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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sallypark Dec 10. 2017

지금은: 스톡홀름

빵, 테러, 그리고 히치하이크

나의 페이보릿 사람이자 나의 인생친구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마침 12월은 그녀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고, 내년의 우리는 9년지기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는 기아대책의 해외파견 봉사단원으로 모잠비크에서의 1년 간의 활동을 끝낸 후, 포르투갈과 모로코를 여행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나를 보러 스웨덴으로 왔었다. 그동안 나는 여행을 참 많이도 했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여행지의 느낌은 달라진다. 그곳이 아무리 자주 갔던 곳이라고 해도.


친구와 함께 스웨덴의 스톡홀름, 말뫼, 그리고 덴마크의 코펜하겐 여행을 계획했었다. 그렇게 친구가 스웨덴에 도착한 날 밤, 우리는 야간버스를 타러  말뫼 센트럴 역으로 이동했다. 말뫼에서 스톡홀름까지는 버스로 한 8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야간버스를 선택했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도착하기 때문에 아침에 먹으려고 집에서 미리 빵을 구워갔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빵이 오븐에서 덜 구워진 것이다! 덜 구워진 빵을 먹기도 그렇고, 버리기에도 너무 아깝고 해서 우리는 조금은 재밌는 선택을 했다.


말뫼 센트럴 역에 있는 카페나 베이커리들을 둘러보다가 서브웨이를 발견. 그렇게 쭈뼛쭈뼛 서브웨이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Hi, this might sound really ridiculous,
but we are on our way to Stockholm in 20 minutes
and we baked a bread at home
but we took it out a bit too early from the oven.
Would it be possible for our bread to be baked 
in your oven for just a bit more, please?


서브웨이의 직원 두 명이 빵! 하고 터졌다. 이런 부탁을 처음 받아보는지, 물론 우리도 이런 부탁을 해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유쾌한 에피소드로 받아들이고 서브웨이 샌드위치 전용 오븐에 빵을 다시 구워주었다. 그렇게 아직 구워지지 않아 밀가루 맛만 가득했던 우리의 빵은 어느새 노릇노릇 구워져서 나왔다! 다 구워진 빵을 다시 조심스럽게 집에서 가져온 종이 포장지에 싸서 서브웨이를 나섰다. 다시 야간버스 타러 가는 길에 우리도 서로 빵하고 터졌다. 그놈의 빵! 

그놈의 빵


다음 날 아침 7시 정도, 스톡홀름에 도착한 우리. 말뫼보다 훨씬 추울 줄 알았는데 똑같아서 당황했다. 두껍게 껴입고 갔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스톡홀름 센트럴 역 안으로 들어와 지도 하나를 받고, 스톡홀름 교통카드를 1개 샀다. 1개를 사서 4번 탈 수 있을 만큼만, 딱 4회만 충전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톡홀름 여행을 시작하려고 신나게 밖을 나서는데, 아뿔싸! 우리의 빵이, 그 빵이 사라져있었다.


안녕, 스톡홀름


빵을 반 정도 밖에 안 먹었는데 알고보니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다. 핸드폰도 지갑도 여권도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소장가치가 있는 우리의 빵을 찾기 위해 스톡홀름 센트럴 역을 다 뒤지며 찾다가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정말 맛있었던 빵인데. 



스톡홀름의 골목길들을 같이 걸으면서 바이올린 공방도 보고, 미술공방도 지나가고, 동화책 서점도 지났다. 이날따라 스톡홀름의 구름은 뭉개뭉개 피었다.




나는 예술을 좋아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살았을 적에 미술을 좋아하는 엄마와 함께 매주 미술 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배우러 갔었다. 연필로 시작했던 데생부터 콜라주, 수채화, 목탄, 색연필까지. 엄마와 함께 그림을 배우러 다녔을 때 행복했다. 대학교 때 교양으로 '미술의 문화적 이해'라는 수업도 좋았다. 그래서 박물관을 가는 것도, 전시를 보러 가는 것도, 미대를 방문하는 것도, 예술인을 만나는 것도 나는 좋다.


친구랑 스톡홀름의 거리들을 걷다가 예술 아카데미를 발견했다. 


의자 넘어 보이는 스톡홀름
창문 넘어 스톡홀름


창문 넘어로 보이는 스톡홀름을 그저 보는 것이 좋았다. 이 예술 아카데미에는 도서관도 있었는데 친구랑 함께 도서관도 구경하면서 미술 책들도 보고 그랬다.


