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 mark Jan 02. 2022

잘 울기,
그리고 잘 웃기.

 나는 어렸을 적부터, 아니 오히려 지금은 덜 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정말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말 그대로 툭하면 울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댐도 설치하고, 벽도 두툼하게 만들며 수위를 높여 눈물이 예전만큼 쉽게 흐르지 않도록 눈물샘에 정비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뚫려버린 눈물샘은 비교적 눈물을 자주 흘려보내는 편인 것 같다.


 싸이월드 시절, 아마 우리가 모두 기억하는 그 '짤'처럼,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뭐 상황이야 다양하다. 아무래도 대다수가 공감할 만한 가족과 관련된 눈물샘 자극 콘텐츠에 가장 쉽게 반응한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언포기버블'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역시 '산드라 블록'의 연기력에 감탄을 함과 동시에 그 어떤 한 장면(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구체적으로는 적지 않겠지만)에 흐르는 눈물에, 다시 눈물을 참으려다가 더 크게 터져버렸다. 물이 콸콸 흐르는 호스도, 막고자 호스 끝을 막아버리면 오히려 더 큰 물살이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언포기버블. 최근 넷플릭스 영화 중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중 하나였다.


 슬픈 사랑이야기에도 물론, 눈물이 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보다는 가족 관련된 이야기에 눈물이 더 많이, 자주 나는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이 공감하지 않을까.

 초등학교 때 만화책을 읽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었던 책도, '아기와 나'였다. 그렇다. 아기와 나는 순정만화다. 분명 순정만화 코너에 있었으니 순정만화라고 봐야지.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부터 싸우고, 죽이고, 그러다 갑자기 친구가 되는 소년 만화 쪽 보다는 순정만화 코너 쪽에서 만화책을 빌려보곤 했다.

 사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 내가 갑자기 왜 눈물이 흘렀는지. 다만 가족 이야기였고, 매우 슬펐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음, 또 어떨 때 눈물이 흐르더라. 아, 가끔 멍하니 음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때도 있다. 이 순간은 특별히 내가 슬프다거나, 눈물 흘릴 '준비'가 되어있을 때가 아니더라도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가령, 최근에는 출근길에 창밖을 보며 아델의 새 앨범을 듣다가, '울컥'하고는 눈물이 고여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단순히 가사가 슬프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었고(물론 가사의 내용을 알고 나서였기에, 슬픈 내용의 음악이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고 그 음악에 감동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아델의 '21'앨범은 군 시절 내가 가장 자주 듣던 CD 중 하나였다. 아델의 앨범 제목은 녹음 당시 아델의 나이를 따서 지으니, 이번 '30'앨범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뒤 발매된 앨범이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도, 지금도 나는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고, 감동받을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자, 감사함이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을지 모른다.



 짝꿍과 영화를 보다가도,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도 자주 눈물을 보이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농담 삼아, 자주 우는 나를 비꼬는 장난을 치고자, '남자는 태어나 3번만 운다'를 외치곤 한다. 물론, 워낙 자주 울다 보니, 짝꿍은 한 달에 3번? 아니, 하루에 3번?이라고 되묻곤 하지만.

 여하튼 누가, 언제 했는지는 모를 저 '남자는 태어나 3번만 운다'는 이야기를 나도 언제인지는 모르나 분명히 들어본 이야기다. 

 그 세 번은 아마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로 기억하는데, 당연히 저 상황에는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우린 사소하게라도 울 일이 참 많다.

 책상다리에 새끼발가락이 걸려 찧었을 때라던가, 오늘은 매콤하게 먹어보자 하고 평소보다 고춧가루를 조금 더 넣었는데 엄마표 청양 고춧가루여서 흐르는 땀만큼 눈물도 흐른다거나, 혹은 좀 더 큰 슬픔으로는 연인과 헤어졌다거나(혹은 사람에 따라서 사귀기도 전에 차였다거나...(너어는 진짜) )

 살다 보면 그만큼 울 일이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물에 관대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눈물이 많으면 울보라고 하는데 자주 웃는 사람에게 웃음보라고 하던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데. 그럼 불행해서 우는 게 아니라, 울면 불행해지는 건가. 더 나아가 왜 하필 '남자'라는 이유로 태어나 3번만 울어야 한다는 저런 말이 있는가. 아니 뭐, 남자는 좀 울면 안 되냐는 말이다. 슬프면 울 수도 있고,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감동받아 웃을 수 도 있는 건데. (사실 아무도 뭐라 안 함...ㅎ)



 사람에 따라서 누군가는 좀 더 슬픔에 예민할 수 있고, 보다 남들의 감정에 더 몰입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만큼 웃을 일도 많다고 본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혹은 노력, 열정 등에 함께 감동하는 사람은 그만큼 그들의 행복에도 보다 더 공감하고, 같이 웃을 준비도 되어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감정을 숨길 줄 알아야 하고, 드러내지 않아야만 하는 게 어른이라면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먼 것 같다. 그리고 그 감정을 나에게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숨기는 게, 만약 그게 어른이라면 나는 그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다.

 차라리 어린아이처럼 울고, 웃고, 다시 울고, 또 웃으며 내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