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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깨는 현석이 Dec 12. 2023

they, them. 1. 조우

민성우 입학

#1. OT.

  반원형 계단식 강의실에 흰 형광등. 적당히 무난한 나무색 책상이 강의실 모양을 따라 층층이 줄지어 있다. 나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 앉은 의자들과 더 높은 윗 계단의 책상 사이를 비좁게 지나가 겨우 남은 중간 자리에 앉는다.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금새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숨이 가빠진다. 어디서 갑자기 시작된지 모를 불쾌한 활력이 감당이 안된다. 급하게 뛰어오지도 너무 덥게 입고 오지도 않았지만, 땀이 비오듯이 흐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숫자를 열부터 하나까지 거꾸로 센다. 온 몸의 혈관 구석구석까지 피가 너무 빨리 도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까지 계속 센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히터를 너무 세게 틀어놓아서 후덥지근하고 건조한 공기는 콧구멍에 턱 걸린다. 답답하게 내뱉는 공기가 혹시 나오다 목에 걸려 기침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내 숨소리가 너무 덥고 답답하고 시끄럽다. 옆자리 사람이 나를 의식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공기를 들이쉬고 내뱉는다. 그리고 다시.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민성우."

"네."


이름이 불리고 잠깐 대답을 하며 고개를 든 그 찰나에 금방 귀까지 빨개진다. 서로 경계를 하는건지 아니면 여기 모인 사람들 중 나만 경계의 대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몇 몇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고, 강단에 선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히터때문인지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 출석을 부르고 있나. 땀은 계속 흐르는데 콧속은 건조하게 말라 뜨끈하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입은 옷을 모조리 훌렁훌렁 벗고 온 몸에 찬 물을 끼얹고 싶다. 나는  별 수 없이 다시 숫자를 센다.


"자, 00학번 신입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경영학과 학생회장 김동현이라고 합니다."


비쩍 마른 공기를 깨는 아이들의 박수소리. 나는 아주 조금 고개를 들고 박수소리에 조용히 묻힌다.


"오늘 여러분은 새터를 위해 모였습니다. 맞죠?"


네- 하는 대답이 간헐적으로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나는 그 새에 헛기침으로 목을 한 번 가다듬는다.


학생회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주변에 가득 앉은 아이들은 한번씩 웃었다가 뭔가를 속삭였다가 받아 적었다가 한다. 나도 들어야 되는데. 나는 펜만 간신히 들고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계속 한다. 학생회장의 말은 야속하게도 계속 이어진다. 아무래도 쉬는 시간 까지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 일어나면 사람들이 쳐다보겠지. 첫날이라고 괜히 입고 온 단추 있는 셔츠가 너무 젖어서 주변에서 힐끗힐끗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견디기가 힘들다. 나는 줄줄 흐르는 땀을 한쪽 손바닥으로 연거푸 닦아내며 반대편 손으로 셔츠 앞을 부여잡고 조심조심 일어선다. 의자와 책상 사이를 가쁘게 지나서 떨리는 손으로 문을 당겨 강의실인지 뭔지 모를 이곳의 밖으로 겨우 나선다. 밖에서 문을 조용히 닫으려는 찰나 어떤 여자애가 문을 확 당겨 열고 나온다. 나는 봤을지 안봤을지 모를 고갯짓을 설렁 하고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간다.


#2. 흡연장


세수를 하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찬 공기를 쐬야 할 것 같아 건물 밖 대리석 스탠드에 앉았다. 아까 뒤따라 나온 그 애가 담배를 피고 있다. 나는 땀범벅이 된 채 남은 물을 벌컥 벌컥 마시고 이제야 차갑고 촉촉해진 숨을 크게 내쉰다.


"뛰어왔어?"


여자애가 웃으며 말을 한다. 나한테 묻는 건가? 잠깐 정적이 돈다.


"아까 너 봤어. 나도 신입생이야."


주변에 아무도 없구나.


"네? 아, 네.."


"땀을 왜이렇게 흘려?"


"제가 원래 좀.."