도서관에서 


다시 거리로 나와서 우리는 스톡홀름의 모던 뮤지엄을 찾아갔다. 


내가 좋았던 작품

그리고 테러가 터졌다. 


2017년 4월 7일 금요일. 우리가 스톡홀름에 도착한 날 일어난 테러 사건이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 나는 테러가 '익숙한' 사람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살았을 때도 테러 사건이 몇 번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예루살렘 센트럴 역에서 버스 테러 사건이 있었고,  학교 수업 시간에 예루살렘 근처로 가자 지구에서 미사일이 떨어져서 지하 벙커로 내려가야 했던 기억들이 내게는 있다. 그때 살던 아파트 아래에도 벙커들이 있고, 테러 드릴은 학교를 다니면서 연습했다. 엄마와 테러가 일어나서 서로 연락이 안 될 경우 어떻게 할지 연습한 적도 많고, 몇 개의 짐을 이미 집에 항상 준비해두고 그랬다. 

그렇지만 이렇게 바로 내 코앞에서 테러를 경험한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스웨덴 현지 시각으로 테러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근처에 있었다.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던 건 모던 뮤지엄 안에서였지만, 그전까지는 몰랐다. 스톡홀름 트럭 돌진 테러 사건으로 스톡홀름의 센트럴 역 바로 앞 백화점 건물로 돌진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아침에 도착했던 센트럴 역, 그리고 지나갔단 올렌스 백화점이 타겟 장소였다. 불과 몇 시간 전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과 아직도 그 근처라는 사실이 그렇게 쉽게 현실로 다가오진 않더라. 그냥 무서웠다. 핸드폰에 쌓인 친구들의 연락들과 부재중 전화들. 페이스북에 스톡홀름으로 여행 갔다는 포스팅이 마지막이었지만, 이제는 스톡홀름 테러 사건 지역 범위에서 안전 표시를 올려야 했다. 그리고 함께 올린 스톡홀름 추모 프로필까지. 

한국에서는 그때의 스톡홀름 테러 사건이 주목을 받지 않았다. 이전 프랑스 니스 테러나 다른 테러 사건에 비하면 언급 자체도 거의 없었다. 프랑스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너도나도 페이스북 프로필을 프랑스 국기로 해서 추모를 한 반면,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의 테러는 그냥 지나가더라. 내가 제일 많이 받은 반응은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에서 어떻게 테러가 일어나냐는 것이었다. 스웨덴에서도 테러는 일어난다. 내가 살았던 말뫼의 로젠 가든이라는 지역은 거의 모든 매스컴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스톡홀름의 링케비라는 지역도 예테보리도 마찬가지. 모든 '문제' 지역의 공통점은 '이민자'와 '난민' 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것으로만 언급이 된다. 분쟁과 평화를 공부했던 학생으로서 미디어가 특정 지역과 인종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어떤 메소드로 뉴스를 전달하는지를 다루기 때문에 나의 소논문 프로젝트의 케이스도 그 지역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이민자'로 계속 자라왔던 나, 그리고 나의 '이민자' 친구들, 그리고 특정 나라와 인종이 항상 타겟이 되는 것이 그렇게 당연하지 많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스웨덴의 망명 심사를 거부당한 사람들이 돌아가야 하는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디텐션 센터에서의 사람들과 스웨덴의 망명 시스템과 스웨덴이 속한 유럽연합의 시스템의 법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누구를 위해 바뀌는지 알 필요가 있다. 난민이라는 것과 망명 신청자의 차이점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민주주의 국가로의 이미지와 복지 이미지가 큰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가려진 모습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잘못된 것을 정의롭게 심판하는 것과, 부정적 원수 이미지를 심는 것, 그리고 사람을 타겟으로 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테러는 범죄이다. 그러나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5년 11월 24일, 한참 난민 위기가 있었을 때 개정된 법에는 13개월 안에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거주가 허락이 되고, 최대 기간도 3년까지 밖에 안된다. 난민 상태에만 가족을 만날 수 있고, 보완적 보호 상태(죽음 위험 상태 경우)에서는 불가하다. 스웨덴도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처럼 받아들이는 난민 수를 최소로 제한하고 있고, 복잡한 절차를 가지고 있다. 감시 후에 디텐션 센터로 가는 원리가 아니라, 무조건 디텐션 센터로 보낸 후, 허가가 될 경우 감시를 하는 거꾸로 된 순서대로 절차가 진행된다. 게다가 미국의 대다수 감옥 시스템처럼 스웨덴도 디텐션 센터를 민영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 모두에게 비즈니스 시스템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내 방과 말뫼대학교의 난민 환영 


그래서 여행하는 것과 직접 살아보는 것이 다른 다는 것이다. 여행만 하면 모른다. 아무리 길게 여행을 해도, 살아보는 것과 너무 다르기 때문. 나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여행보다는. 그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로컬 커뮤니티에 대해 더 알아가고, 더 관심을 가지고, 액티브하게 참여하는 것이 좋다. 


