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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씨 Oct 09. 2017

이상한 나라보다 더 이상한 전시

ALICE 전은 앨리스도 어리둥절하게 만들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 두 권의 앨리스는 (엮는 이를 제대로 엿 먹이는) 알 수 없는 명칭과 패러디, 언어유희로 가득하다. 10세의 신동윤은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이름을 읽는 데 난항을 겪다가 결국, 종이에 등장인물이나, 명칭들을 적어가며 읽기에 이르렀었다. 트위들덤이니 트위들디니 하는 이름들이 내겐 썩 어려웠다. 그래도 한 단어는 분명히 외웠더랬다. 바로, '재버워키'다. 메인 악역이라서 그런가.


재버워크, 재버워키. 사실 재버워키는 존재에 붙인 이름이기 전에 역사에 길이 남은 영문 시의 제목이다. 정확한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 탓에 옮기지는 않겠지만, 궁금하면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영문 시로 읽으면 더 이해하기 어렵다. 영어를 못하는 탓이 아니다. 이 시는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서 영어 사전에 재버워키를 '이해하기 어려운 헛소리'라는 뜻으로 올라가게 했다. 그래서 재버워키는 중요하다. 사실, 앨리스의 세계관은 '이해할 수 없음'이 중요한 키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하는 전시인 [ALICE : Into The Rabbit Hole]가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에서 진행 중이다. 오픈한 지 만 2달 째인 10월 07일에 전시장에 방문했다. 내려가자마자 날 맞이하는 참여작가의 일러스트와 ALICE라는 글자는 관람객을 참 두근거리게 만든다. 참고로, 무료 락커도 있다. 와우. 여기까지 보면 정말 좋은 전시일 거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전시는 당신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 내는 전시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 가깝다.


이 전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으로 '재버워키'한 전시다.


작품부터 들쑥날쑥


모든 걸 제쳐도 당장에 문제가 되는 게 작품이다. 우선 통일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앨리스라는 작품을 해석해봤어요.'라는 부분을 빼면 같은 장소에 모여있을 이유가 없는 작품들을 모아놨다. 이 전시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처참한 혼동을 주는데, 그게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서 더 죽을 맛이다. 


가장 큰 문제가 관람 방식의 혼용이다. 나는 작품의 관람 방식을 참여형과 관상형으로 나누고, 전시를 본다. 그런데 이 전시는 작가들에게 어떤 형태의 전시를 하겠다고 요구하지 않은 모양이다. 참여형과 관상형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어, 이건 타도 되는 거야?'나 '이건 뭐 안 움직이는 거야?'라는 질문을 수십 번 들었다. 물론 섞여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섞여 있어도 좋은 전시는 제법 많다. 다만, 그럴 때는 관람에 있어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섬세한 배치가 필요한데, 이 전시는 계산된 섬세함은커녕 아무 생각 없이 장난감을 내팽개쳐둔 어린아이의 놀이방 같다. 작품을 관람하기 전에 관람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전시는 분명 실패한 전시다. 작품이 바뀔 때마다 집중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지게 되는 탓이고, 집중이 이어지지 못한다면 결국 실제로 제대로 본 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성의 없는 작품들도 많다. 이 부분은 지금도 화가 난다. 첫 번째 문제는 전시 기획 차원의 문제라고 보면 작가들에게 욕할 부분은 없다. 근데, 성의 없는 작품들은 정말 '그러고도 작가라고 이름 올리고 싶어요?'라고 묻고 싶어 질 정도의 퀄리티의 작품이 있다. 잠시 일본 이야기를 하자면, 후쿠오카에는 앨리스 몰이라는 게 있다. 바로 얼마 전 애인이 푹 빠져서 여행 일정 중 두 번이나 방문한 장소인데, 그곳 사진을 엄청나게 많이 찍어왔다. 근데, 그곳에 있는 인테리어가 더 수준이 높다. 작품이 아니라 인테리어다. 그래 놓고 '앨리스를 재해석했어요.'라고 말하거나, '앨리스의 ~~ 한 부분을 부각한 작품입니다'라고 해석을 써놓다니. 정말로 이곳에 '작가 OOO'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길 바란다. 작가님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


작가의 질적 차이도 문제다. 같은 전시장에서 우리는 비슷한 맥락의, 비슷한 수준의 작품들을 기대한다. 이건 성의와는 다른 부분인데, 성의 없음이 디테일을 망쳐놓는다면, 해석이 얕은 작품은 보는 이유를 없애버린다. 어떤 작품은 한없이 오래 고민하게 하는 반면, 어떤 작품은 '뭐 어쩌라고 이거 뭐. 왜 만든 진 알겠는데,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시켜서 '아- 너무 하기 싫은데...'하면서 책은 안 읽고 나무위키에 검색해보고 만든 것 같다. '앨리스'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작가가 그렇게 없었을까.


