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는 본질적 특성이라 할 만한 게 없고, 단지 여러 가지 언어 사용들 사이의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놀이language game 라는 개념을 생각해냅니다. 언어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청년 시절의 이론을 폐기해버린 거죠. 요컨대 비트겐슈타인은 이랬어요. 아, 더 깊이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니야. 언어는 그림이 아니라 그냥 놀이야, 언어는 놀이고, 언어의 의미라는 건 그 사용이야. 언어의 쓰임새, 언어가 어떻게 쓰이느냐가 언어의 의미지."
고종석,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47쪽. 언어가 게임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제게 큰 위로가 됐어요. 저는 지금 파리에서 낯선 언어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죠. 언제나 프랑스어와 영어가, 종종 중국어와 스페인어가, 가끔씩 일본어와 아랍어가 저의 일상에 침투합니다. 공부가 죽어도 하기 싫은 저는 기꺼이 비트겐슈타인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어요. 언어의 의미는 언어 자체에서 찾아지는 게 아니라 언어를 둘러싼 맥락과 언어의 용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거잖아요? 어머 저 그런 언어-게임 존나 좋아해요. 항상 텍스트보다 콘텍스트에 흥미를 느꼈거든요.
저자가 "언어에 대한 내 마지막 발언"(7쪽)이라고 밝힌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언어학 이론은 제 경험과 만나고 있어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울었는데, 프랑스어 대사를 알아듣지 못한 내가 왜 우는지 잘 몰랐지요. 다음의 문장을 읽고야 그때의 눈물을 이해합니다. "사람은 영어나 중국어나 아파치어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고의 언어language of thought'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고의 언어는 모든 자연언어들에 선행하는, 자연언어들 밑에 있는 메타언어다. 이게 스티븐 핑커의 주장이고,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이 핑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31쪽)
"C’est le meilleur Bánh Mì I’ve ever had. 내가 지금껏 먹은 반미 중 최고야." 최근 친해진 홍콩 친구 체리에게, 어느 베트남 식당을 추천하며 제가 건넨 말입니다. 프랑스어로 말하다가 현재완료를 배운 적이 없으므로 뒷부분은 영어로 말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사태를 부르는 용어가 있다는 것도 알았네요. "바이링구얼리즘 상태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 하나가 코드 스위칭code-switching이라는 겁니다 (…)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두 언어가 막 섞이는 겁니다."(86쪽)
<대부>랑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를 연달아 본 어느 날의 의문도 풀렸습니다. 같은 영어 대사인데 왜 <대부>는 잘 들리고 <미안해요, 리키>의 영어는 알아듣지 못했는지 이상했거든요.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영어, 한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존재하는 건 영어들, 한국어들, 프랑스어들, 독일어들이라는 겁니다. 존재하는 건 한국어들이에요. 한국어라는 단수는 없어요."(138쪽) 그렇다면 제가 처음에 쓴 문장을 고쳐야겠네요. 저의 일상엔 언제나 프랑스어들과 영어들이, 종종 중국어들과 스페인어들이, 가끔씩 일본어들과 아랍어들이, 침투합니다. 지금 저의 언어는, 그 수많은 언어들과 함께 섞이고 있습니다. 불순해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