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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Aug 19. 2023

내가 된다는 것 - 아닐 세스

내가 된다는 것 (Being you) / 아닐 세스(Anil Seth) 저 / 장혜인 역 / 2022년 국내 출간


서점으로


  아이를 키우기 전엔 몰랐지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 중에 하나는 백화점이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비가 와도 괜찮다. 아이가 좋아하는 슬라임 카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즐겨 찾는 서점도 있다. 이번에 아이와 함께 백화점을 들려서,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나의 첫 번째 뇌과학 책을 골랐다.

  이 책은 "의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책이다. 결론을 단순하게 말하자면, 의식이란 하나의 "환각"(제어된 환각, controlled hallucination)이다. 이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소개되는데, 구글의 "딥 드림"을 이용한 실험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D9Hy50TdsRE


 저자의 TED 영상에서도 위의 영상이 소개되니 한번 보길 바란다.

* https://www.ted.com/talks/anil_seth_your_brain_hallucinates_your_conscious_reality?language=ko


 충격적이었다. 인공신경망을 이용해 만든 증강현실을 통해 하나의 환각을 만들어 냈다. 물론, 결국은 컴퓨터로 만든 증강현실일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의 의식이 이러한 환각과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뇌과학자는 어떠한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지 조금 살펴보자.


(1) 제어된 환각 그리고 예측 기계

  

 책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지각"(인지)이라는 개념을 좀 더 세밀하게 정의하기 위해 "현상성"(또는 현상학, phenomenology)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쉽게 말하면 대략 이런 것이다. 빨간 의자를 보고 빨갛다고 인지하는 것은 "주관적"인 인식이고, 이것이 "현상학적 지각"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의자 그 자체는 못생기거나, 구식이거나, 아방가르드 스타일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주관적"인 인식이다. 그렇다면 빨갛다고 인지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빨간 의자를 보는 경험을 하는 이유는, 빛의 특정 파장이 의자에서 많이 반사되었기 때문이다. 이 빛의 특정 파장을 우리 뇌가 "빨강"으로 해석할 뿐이고, 의자 그 자체는 빨간 것이 아니다. 즉, "지각이란 주관적 경험"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지각은 바깥에서 안으로 향할 뿐만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 향한다고 한다. 우리의 눈과 귀는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고, 우리의 뇌는 두개골 안에 앉아서,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지 모르는 모호한 전기적 신호만을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의 뇌는 이 전기적 신호만을 받아서 "최선의 추측"을 통해 외부세계를 예측하는 "예측 기계"이다. 이 예측을 통해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예측을 통해 외부 세계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이어나가면 결국, 의식적 경험이란 "제어된 환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환각이든 일반적인 의식적 경험이든, 우리의 뇌가 신경을 따라 전달되는 전기적 신호를 바탕으로 예측해 낸 결과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둘의 차이점은 얼마나 제어되었는지, 또는 얼마나 정교하게 예측되었는지의 여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견 파격적인 주장 같지만, 이러한 주장은 신경과학계에서는 나름 널리 받아들여지는 주장인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매우 다양한 착시 현상(이 책에서도 다수 소개 된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우리의 뇌는 예측 기계이고, 나름 정교하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물이나 경험도 성공적으로 인식하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실험에서는 예측이 실패하여 다양한 착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2) "내가 된다는 것"


 우리의 의식적 경험이 "제어된 환각"이라는 해석을 받아들였다면, 다음으로는 "내가 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이 책에서는 "내가 된다는 것"을 여러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유기체의 몸을 가지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하나의 측면이고, "일인칭 시점"을 가지고 세상을 인지하는 것도, 의지를 경험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경험(자유의지)도 "내가 된다는 것"의 하나의 측면이다.(책에서는 몇 가지 측면이 더 소개된다.)

 몸을 가지고 살아 있다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몸"을 우리의 "몸"으로 느끼는 것일까? 이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이 하나 소개된다. 바로 "고무손 실험"인데, 실험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피실험자의 손을 피실험자가 볼 수 없는 칸막이 너머에 둔다.

(2) 고무손은 피실험자가 잘 볼 수 있는 칸만이 안쪽에 둔다.

(3) 붓으로 진짜 손과 가짜 손을 동시 쓸어낸다.