"나도 신입생이라니까?"


"아, 미안."


아니, 왜 미안해. 그 애는 좀 황당해 하는 것 같았고, 질문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담배를 피던 걔는 아마 내가 어떤앤지 눈치 채고서는 말을 걸지 않기로 한 것일거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쳐다보지 못하고 옆 건물 조형물만 바라본다. 내가 먼저 일어나야 할지 아니면 쟤가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히터도 없는데 공기가 다시 뜨겁고 답답하다. 땀이 또 나기 시작한다.


"성우야!"


내 이름이 왜 불리지? 나는 아무랑도 인사한 적 없는데 누가 날 아는 걸까. 뻣뻣하게 나를 부른 쪽을 바라보니 대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야구 잠바같은 걸 입은 남자애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야 오랜만이다. 여기서 다시 보네."


아까 그 강단위에 서있던 남자였다.


아직 머리는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지만 피가 먼저 차게 식었다.

동현이다.


#3. 2학년 7반 점심시간.


남고는 칙칙하다. 하다못해 책상에 걸려있는 가방도 전부 검정 아니면 낮은 채도의 색깔들이다. 가끔 쨍한 색깔이라고는 햇빛밖에 없다. 그마저도 날이 흐리면 잘 보이지 않지만 애들은 지치지 않고 계속 소음과 진동을 만든다.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되지."


나는 조금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여자에 미친 애들의 지저분한 농담에 웃지않고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익숙한 정적. 나를 제외한 나머지 애들끼리 웃음을 참는 시선이 오가는 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동현이가 다시 나섰다.


"그래 씨 엥간히 해라 새끼들아."


그제서야 애들은 동현이를 따라 어색하게 웃는다. 석준이가 거든다.


"여자는 만나지도 못해본 새끼들이 제일 나대노."


석준이의 의도적인 시비에 애들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동현이가 어깨를 툭툭 쳤다.


"다음시간 뭐야."


"체육일걸."


"축구했으면 좋겠다."


"으 극혐"


"아니 딱 한번만 해보라니까. 괜찮다고 진짜."


"아 못한다니까."


"괜찮다고."


1학년때까지만 해도 막 친한 애들이 없었는데 2학년때 처음 만난 동현이는 항상 나를 끼워서 놀려고 했다. 동현이랑 친해지고나서 편해진게 많았다. 더 이상 급식시간에 눈치를 안봐도 됐고 이동 수업이 있으면 같은 반 애들과 어중간하게 보폭을 유지해서 혼자 걷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동현이는 내 취향이었다. 매일 데이팅 어플을 돌려보며 사진이 걸려있지 않은 또래 나이대의 사람이 동현이가 아닐까 상상하며 안녕하세요- 하고 메시지를 보내보는 게 잠 들기 전 내 음침한 루틴이었다. 너무 일반 같아서 당연히 아니겠지만 하면서도 상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4. 흡연장


"잘 지냈어?"


동현이는 내가 왜 이제야 신입생으로 학교에 왔는지 묻지 않았다. 옆에서 담배피던 걔의 시선이 나와 동현이에게 꽂히는게 느껴졌다. 동현이는 정말 아무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잘 지냈냐고 물어보는 폼이 불편해보이지 않는다.


"야 사람 인연이 참. 신기하다, 그지? 안그래도 애들한테 니 소식 물어봤는데 아는 애들이 없더라고. 연락 좀 하지 그랬냐."


"..."


"얘가 원래 숫기가 좀 없어요. 신입생이죠? 우리 성우 잘 좀 부탁해요."


동현이는 담배를  미처 다피지 못해 애매하게 자리에 껴버린 옆의 그 애한테 나를 부탁 했다.


"아, 네. 두 분은 서로 아시는 사이세요?"


재떨이에 담배를 급하게 비비며 그 애가 물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넌 삼수한건가?"


동현이는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화한 민트향 같은 게 역하게 난다.


"신입생분은 성함이 어떻게"


그 애는 동현이의 말이 다 이어지기 전에 먼저 대답했다.

"아 저, 윤연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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