히 상황에 맞게 행사 준비를 마칠 수 있었어요. 화상 비대면 참가자 분들과 실제 장소에 참석하실 분들을 함께 모집하는 식으로요. 개인적으로는 최초로 참여한 하이브리드 비대면 행사였어서 오히려 새롭고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연말 파티가 하이브리드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만큼, ‘그날 뭐하지’ 팀이 세심하게 신경 썼던 점은 비대면 구성원이 소외되지 않게 하는 것이었어요. 이를 위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1. 모두가 서로를 확인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2. 모두가 실시간으로 재밌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위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현장 참여자 모두가 노트북을 지참했고, 이렇게 모두가 참여하는 송년회를 나름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실제 파티는 ‘장소 대관' 팀이 꼼꼼히 조사해 대관한 카페에서 ‘사실 먹으려고 모인다’ 팀이 준비한 파티음식과 함께 진행되었는데요, 원격 참가자 분들도 각자 음식을 가져와 함께 식사 시간을 가졌어요. 관찰하며 대화하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모두 챙길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송년회 세션은 ‘그날 뭐하지' 팀이 담당했는데요, 다양한 아이디어 중 이번 송년회에 잘 맞을 것 같은 재밌는 컨셉으로 진행해 주셨어요. 디자이너 사조직에 새로 오신 분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분들도 있다 보니 서로 재미있게 알아갈 수 있는 아이스브레이킹 세션을 촘촘히 구성해 주셨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서로의 MBTI 설문도 준비해 주셨어요.
설문을 취합해 알아본 송년회 참가자 MBTI 비율인데요, 어떤 분이 어떤 유형일지 서로 맞춰볼 수 있도록 세션을 구성해 주셨어요. 다양한 유형의 디자이너가 참여해 주셨는데요, 그중에서도 희귀하다고 알려진 ENFJ가 세 분이나 계셨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전체 인구 중 단 1%만 이 유형이라고 하네요!)
통계에 등장한 MBTI만으로는 힌트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미리 설문으로 받아둔 개개인의 키워드를 차례차례 공개했어요. 세 가지의 키워드 힌트와 함께 하니 다양한 디자이너 분들이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고, 이후로 대화할 때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키워드 퀴즈 세션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해 주신 다정님 감사합니다!)
잠시 세션에 사용한 툴 소개를 할게요. 피그잼이라는 이 툴은 모두가 만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화이트보드 툴로,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소통하기에 좋고, 직관적인 툴이라 쉽게 익혀 바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요. 최근 여러 회사에서는 이 툴을 사용해 회의를 하는 등 인기를 얻고 있는 툴입니다. 마침 이번 하이브리드 송년회 성격과 잘 맞아 피그잼으로 참여 세션을 준비해 주셨고, 당일에 링크를 클릭해 바로 세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셨어요.
이제 서로에 대한 힌트도 얻었겠다, 실시간으로 놀 수도 있겠다, 실제로 어떤 분이 어떤 유형일지 맞춰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저는 거의 하나도 못 맞췄지만... 어떤 분에 대한 설명일지, 누가 어떤 유형일지 함께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맞춰보며 공개된 정답! MBTI 세션이 끝날 때쯤에는 서로에 대해 훨씬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어요. 모두 재미난 키워드였지만 타로 마스터와 아프리카가 특히 핫했던 키워드였던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해 조금 알게 된 다음에는 본격적인 송년회 관련 질문이 이어졌어요. 2021년에 했던 것, 2022년에 해 보고 싶은 것 등등을 각자 적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업무, 공부, 이루지 못한 목표, 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좋았던 것은 업무 관련 키워드들이었는데요, 피그마, 디자인 시스템, A/B테스트, 다양한 도메인 등 여러 디자이너 분들이 각자 디자이너로서 일하며 고민했던 것들, 시도했던 것들을 함께 바라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2021년에는 참가자 분들 중 유독 이직이 많았던 한 해이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이직한 분들, 현재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 등 각자의 커리어 관련 고민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들어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어떤 기준을 갖고 계신지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저 자신의 목표나 기준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마무리는 리뷰와 함께! 다양한 세션을 진행하며 서로가 한 일, 할 일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렵게 기획하고 진행한 세션이었지만 그만큼 밀도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의 2022년 계획을 응원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직무, 다양한 필드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들과 송년회를 같이 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코로나가 저희를 더욱 창의적으로 만들어 주어 특별한 연말 파티를 디자인할 수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코로나가 빨리 끝나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2022년 한 해 계획하신 것들이 잘 풀리기를 바랄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