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7년 유럽에 독일 워킹 홀리데이로 처음 왔다. 그 전에는 가끔 대학교 친구들이 방학 때 유럽여행 간다 해도 그다지 끌리지도 가야 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에, 아니면 혹은 약간의 막연한 두려움으로 유럽 갈 생각도 못했다. 유럽에 도착한 첫 해, 그 해 크리스마스부터 2018년 새해까지 나는 홀로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는 게, 크리스마스 당일 거의 모든 식당이 닫았고 몇 군데의 아시아 식당만이 영업을 했다. 그래서 호텔방에 홀로 앉아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방영하는 미키마우스와 친구들(모두 못 알아듣는 프랑스어였지만, 그나마 이게 제일 무슨 느낌인지 알법했다)을 보며 '우버 잇츠'로 쌀국수를 시켜 먹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나는 당연히 유럽도 우리나라처럼, 아니 오히려 더더욱 축제기간이고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영업하며 곳곳에 캐럴이 울리길 기대했다. 물론 가장 큰 축제고, 가장 사람들이 기대하는 기간이긴 하지만 문제는 '크리스마스 당일 전까지만'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유럽의 다른 곳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기 독일은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많은 회사, 상점들이 '반 일 근무'를 한다. 오전까지만 영업을 하고 크리스마스까지 쉬는 곳이 상당히 많다.
그만큼 유럽의 연말은 쉬는 곳도 많고, 내가 지금 재직하고 있는 회사 또한 거래처들의 휴무에 따라 연말 휴무가 계획되어 있었다. 계획에 따라 나와 짝꿍은 유럽 3대 마켓이라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의 휴가를 계획했다. 숙소를 예약하고, 기차를 예매하고, 유튜브며 블로그며 여행정보를 미리 찾아보고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회사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고, 수습을 위해서 예정되어있던 휴가는 모두 뒤로 미뤄졌다.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당연히 급하게 일처리를 해야 함을 알면서도 새삼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싶었다. 문제는 일을 수습하면서도 거의 모든 게 생각만큼, 마음만큼 따라와 주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하, 진짜 내 인생 참 내 마음대로 안되네'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었더라면 2017년 크리스마스 날 호텔에서 홀로 미키마우스(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어로 신나게 떠들고 있는)와 독대하며 쌀국수를 먹고 있어야 하지도 않았고, 내 마음대로 되었다면 나는 유럽에 한 발자국도 안 나왔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이렇게 독일에서 살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래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안된다. 내 마음대로 되면 그건 또 얼마나 지루한 인생일까 싶기도 하다.
지금도 내 친구들은 가끔 스타크래프트를 한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소질이 영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컴퓨터와 1:1로 해도, 대부분 졌다. 나는 초등학교 때 영단어를 외우지는 않았지만, 스타크래프트 치트키는 외웠고, 지금도 거의 대부분 생각이 난다.
돈과 가스를 단번에 올려주는 'show me the money', 적의 움직임을 일일이 찾지 않아도 볼 수 있는 'black sheep wall', 적에게 아무리 두드려 맞아도 전혀 피해를 받지 않는, 무적의 상태를 유지하는 'Power overwhelming' 등 치트키를 쓰면 내가 아무리 못해도 질 수가 없었다.
이런 치트키들은 게임을 즐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까? 전혀 아니었던 것 같다. 딱히 이기고자 하는 마음도, 노력도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오히려 내게는 흥미가 떨어지는 게임이었다.
정말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간혹 쓰는 치트키는 어쩌면 게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너무 힘겨운 상황에서, 어쩌다 보니 쓰게 되어 버린 '엄카'(엄마 카드)가 한줄기 빛이 되듯 말이다.
치트키를 쓴 게임과 같이,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인생은 재미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처음 느끼는 내 마음대로 되는 인생은 재미있다 느끼겠지만, 매일이 그렇다면 어느새 지루해질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은 더더욱 재미가 없겠지만, 우리 인생을 들여다보면 대게는 또 그렇게까지 모든 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힘들겠지만, 노력하다 보면 내 마음에 100프로 들지 않아도 더 나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나를 끝없이 괴롭히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놓아버리면 그만이었으나, 어떻게든 다 나은 관계를 만들어보고자 노력하다 보니 나를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그저 내가 그 관계를 놓아버리면 되는 거였는데, 또 그게 쉽지는 않은 것도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정말 원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최민식)은 세관직원에서 갑자기 조직 폭력배 일을 최형배(하정우)와 함께 하면서 부산 바다에서 이 명대사를 뱉는다.
내 같은 기운을 가진 놈은 군인이 되어야 맞는 긴데. 으이?
인생 꼬이따 꼬이써.
이때 최익현은 내 인생 꼬였다는 대사과 달리, 아주 밝은 표정으로 대차게 웃으며 말한다. 최익현은 지금까지 살았던 인생과, 또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게다가 그의 기운과 달리 살아가는 인생에 정말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해 이렇게 얘기했을까? 적어도 이 당시에는 그의 표정과 웃음소리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인생 재밌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인생은 원래 예측할 수 없고, 그 예측할 수 없는 유동성이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놀랍게도, 안도하게도 한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 덕분에 보험회사도 운영이 되는 것일 테고, 숙소 예약 사이트에는 '무료 취소 가능'이라는 옵션에 힘을 싣고 광고할 것이며, 그 취소 가능의 일말의 가능성도 생각지 않았던 나는 이렇게나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인생이 내가 앞으로 계속 살아나가야 할 인생이라면, 원래 그런 것임을 받아들이고 앞으로는 취소 가능 옵션에 한 번쯤 눈을 돌려보는 정도의 대비책을 살며시 옆구리에 끼고 산다면 되지 않을까?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에 슬퍼하거나, 자책하거나 혹은 절망하지 않으며 말이다.
당연히 우리는 모두 계획에도 없던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달라진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만, 진흙 속에서도 꽃이 피어나듯 그 안에서 새로운 일상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코시국속에서도 모두가 메리 크리스마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