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마음을 채울 때
음식이 우리 몸이 필요한 에너지를 채우는 것 이외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행복하고 감사할 일이다.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수 있고, 기대했던 맛을 음미하고, 식사를 통해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등의 일은 지구 상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그 혜택 받은 특권층 사이에서도 음식이 가지는 의미는 너무도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직업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술적인 경험을 안겨주는 작품이고, 혹은 사진의 형태로 보관하는 수집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먹을 대상을 위한 사랑이다. 어떤 때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나누는 반가움이며, 아픈 몸을 달래 주는 보살핌이고, 또 텅 빈 마음을 잠시나마 채워주는 위로이기도 하다. 그 다양한 목적과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몸을 위한 에너지뿐만 아니라 마음을 위한 양분도 얻는다.
해외생활을 하게 되면서 음식은 내게,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의미를 전해왔다. 바로 향수였다.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애국자의 정의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해외에 나가게 되면 낯섦 속에서 고향의 것을 그리워하게 되고 없었던 애정도 피어나기 마련이다. 익숙한 Comfort Zone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곳에서 누렸던 안정감과 편안함 대신 긴장감과 불안감이 동반되고, 그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흥분과 자극이 되어 엔돌핀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 또한 피할 수 없다. 그 스트레스는 익숙하지만 현재에는 누릴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하게 되는 향수로 표출되고, 향수라는 감정은 애정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그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Comfort Food를 찾게 된다. 한국어로 딱히 번역할 단어가 없는 Comfort Food는 말 그대로 먹으며 '위안'을 받는 그런 음식들이다. 문화와 개인에 따라 Comfort Food의 종류는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는 어릴 적부터 먹어 온 익숙한 음식이거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주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탄수화물이나 지방, 당분이 높은 음식들이다. 우리는 그리웠던 음식을 통해 낯선 음식으로 불편했던 위장을 달랠 뿐 아니라, 잠시나마 Comfort Zone으로 돌아감으로써 정신적으로도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해외에서 한국인들이 찾게 되는 Comfort Food는 어떤 특별한 음식보다도 한국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는 평범함 음식들이다. 그중에서도 맵고 짠 국물에 쫄깃한 식감의 면발, 그리고 큰 노력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조리되는 라면만 한 Comfort Food가 한국인들에게 또 있을까. 요즘은 해외 식품 마트에서도 라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한국음식이 필요할 때 급한 불은 쉽게 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캐나다에 처음 왔던 2002년에는 그 라면도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대도시가 아닌 지역의 마트에서도 한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시아, 특히 한국의 라면 섹션이지만, 그때는 토론토 한인타운의 한국식품점에 가야만 살 수 있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종류도 없이 서너 가지의 선택이 전부였고, 가격도 한국과 비교해 많이 비쌌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한국식품의 대체적인 가격대는 한국의 두배에서 세배 정도였던 것 같다. 가난해서 라면만 먹고 자랐다는 말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외국음식을 많이 가리지 않고 비교적 잘 먹는 나지만, 캐나다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국물'의 부재였다. 매끼 국이 있어야 식사를 하셨던 아빠 덕분에 우리 집 밥상에는 늘 국이나 찌개가 있었다. 아침으로는 뜨끈하고 맑은 콩나물국이나 소고기 뭇국에 말아먹는 밥 한술 만한 게 없었고, 저녁에는 돼지고기 숭덩숭덩 썰어놓은 김치찌개나 감자랑 애호박 들어간 된장찌개, 혹은 맛깔스러운 청국장 찌개면 하루 종일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다 풀렸다. 주말 점심에는 떡만둣국이나 칼국수가 무엇보다 반가웠고, 남은 김칫국에 살포시 떼어먹는 수제비는 엄마의 특별식이었다. 또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엄마가 꼭 끓이시던 사골곰탕은 일주일 내내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그 국물 있는 밥상이 너무도 당연했던 나에게 국물이 거의 없이 조리되는 캐나다식 밥상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특히나 일 년 중 절반이 겨울인 이곳에서 뜨끈한 국물의 부재는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도 싸늘하게 만들었다. 내가 캐나다에 처음 와서 지냈던 곳은 토론토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오릴리아(Orillia)라는 시골 동네였다. 그곳은 한국식당은 둘째치고 한식 국물 맛을 낼 수 있는 재료와 양념을 구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역시 기댈 곳은 라면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특별식 인양 아껴 먹고, 어쩌다 토론토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부족한 지갑을 털어 라면을 샀다. 고이 아껴둔 라면이 다 떨어지면 하는 수 없이 캐나다 마트 이곳저곳을 보물 찾기라도 하듯 라면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시골 마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라면이라고는 캐나다 브랜드인 미스터 누들 (Mr. Noodles)이 전부였다. 닭고기, 소고기, 야채, 그리고 동양의 맛(?) 등 여러 맛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 맛은 다 똑같았다. 그냥 맹맛이다... 게다가 면은 어쩜 그렇게 푸석푸석한지 조금만 지나도 퉁퉁 불어 버려 라면의 쫄깃한 식감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한 봉지에 50 센트라는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누들을 나의 Comfort Food로 삼을 수 없었던 이유다.
