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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Apr 10. 2024

소풍 가는 길

어딜 간다고 하지만 소풍입니다 무얼 한다고 하지만 소풍 가는 길입니다.

소풍 가는 길 

                                                                        김경래


일을 나가는데 짐이 가득하다

먹을 샐러드와 국과 밥과 약간의 과일

다과가 지퍼백에 조금 넣어져 있고

생수병 하나를 준비했으며

재미삼은 미소도 허파에 넣었다
쓸개도 볕 볼 일 있으라고

숨바꼭질에 익숙한 일용할 양식을 주셨군요

찰 때 더운 음식

더울 때 찬 음식

골라먹는 재미는 재편된 하루살이에 앙숙인데

김장 때가 되면 독도 든든하게 하셨군요

먹기 위해 산다는 사람

살기 위해 먹는 이들을

먹으나 사나 떡은 빚고 산다

허파에 지퍼로 채운 재미를  

꺼내 달게 먹게 하소서

그러고 보면 먹을 것을 위해 사는데

먹자고 사는 인생을 찬양하는 우리다

배가 부른 오늘을 빗대어

먹거리에 눈독 들인 내일을 빚어낸다

떡을 빚어내고 수제비도 빚어낸다

마치 시를 빚다 시답잖은 내일만 자꾸 빚는

개살구 같은 꿈을 빚어낸다.




<단순하고 무식한 최고의 가치를 향해>


재미 삼아 미소를 허파에 넣기 좋아합니다. 바람으로 꽉 찬 공간에 미소가 들어갈 틈이 있을지 상상만으로라도 재미있습니다. 일을 가는데, 소풍 가는 미음으로 갑니다. 가방 1, 가방 2가 등장하고 그 공간들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음식을 챙겨 넣습니다.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다가, 아직도 먹는 타령하는 나를 보며 가소롭기까지 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물질이 풍요로워져도 "먹는 일만큼 중요한"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런 유치하지만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삶이 건강합니다.


이민과 노동의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를 20년 넘게 체험해 가면서 다가올 일의 무게를 더 이상 개의치 않습니다. 먹을 것 먹고, 웃을 것 웃고, 사랑할 것 사랑하고, 길동무 같은 아내가 옆에 있으면 그것이 감사고 재미죠. 단순 무식한 사상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식하고 이상적이고 복잡하게 살려고 갖은 애를 쓴 지난 세월에, 결국 남는 것 중 바로 옆의 식구와 오늘 먹는 일을 챙겨줄 수저가 으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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