(4) 피실험자는 점차 고무손이 자신의 손인 것처럼 느낀다.(착각한다)

 착각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4) 단계 이후에 칼이나 망치로 고무손을 갑자기 공격해 보면, 어느 정도 착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실험에서 우리가 착각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뇌(예측기계)가 고무손을 진짜 자신 손으로 볼 수 있다(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예측기계 개념과 제어된 환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인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자유의지"도 같은 관점("제어된 환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자유의지"의 경험에 대한 책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해 보면, 자신이 원해서 어떤 행동을 하고,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는 자유도를 느낄 때, "자유의지"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라고 느낀다는 부분인데, 이 느낌(인식)은, 우리가 다음번엔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더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게 된다. 이 과정은"목표중심행동"이 구현된 것이며, 결과적으로 목표를 더욱더 잘 달성하게 된다.(의지의 경험은 목표중심행동을 구현하여 목표를 더욱더 잘 달성하게 만든다.) "행동"도 하나의 "제어된 환각"으로서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게 되는데(자세한 내용은 책의 5장 참조),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라는 자유도를 느낀다는 것도 동일한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제어된 환각"이라고 할 수 있다.


(3) 동물과 기계의 의식

 "살아 있다는 느낌"과 "자유 의지"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의식적 경험은 "제어된 환각"이라고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동물의 경우에는 어떨까? 동물의 경우에는, 단세포 생물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의식이 있다. 그리고 그 동물의 생물학적 특성이 그 의식의 특징을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면, 문어는 5억 개의 뉴런(쥐의 6배)을 가지고 있는데, 포유류와 달리 5분의 3은 뇌가 아닌 팔에 존재한다. 또한 포유류의 신경계에 존재하는 절연물질 미엘린도 부족하다. 따라서 문어는 크기와 복잡성이 비슷한 포유류에 비해, 신경계가 분산적이고, 반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어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문어의 의식은 어떠한 것인지), 쉽게 상상할 수는 없지만, 인간과는 상당히 다를 것은 분명하다. 초음파를 들을 수 있는 박쥐, 발이 여러 개인 절지동물,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고 날개로 하늘을 나는 새 등등의 의식의 경우에는 어떨까? 다양한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에는 기계로 넘어가 보자. 저자는 "기계의 의식"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한다. 왜냐하면 의식의 기반은 "정보처리"와 같은 기능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동물 기계 이론은 인간과 동물의 의식이 진화 과정에서 생겨났고, 발달 과정에서 우리 각자에게 나타나며, 매 순간 살아 있는 시스템인 우리의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작동한다고 본다."(p.320) 모든 의식적 경험은 자기 지속성 보호(또는 자기 유지)를 위해 생겨난 것이다. 또한 생명계에서의 자기 유지는 개체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세포 수준에서도 존재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의 기계나 컴퓨터는 "의식"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강의실을 나가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대학교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의 초반부터 물리주의, 유심론, 이원론, 기능주의 등등, "의식"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는데, 모든 것을 빠짐없이 설명해 주겠다는 깐깐함이 느껴진다. 딱딱한 느낌도 들지만 유용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잘 잡고 진행되려면, 다양한 관점에 대해서 깔끔한 정리가 분명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딱딱하기만 한 강의는 아니다.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책에 흐름에 맞추어 짧은 꼭지에 실어 두었다. 지쳐가는 수강생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고 내 마음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아이디어는 "감각과 경험이 의식을 만들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정한다"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다른 감각 체계를 가진 동물의 의식은 인간과는 다를 것이다. 다른 경험을 쌓아왔다면, 동일한 호모 사피엔스라 할지라도 의식의 세부적인 것들은 약간씩 다를 것이다. 어떤 경험이 쌓였느냐에 따라 우리의 예측기계(뇌)는 서로 다른 "최선의 예측"을 내릴 것이다. 록 음악을 많이 들어 보았는지, 강렬한 발효음식을 많이 먹어 보았는지, 하다 못해 슬라임을 많이 가지고 놀아 보았는지도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줄 것이고, 우리의 뇌는 같은 상황에서도 "제어된 환각"을 통해 약간씩 다르고 때때로 상당히 다른 것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어제 쌓은 경험은, 오늘의 새로운 나를 만들어낼 것이다.

 (p.s. 이랬든 저랬든, 책은 어려운 편이었고, 다소 오독한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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