산소호흡기가 아니라 확인 사살에 가까운 큐레이션


나는 평소에 큐레이션이 산소호흡기라고 부르곤 한다. 전시에 올린 작가와 작품이 엉망이어도 큐레이션이 성공적이면 작품에 억지로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그게 큐레이터의 재주고 능력이다. 근데, 'ALICE'전은 큐레이팅이 산소 호흡기가 아니라 확인 사살에 가깝다. 안 그래도 혼란스런 작품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전시는 흐름이 있다. 그래서 스토리가 존재하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고, 처음 2번째 작품까지는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길래, '아- 어떤 느낌인지 알겠네.'라고 생각을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스토리 라인을 따라서 보여주려나보다 했다. 근데, 2번째 방을 나오자마자 순간 당황했다. 어, 왜 갑자기 오픈 월드지. 토끼굴로 떨어졌는데, 이상한 집에 있는 앨리스의 감각을 느끼게 해주려는 거였다면 성공하셨네요! 


각 전시가 방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고, 관람객이 자기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오면 된다. 순서는 딱히 없다. 처음엔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관람하는 건가 싶었는데, 전혀. 눈물 - 거울 세계 - 커진 앨리스... 전혀 맥락이 없다. 끔찍하다.


이야기 책을 해체해서 전시를 만들었으면, 흐름이 있어야만 한다. 이야기는 당연히 앞뒤 맥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중간만 뚝 떼면 이해도 되지 않고, 어색하다. 그런데 그런 잘라낸 이야기를 작가들이 작품으로 만들었으면 더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걸, 그냥 수제비마냥 툭 툭 끊어내서 흩뿌려놨으니 맥락이 없고, 집중이 안 될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올해 있었던 전시 중에 가장 최악의 큐레이팅이다.


큐레이터를 잠시 변호해드리자면, 아까 체험형과 관상형 작품이 뒤섞여 있다고 했는데, 사실 그게 큐레이션을 망친 이유다. 체험형은 오픈 월드가 돌아다니면서 체험하기에 좋다. 사실 체험형을 흐름 있게 짜두면 다들 일렬로 줄 서서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관상형은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흐름을 짜주는 게 중요하다. 여기저기 흩뿌려두고 돌아다니면서 알아서 보세요~라고 하면 집중이 끊긴다.


그런데 이 전시는 두 가지가 둘 다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픈월드에 관상형은 방으로 분리해두자.'라는 생각을 한 모양인데, 그러려면 오픈 월드 정중앙에 체험형을 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지 않았나 싶다. 결국 체험형을 먼저 해보면 어디로 가봐야지 하는 게 사라져서 다들 제멋대로 관람한다. 흐름? 안녕~ 집중? 안녕~


 마케팅이 조져놓은 관람 문화


관람을 망치는 피날레는 관람 문화다. 애초에 "최고의 셀피 장소"라고 마케팅한 순간 망했음을 직감했지만, 적중하길 바라지는 않았다. 체험형에서 사진을 찍는 건 이해하겠는데, 관상형에서까지 모두가 촬영을 한다. 줄 서서 대기하고 있는 탓에 잠시 관람하고 있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다. 애초에 보는 것부터가 힘들고...


애초에 관람 목적이 아니라 '셀피'를 찍으러 온 사람들이다 보니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엄청 찾아다닌다. 전시장에서 작품 관람을 위해 1시간 30분을 기다리라고 하는 건 처음 봤다. 모나리자도 30분 기다리고 봤던 기억이 있다. 오우.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프트숍


전시의 끝은 기프트숍이다. 난 기프트숍을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항상 하나씩은 산다. 가장 갖고 싶은 거로 하나만 골라서. 근데 그냥 핫트랙스 같다. 수첩이나 엽서, 코스터, 마그넷 같은 거만 잔뜩 있다. 참고로 도록도 없는 것 같다. 못 봤음. 어쨌건, 여기서만 살 수 있는 아트워크라고 하니 사고 싶으신 분들은 사시라. 개인적 생각으로는 여기서 안 사고 핫트랙스 가도 된다. 난 마그넷이랑 내 수첩에 붙일 스티커만 이뻐서 샀다.



총평

시작할 때 이렇게 써있었다. 궁금해지고, 궁금해진다. 끝나고 나니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대체 뭘 위한 전시였을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재버워키한 전시다.


성인 기준 13,000원의 전시다. 보그 전이나, 라이프 전과 가격이 같다. 절대로 제 값 주고 갈 전시는 아니다. 나는 50% 할인으로 6,500원으로 갔다 왔는데, 그래도 손해 본 기분이다. 대충 4,000원에서 5,000원 정도가 제값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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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버워크 조심해라 아들아!

엉망진창 작품, 숨통끊는 큐레이션을!

접접 관람객을 조심해라, 피하거라.

기대없는 기프트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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