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은 희대의 거래 요정

티파니 목걸이 -> 테슬라

by 보리차

그녀의 별명은 부산 3억 녀였다.

가정주부인 그녀는 오직 절약하는 생활로만

첫딸이 스무 살 되던 해 3억을 모았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원하는 차를 타고, 원하는 시계를 손목에 찼지만

정작 진심으로 먹고 싶어 하는 호떡 하나는 사 먹지 못했다.

왜냐면 그녀가 못 먹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는 어느 날 가게에서 포도를 그냥 들고 나오다가 주인에게 잡힌다.

그러고는 절대 어른이 지을 수 없는 순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사는 집은 우리 집이고

그녀는 우리 엄마였다.


윤희상의 시집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에 있는 어떤 시를 좋아하는데

그 시에 엄마를 대입시켜보았다.

엄마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병을 앓았고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아빠가 엄마에게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가난했던 시절에

자신의 패물을 팔아 작은 고모를 시집보낸 점이라 했다.


엄마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난 애초에 패물 같은 건 장만하지도 않을 사람이지만

엄마에겐 그게 전부였을 텐데.


엄마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내내 작은 고모를 만나고 싶어 했다.

거동이 불편하고 말도 못 하는 상태였지만 계속 가자고 졸랐다.

작은 고모는 그 더운 여름날에도 비닐하우스에 있었다.

아니 여기서 농사지은 걸로 자식들 다 유학 보내고 그랬던 거라고?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작은 고모는 실제로도 키가 작았는데 얼굴이 너무 예뻐서

우아한 탤런트가 농촌 드라마를 찍고 있는 듯했다.


작은 고모는 항상 나를 보면 어릴 때나 나이 든 지금이나

이쁜이라고 하면서 환하게 웃는데

난 그 마음을 실제로 내 조카가 생기고 나서야 이해했다.

너무 예뻐서 그냥 이쁜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 심경을.

그 핏줄의 경이로움은 그 어떤 설명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작은 고모와 엄마는 누가 보면 친자매인 줄 알 거다.

둘만의 케미가 끈끈한 것엔 특별한 평행이론이 있었다.

남편들이 큰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들의 스케일은 귀여워’라는 듯이

막상 집안의 큰일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건 그녀들의 몫이었다.

한 나라를 왕이 통치하지만 결국 그 왕을 통치하는 건 여왕이었다.

사고 치는 고모부 뒷수습은 물론

자식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작은 고모는

그 작은 몸으로 척척 뒷바라지해주었다.

엄마도 작은 고모에 지지 않았다.

아빠가 골프에 빠지자 오빠를 선수로 키우는 걸 어레인지 했고

하다 보니 ‘이머 이 길이 아닌 가봐~’ 깨닫고

다시 노선을 변경해서 오빠에게 아빠 사업을 물려주자고 했다.

그런 빅 피쳐를 짜고 진두지휘 했던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거대한 방향 전환에 그 거침없던 용기는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일단 저지르고 보는 그 추진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난 따라갈 수가 없다.


둘이 서있는 모습이 마치 영화 <더 페이보릿>처럼 여자들끼리 정치하고

모든 스토리를 이끌고 나가는 주인공들처럼 보였다.


우린 그때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어두워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래서 일부러 이상한 농담을 하고 몸 개그를 했다.

엄마는 말을 잃고 표정도 잃었지만 유머는 끝까지 잃지 않았다.

분명 속으로는 웃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빨리 나아서 놀러 가야지”


작은 고모는 자기가 방금 한 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고 엉엉 울었다.

엄마도 따라 울었다.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그녀들도,

둘이 뭉치면 터져 오르던 걸 크러쉬도

이상한 병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고개를 허공에 쳐 박았다.

절대로 엄마 앞에선 울기 싫었다.

느려진 엄마의 발검음에 맞추기 위해 조심조심 걷던 내 보폭을 기억한다.

그날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걷던 날이다.

엄마 유품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놀란다.

역시 우리 엄마구나 하고

인생이란 결국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증명하는 거구나.