테러 사건이 터지자마자 교통은 바로 통제되었다. 스톡홀름의 지하철은 다 닫았고, 도로도 통제되고 해서 버스도, 택시도 타기가 불가능했다. 이때까지 모던 뮤지엄에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에 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외곽으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예약한 에어비앤비는 브로마라는 외곽 섬에 위치했고 교통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시내를 피한 외곽 길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다만 걸어가도 걸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히치하이크를 했다. 히치하이크는 여행을 하면서 자주 했어서 문제는 없지만, 테러가 일어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낯선 사람을 과연 태워줄까가 관건이었다. 

도로에서 신호가 빨강 불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서서히 다가오는 차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Excuse me,
we are on our way to our airbnb located in Bromma island, 
and because of the recent terror attack,
all transportation is controlled. 
Would it be possible if you give us a lift nearby the airbnb?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온해보이는 스톡홀름


히치하이크를 해준 분은 프랑수아. 그분의 차에 한 시간 넘게 거의 두 시간 가까이를 이동했다. 그런데 그분의 형제의 가족이 한국 전주에서 살고 일했기 때문에 한국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천사같았다. 그렇게 통제된 도로들을 피해 도착한 에어비앤비. 하루 종일 온갖 에피소드들을 겪다가 에어비앤비에 도착하니깐 바로 긴장이 풀리더라. 호스트 가족은 안나와 토르 부부와 세 명의 아이들. 그리고 지타라는 강아지와 두 마리의 토끼들, 그리고 안나가 키우는 벌들과 가든이 있는 집이었다. 이 집은 1922년에 지어진 집으로 거의 백 년 된 자두나무도 뒤뜰에 있었다. 


우리의 에어비앤비


1998년에 여기로 이사 오신 부부, 그리고 여기서 자란 아이들의 모습이 집 안과 밖에서 보이는 듯했다. 토르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지어준 트리하우스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이었다.


트리하우스


코지하고 휘겔리한 집이었다. 히치하이킹하느라 저녁 장도 못 본 우리를 위해 토르가 근처 슈퍼마켓까지 차로 데려다주셔서 간단하게 내일 아침까지 먹을 장을 보고 왔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사온 스파게티 면을 다 쏟았다! 현관 앞에 다 흩어진 스파게티 면들을 보고 그때 얼마나 웃었는지. 우리 모두 웃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구의 핸드폰 액정도 깨졌다. 


채식주의자인 나를 위해 친구도 여행 내내 채식으로 먹는 배려를 해줘서 고마웠다. 비건 음식은 많지 않아서 없는 것은 베지테리안과 페스커테리안으로 여행 내내 먹었다.



저녁까지 먹고 나니깐 긴장이 모두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서 바로 지하에 있는 에어비앤비 집의 스웨덴 사우나를 이용했다. 딱 몇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코지한 개인 사우나가 있는 에어비앤비. 스웨덴 문화이자 핀란드 문화인 집마다 있는 사우나가 나는 좋다. 


스웨덴식 사우나

그리고 방으로 들어와서 장 볼 때 사온 포도와 집에서 가져온 쟈스민 티를 서로 마시면서 긴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서로 여행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속 깊은 대화도, 느낌도, 감정도 그렇게 나눴다. 누가 알았을까, 이번 여행이 이렇게 스펙타클하게 시작될 줄을. 서로 몇 번의 멘탈 붕괴 순간들을 지나가고, 별별 에피소드들을 겪으면서 우정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랄까. 좋은 일처럼, 안 좋은 일들도 모두 겪은 우리는 다음에 만났을 때 더 단단해져있을 것 같다. 

 

굿나잇


스톡홀름 여행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지금은: 여행 중


앞으로 매주 토요일, 저의 여행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Breakfast: http://blog.naver.com/gkdmsinj 

Lunch: https://www.facebook.com/thesallypark

Dinner: https://www.instagram.com/thesally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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