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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Jan 15. 2022

병명은 '우뭇가사리 중독'입니다.

 주말을 시작하는 금요일 밤, 난 꿈을 꾸었다. 일어나서 몇 분간은 현실인지 꿈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꿈에 잠겨있었다. 일어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웃기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면이 너무 많은데 꿈속에서는 그렇게나 진지했다. 뭐, 사실 내가 꿈속에서 개연성, 현실성을 따진다면 못 꿀 꿈이 훨씬 많겠지만.


 내용은 이렇다. 꿈인 만큼 앞뒤 없이 몇 장면들이 기억이 난다. 꿈의 내용은 따로 구분하여 적어보고자 한다. 

 비가 오는 밤거리였고, 나와 가장 친한 친구 두 명과 우산도 쓰지 않고 후드를 뒤집어쓴 채 쏘다니고 있었다. 꿈속의 나는 시한부였다. 가족과 나만 아는 사실이지만, 몇 개월 못 살 거라고 했다. 병명은 '우뭇가사리 중독'이었다.

 조심스럽게 혹시라도 누군가라도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 검색했지만 다행히도 혹은 당연히도 이런 병은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우뭇가사리 중독이라니... 우뭇가사리라면, 한천, 젤라틴, 즉 묵 만들고 젤리도 만드는 재료다. 우뭇가사리라니. 게다가 중독으로 몇 개월 못 살 거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의사가 돌팔이가 아닌지 의심해야 되는 게 먼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뭐, 꿈이니까.



 우리 셋은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계속 술을 마셨다.
 아니 먹었다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꿈속의 술은 특이하게도 분명 한 컵 안에 들어있는 약밥 같은 달큼한 쌀밥을 먹는 형태였는데, 그게 술이었다. 여하튼, 술을 마셔도 취하지도 않았다. 꿈이라서 취하지 않은 건지, 꿈속의 '나'는 취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취하질 않았다.

 술을 마시는 게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해야 얼마 남지 않은 생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기분도 좋아졌다. 나는 이 병도,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받아들이지 못한 동시에, 어쨌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서 무섭기도 하고 왜 나인지 이해도 안 됐다.

 현실의 나는 술을 좋아하지도, 잘 마시지도 않는다. 다양한 음식에 각각 매력이 다른 술을 '페어링'해서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럽지만, 나는 한 잔만 마셔도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그냥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벌겋게 변하고 잠이 쏟아져오는 '알쓰'일뿐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려고 술을 마신다라는 이유는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나마 스페인 여행 이후로 짝꿍과 집에서 '띤또 데 베라노'라는 와인에 레몬 환타를 섞어 마시는 술을 제외하고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때문에 나도 한두 잔 정도 같이 한다는 개념이 더 강한 것 같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도 재미있게 놀 수 있고, 술을 마시면 오히려 늘어지는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꿈속에 내가 왜 그렇게 계속 술을 마시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꿈속의 나는 도저히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술을 마셔서 가까스로, 내 남은 삶에 대해, 혹은 내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내 기분을 그냥 하릴없이 가라앉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꿈일 뿐이지만, 나는 그 꿈속에서 크나큰 상실감을 느꼈고 채울 수 없는 그 빈 곳을 계속 술로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목적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계속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가는 중에는 냇가 옆을 지나 내리막길이 있었는데. 돌계단으로 되어있었고, 자칫하면 발을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길은 많이 파여있었고, 냇가 물이 흘러넘쳐 옷도 젖기 십상이었다.

 할머니 한 분과 학생들이 지나가는데 우리는 처음에는 먼저 지나가실 수 있게 옆으로 비켜서서 있었다. 하지만, 길은 가파르고 비는 쏟아졌고, 냇가에서 흘러넘친 물은 점점 불어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먼저 계단 아래로 내려갔고 친구들은 할머니가, 학생들이 내려오는 걸 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그런 상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계단의 아래 부분은 끊겨있었고, 우리는 내려왔지만 할머니도 학생들도 뛰어내릴 수도 없기에, 아래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안아서 받아줬다. 사람들을 돕는 친구들을 보다가, 나는 그제야 내 세상에서 빠져나와 돕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한 명씩 도우며, 나는 조금씩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기분도 나아짐을 느꼈다. 그들을 돕기 위해 안아 들어 올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꿈이 그러하듯, 장면에 대한 모습보다는 감정이 많이 남는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실제로 따뜻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성자도 아니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남들의 고통이나, 혹은 그들의 어려움이 내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던 것도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도우면 더 빨리 끝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을 도우면서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절벽처럼 계단이 끊어진 곳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안고 받아서 내려주는 그 과정에서, 내가 그들을 도우려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들은 내게 온기를 전해줬고,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나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 걷다가, 평소에도 자주 가던 동네 시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마 어렸을 적부터 자주 보아온 것 같은 야채 가게 아주머니는 내게 어머니 가져다 드리라며, 배추 하나를 가져가라고 하셨다.

 나는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려 하더니, 마음을 바꿔 아주머니께 달려가 밝은 표정으로 배추를 받아 들어 감사하다고,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눈다.
 마음속으로는 제가 많이 아프다고, 어쩌면 마지막으로 뵙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저 웃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장면이 꿈의 마지막이었다.

 이 장면을 끝으로 꿈에서 깨서, 몇 분간은 베개에서 머리도 떼지 못하고 심장만 쿵쿵 뛰며,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내게는 이 꿈이 꽤나 충격이었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 이른 아침에 이렇게 글로 옮기고 있다.(지금 시간은 토요일 아침 7시 35분을 막 지나고 있다.)


 특히 가장 일상적인 일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너무나도 소중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봐오던 야채 가게 아주머니와 웃으며 대화하는 순간조차도 이렇게나 소중한데, 하물며 가장 가까운 내 가족, 내 친구들과의 일상의 기억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보내기 싫고, 아쉬울까.



 꿈에서의 내 병명은 우뭇가사리 중독증이었다. 실제로 있지도 않은 병이거니와, 있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 잘 먹지도 않는, 아니 심지어 어떻게 먹어야 중독이 되었을까 싶은 우뭇가사리라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런데, 내 꿈에서 병명만 지우고 나면, 그 실존하지 않는 병명만 바꾸고 나면 모든 게 너무도 현실에서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을 감정들이 남는다.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두려움, 내가 앞으로 무엇도 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상실감, 타인에게서 받는 위로, 따뜻함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병명을 '세월이 흐름', 남은 몇 개월을 '수십 년'으로 바꾸고 나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 꿈은 그저 현실성 없는 꿈이 아닌 게 되어버린다.


 오늘 나의 꿈은 그저 꿈이 아니라, 이 감정들이, 또 감상들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내 삶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순간에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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