사람이 죽어도 어떤 형식이든지

그 사람이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남는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엄마가 메이킹한 내 이미지가 떠오른다.

난 공부를 잘하지도 예쁘지도 않았는데

늘 엄마가 입혀놓은 원피스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 머치 패션을 추구했다.

사진 속 나는 캠핑을 갈때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이제야 엄마의 패션열정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스카프를 리폼하고 원피스마다 바로 매칭 되게 코사지를 만들어 옷핀을 달아놓았다.

맘에 드는 페브릭이 있으면 커튼이며 식탁보며 원피스까지 해 입고서야 직성이 풀렸던 열정,

집안 구석구석 뿌려놓은 엄마만의 미감을 떠올린다.

그걸 만지작거리며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을 표정과 손끝이 단박에 그려진다.

엄마가 여기가 아닌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샤넬이 되었겠지?

그러고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철저하게 추구하고

끝까지 사수하는 끈질긴 여성을 그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건 바로 우리 엄마였다.

내가 추종하던 그 어떤 워너비보다 더 강렬하고 어마 무시한 존재가

바로 내 옆에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엄마가 살아낸 삶을 증명했다.

그녀는 ‘입는 사람’이었구나

엄마는 패션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요리연구가 등등

뭐든 나가서 사회생활을 했으면 더 잘했을 사람인데

그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집에서만 발휘하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가정주부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난 엄마가 내린 최선의 선택을 존중한다.

아빠가 엄마의 패물함을 열어서 보여주는데

그 안에는 엄마가 가꾸어온 작은 우주가 있었다.

엄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걸 즐겼다.

난 보석에 관심이 1도 없는데 어째서 저 많은 걸 가지고 있었지?

아빠는 그 보석에 얽힌 하나하나의 역사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엄마의 흑역사도 있었다.

알고 보니 엄마의 부캐는 부동산 전문가였다.

땅을 사고팔았고 사기도 당했다. 그랬다고 머리 싸매고 누워있지 않았다.

엄마는 그걸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터프한 인생 공부라고 여겼다.

그리고 남겨진 모든 물건들이 내게 묻고 있었다.

‘네 엄마는 패션피플로 살았다.

넌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래? ’

엄마가 남긴 유산은 통장으로 받을 수 없다.

다만 내가 실행해야지만 비로소 갖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아프기 전 내게 뜬금없이 티파니 목걸이를 내밀었다.

아빠가 결혼 30주년으로 큰 맘먹고 사줬는데

줄이 너무 얇아서 자기랑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상한 핑계를 댔다.

난 액세서리를 하지 않는 인간이라 단박에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몇 년째 내 양말 서랍에 처박혀 있다.

왜 하필 거기냐면 나에겐 그 목걸이가 양말과 동급으로 여겨졌나 보다.


엄마가 패물을 팔아 고모의 미래를 건설했다는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깊게 남았다.

그래, 엄마가 희대의 거래 요정이었다 이거지

그렇담 내가 그 계보를 이어야지

엄마의 스케일을 뛰어넘는 일을 벌여보고 싶었다.

그 막연한 다짐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때가 드디어 왔다.

티파니 목걸이 팔아서 테슬라 주식 산다.

안 그럼 영원히 양말 서랍 귀퉁이에서 그게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고 살 거다.

아빠가 알면 미쳤냐고 혼꾸녕 날 수도 있다.

그런데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분명 이러겠지

아주 궁금한 표정으로 “테슬라가 뭔데?”


엄마 있잖아

이제 기름 넣는 차들은 20년 안에 다 사라져, 신기하지?

나중에 내 자식들에겐

“엄마 때는 말이야, 차에 기름을 넣고 다녔었어” 이런 말을 하겠지?

핸드폰처럼 차도 충전해서 쓰는 세상이 와 버렸어

그거 만드는 회사고 10년 후에는 이게 100배가 될지도 몰라 너무 기대돼

나 이거 사는 거 어때?라고 물으면 엄마는 이러겠지

엄마만이 할 수 있는 흥 쾌한 악센트로

“좋~지!”(죠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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