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니크 3스텝

11/365 days of drawing

by 나다라











김희애에게 SK2가 있다면, 나에게는 크리니크가 있었다. 중간중간 외도가 몇 번 있긴 했어도 금세 돌아왔고 착실하고도 독실하게 크리니크 마일리지를 쌓아 왔었다.

월급 마약이 끊기고 금전적 불안감이 본격화되었을 때,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된 건 화장대였다. 가격 사악한 에센스까지 꼬박꼬박 쟁여놓고 챙겨 바르던 20대 초중반의 나는 어디 가고 없고, 점점 피부에 탈만 없다면 값싸고 양 많은 게 최고인 나로 변해갔다. 로드샵 브랜드, 이름도 생소한 중소기업 브랜드, 1+1, 짐승용량 그리고 여기저기서 받은 샘플들로 화장대가 물갈이되었다. 나이가 들면 더 비싸고 더 찐(!)하고 더 많은 종류의 화장품을 바르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당연한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다 하다 몇 개월 단위로 생기는 그 지출마저 아까워졌을 때 마침 '엄마카드찬스'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아니 안 들일 수 있어서 크리니크와 다시 만났다. 양심껏(?) 클렌저, 스킨, 로션 이렇게 3스텝만 골랐다. 다이어트를 하고 나면 먹는 양이 줄듯이, 화장품 다이어트를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했더니 이제 기본식사만 잘 챙겨도 충분하게 느껴진다. 피부가 나보다 현실적응이 빠르다.

시간은 흐르고 화장품은 야금야금 잘도 줄어간다. 어느새 노란 젤 로션은 펌프질을 할 때마다 피식피식 방귀소리를 낸다. 화장품이 떨어져 갈 때쯤 엄마카드찬스가 또 오길 바라는 건 해도 해도 너무 한 거겠지. 곧 펌프 뚜껑을 열어 탈탈 털기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벌써부터 초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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