미스터 누들보다는 차라리 나았던 게 캠벨의(Campbell's) 치킨 누들 수프였다. 적어도 미스터 누들보다는 나름의 감칠맛이 있다. 손바닥만 한 캔을 따서 사골국이 굳은 것 같은 제형의 내용물을 냄비에 붓고 캔에 똑같은 양의 물을 재서 부어 끓이면 된다. 노오란 닭 육수에 스파게티를 짧게 잘라 놓은 모양의 국수가 들어있는데, 국수는 또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국물이 목적이던 나에게는 귀찮은 존재였다. 그 국수들을 대충 건져내고 거기에 폴폴 날아가는 안남미로 된 밥을 말아먹던 기억은 내 버전의 눈물 젖은 빵이다.
그렇게 서글펐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 추억이 되니, 가끔 그 노란 국물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북미인들에게 왜 이 캔 수프가 대표적인 Comfort Food의 하나인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씹지 않아도 넘어가는 물컹한 누들에 짭짤한 국물은 아플 때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어린아이들도 이 심플한 수프는 큰 거부감 없이 먹는다. 또 돈이나 요리능력이 많지 않은 학생들이 기숙사나 자취방에서 저렴하게 허기를 채우는 것도 이 노란 수프다. 라면마저 구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 캐나다 현지인들의 Comfort Food인 이 수프가 나에게도 작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2020년을 곧 앞둔 지금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그 사이 토론토 지역에는 갤러리아와 에이치마트 같은 중대형 체인 식품점들이 곳곳에 생겼고, 그곳에서 파는 한국식품도 엄청나게 다양하며 가격도 한국 현지보다 많이 비싸지가 않다.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이나 냉동식품뿐 아니라, 온갖 양념과 식자재도 판매되고 있어서 집에서 요리를 해먹기도 어렵지 않다. '먹고 싶으면 해 먹는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이곳의 한인사회가 커지고 한인타운이 커진 만큼 한식당도 많이 늘고 다양해져서, 김치찌개와 불고기가 주메뉴이던 밥집의 수준을 벗어나 치킨집이나 횟집, 중국집 같은 전문식당도 많이 생겼다. 부족한 재료와 기술로 어설프게 흉내 낸 맛이 아닌 한국과 거의 같은 맛을 내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을 때면 지금도 감회가 깊다. 졸업식과 이삿날에는 꼭 먹어 줘야 하는 짜장면, 한국의 배달음식 1순위인 짜장면, 매콤한 국물라면의 뒤를 이어 가장 인기가 많은 짜장라면을 탄생시킨 짜장면, 자장면이라는 말엔 그 특유의 감칠맛이 돌지 않아 결국 표준어로 인정받은 짜장면. 그 짜장면을 먹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던 그 시절을 지나, 이곳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언제든 짜장면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다.
하루는 룸메이트와 함께 외식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다민족의 도시 토론토인 만큼 우리의 목록에는 중국 딤섬, 이탈리아 파스타, 중동식 브런치 등등 여러 가지가 올라왔었다. 최후의 후보로 필리핀의 카마얀(Kamayan) 정식과 한국의 짜장면이 남았을 때, 나는 다양한 해산물과 바비큐 고기를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카마얀을 밀었었다. 그때 룸메이트가 주저 없이 외쳤다.
“그래도 짜장면이 더 맛있어요!”
우리는 결국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다이어트는 늘 그렇듯 내일로 미루고 짜장면을 먹으며 헛헛한 마음을 달랬다. 짜장면을 다시 먹을 수 있게 된 특권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