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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May 24. 2024

배용군의 비밀 노트(외전)


https://55cinema.tistory.com/entry/%EB%B0%B0%EC%9A%A9%EA%B7%A0%EC%9D%98-%EB%B9%84%EB%B0%80-%EB%85%B8%ED%8A%B8-1


2024년 5월 23일


다음 주면 「배용균의 비밀 노트」를 쓴지 꼬박 1년이 된다. 그래서 그간 있었던 일을 좀 기록해본다.


나는 많은 야심작을 써왔고 「배용균의 비밀 노트」도 물론 그 중 하나였다. 문득 오한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한기는 책을 낼 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쓸 때조차 많은 기대를 한다. 인생을 바꿀 기대....  그러나 야심작 중 야심대로 된 건 하나도 없다. 아무튼 「배용균의 비밀 노트」는 기획할 때만 해도 굉장했다. 나는 레자 네가레스타니의 『사이클로노피디아』를 차용하고 더 나아가 물질로서 위서를 만들 생각조차 했다. 1화를 읽어보면 그 야심이 느껴진다. 1화에서 나는 거의 야수였다. 하이퍼스티션 실록소설의 야수 금동현. 그러나 나의 야심을 나도 통제할 수 없었다. 야수 탈락....  그래서 혹자의 말에 따라 '용두사미' 격의 연재로 끝나게 되었다. 다만 뱀의 꼬리로 끝날 때조차도 어떤 야심을 품고 있긴 했다.물론 그 야심대로 되지도 않았다.


야심작을 쓰려고 했지만 야심대로 되지 못했고,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그나마의 야심을 부려봤지만,

그나마의 야심조차 읽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라고, 한 2-3개월 정도는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조금 재밌는 소식들이 들리곤 했다. 배용균 감독의 비밀 노트가 대구에서 발견되었다는데요?(서울) XXX 대표님이 대구에 재밌는 소식 있다던데요?(대전) 나는 4회차의 글을 썼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4회차까지 다 읽지를 않았다! 그리고 '배용균의 비밀 노트'가 정말로 있다고 착각을 했다! 와우. 위서에 어떤 내용을 꾸밈으로써 하려고 했던 것에는 실패했지만 (연재에 이것이 픽션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픽션 안에서도 배용균의 비밀노트가 픽션이라는 것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위서 자체의 공간을 만든 데는 조금 성공한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낄낄대며 웃었다. 아니 왜 1회차 밖에 안 읽는 거예요. 읽어보면 아닌 거 알텐데, 가서 아니라고 해주세요 ㅋㅋㅋㅋ 


그리고 나는 「배용균의 비밀 노트」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트위터에서 구윤 씨가 내 야심을 정확히 읽어줬기에, 쓸 때 재밌기도 했고... 진짜라고 믿는 재밌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이제 빠이빠이, 하려던 차였다. 지난 2월이었다. 「배용균의 비밀 노트」에서 덕칠이 나에게 메일을 보낸 05월 29일로부터 정확히 9개월이 된, 02월 29일이었다.


띵동.


보낸사람: (비공개)

받는사람: likeacomet@naver.com

Sent: 2024-02-29 (목) 19:05

Subject: 배용균의 비밀 노트

뭐하시는 분인데 배감독님의 노트를 기사화 했는지? ...?


보낸사람: likeacomet@naver.com

받는사람: (비공개)

Sent: 2024-02-29 (목) 19:07

Subject: 배용균의 비밀 노트

누구시죠?


보낸사람: (비공개)

받는사람: likeacomet@naver.com

Sent: 2024-02-29 (목) 19:11

Subject: 배용균의 비밀 노트

검으나 땅에 희나백성 조감독입니다.

옛날 효성여대 캐니넷에서 감독님의 메모 자료를 찾으신거 같은데, 그걸 알려준 양반도 뭐하자는 건지?

그리고 감독님이 공식적으로 인터뷰 한것도 아닌데 그런 자료를 마음대로 기사화 해도 되는 건지?


그에게 「배용균의 비밀 노트」가 픽션이라고 친절히 알려줬다. (「배용균의 비밀 노트」 속 배용균의 말은 모두 감독이 공식적으로 인터뷰한 걸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뿌듯했다. 진짜 근거리에 있는 사람도 속일 만한 위서를 꾸미다니(비록 그가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나는 그가 궁금하다고 했다. 


보낸사람: likeacomet@naver.com

받는사람: (비공개)

Sent: 2024-03-01 (금) 18:22

Subject: 배용균의 비밀 노트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제 연락 드린 금동현입니다.

다름 아니라 '배용균의 비밀노트'를 쓴 의도를 좀 더 단순하게 설명 드리는 게 필요할 것 같아서 메일을 보내요.

저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냥 시네필입니다.

영화를 좋아해서 한국 영화사도 공부하게 되었는데요.

영화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배용균 감독 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니, (검열 삭제) 배용균 감독을 '대구 독립영화'의 아버지, 라고 말하는 것에 신물이 났어요.

이에 '배용균의 비밀노트'를 발견했다는 설정으로, 현재의 대구 독립영화 씬(?)에 '배용균-자립영화'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려고 했어요. (물론, 저 설정은 작품 속에서 픽션임이 드러나지만요) 

그나저나 배용균 감독님의 <검으나 희나 땅에 백성>은 돌이켜 보면 (주목을 받기야 했지만) 정당한 주목의 양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요즘 시네필 중에도 <검으나 희나 땅에 백성>의 대단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기회가 되시면 배용균 감독님과 <검으나 희나 땅에 백성>에 대한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시간이 되시면 답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답신은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이 이야기를 모 선생님에게 전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야 시발, 그거 배용균일 거야."


「배용균의 비밀 노트」는....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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