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데이트 - 광부씨
"저기가 무슨 회사인 거 같아?"
"스핀 마스터? 글쎄... 운동기구 만드는 회사인가?"
"흠... 내 생각엔 세탁기 만드는 회사인 거 같아."
"아! 그럴지도 모르겠네."
스핀 마스터 (Spin Master)가 실은 장난감 만드는 회사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서로 어이없이 웃었던 기억. 그 이후 나는 스핀 마스터 로고를 볼 때마다 우리의 네 번째 데이트를 떠올리며 미소 짓곤 했다. 그런데 그 스핀 마스터가 나의 퇴근길 지하철역을 점령했다. 그를 잊기로 결심한 바로 그때에.
나는 어떤 사소한 것과 연결된 인물을 매번 연상하는 능력이, 아니 그 쓸 데 없는 감성이 뛰어나다. 그것은 유전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적 홍역에 걸렸을 때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인 복숭아 통조림을 볼 때마다 내 생각을 하고, 몇 년 전 딸아이가 한국에 갔을 때 물고기를 구경하던 동네 개울을 지나가는 매번 손녀를 생각한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번 그렇게 떠올리고, 매번 그리워한다.
나는 '13일의 금요일' 영화와 관련된 무엇을 볼 때면 그 영화를 내게 처음 알려 주었던 초등학교 친구를 생각하고, 라일락 향기를 맡을 때마다 운동장 스탠드에 라일락이 흐드러지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떠올린다. 감자탕을 먹을 때면 그걸 좋아해 삼일 내 먹던 남동생을 생각하고, 아직도 바이킹이란 단어만 봐도 B를 떠올린다. 한번 프로그램된 연상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번 자동으로 작동하고, 또 너무 강력하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잊고 지내온 과거의 기억들과 그 기억 속의 인물들이 하나의 작은 소재로 인해 순식간에 되살아 난다.
그런 내게 스핀 마스터 광고로 도배된 역을 매일 지나야 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그 몇 분간 수많은 스핀 마스터 로고들이 나를 향해 날아드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우리의 네 번째 데이트가 영화처럼 펼쳐지다가 그가 나에게 이별을 고하던 그날 밤에서 멈추기가 매번 반복되었다.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그를 잊겠다고 결심한 바로 그때부터 나는, 스핀 마스터의 공격에 시달렸다. 아무래도 나는 무슨 저주에 걸린 것만 같았다. 그와 함께 할 수도, 그를 잊을 수도 없는 저주.
마지막으로 만난 그날 밤 이후 2 주간,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문자를 주고받았다. 다만 서로를 향한 달달한 표현들과 키스 이모티콘들이 우리의 대화창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나는 그날 밤의 이야기를 다시 하면 우리가 정말 끝날 것 같은 생각에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지만, 자고 나서 다시 생각하자던 N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 일이 없었던 듯 그와 나누는 대화가, 그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서서히 나를 옥죄여 오고 있었다. 그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전화통화를 제안했고 그는 멕시코 숙소에 도착하면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자정이 넘어 1시까지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에게 어떻게 말을 할까 수십 번 마음속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사를 읊조리며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 그는 무심하게도 너무 피곤해 잠이 들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정말 우리의 마지막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밤새 애끓은 내 마음을 몰라 준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나와의 대화를 피하고 있다는, 그를 만난 이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느낌이 들었던 그 순간. 그날 밤 그의 결심이 진짜였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너무 좋았던 우리가 함께 했던 어느 날, 자기도 의도하지 않게 이별을 말하게 됐다던 그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일과 가족 때문에 힘들었던 그가 나와의 관계에 대해 순간 자신이 없어지고 겁을 먹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은 아직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시간을 주면 그가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서로 만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를 잡아 둘 그가 아니었다.
밤이 깊도록 기다리며 애를 태운 나는 나대로, 나를 기다리게 해서 속이 상한 그는 그대로.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한다면 펼쳐질 상황들의 예고편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되풀이되는 과정 속에서 그렇게 좋았던 우리라도 분명 지쳐갈 것을 그도, 그리고 나도 알고 있었다. 그는 상처 주어 미안하다는 말로, 나는 우리 둘 각자를 위한 최선을 원한다는 말로, 차마 시작도 되지 못한 우리의 마지막을 받아들였다.
그와 함께 시작된 그 해 봄은 그와 함께 그렇게 지나갔다. 어느 해 보다도 따뜻하고 눈부셨던 그 봄은, 또 어느 해보다도 짧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기억들은 여름을 지나 가을이 깊도록 오래 남아 반짝여서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그 좋았었던 날들이 왜 지금 나를 자꾸만 무너지게 하나요, 그 좋았었던 사람이 왜 지금 나를 자꾸만 힘이 들게 하나요.' 라던 노래를 들으며 많이도 울었다. 나를 만나러 와 주었던 그와 손잡고 걸었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가슴을 울리던 노래도 식상해지고 똑같은 풍경은 지겨워질 거라고, 그렇게 그를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gt-JHZReBY
태어나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것이 처음이었던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함께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마음이 깨어진 것도 처음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충분조건이었던 어린 시절의 연애가 아니었다. 언젠가 그가 말했듯 삶은 늘 문제와 위기를 우리에게 던져 놓는다. 그 삶 속에서 온갖 고민과 상처로 마음이 할퀴고 지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에 맞서 치열하게 살아 나가는 것뿐이다.
그러다 특별한 누군가를 찾게 된다 하더라도, 그 치열함에 서로가 더 지치고 다칠까 두려운 마음이 서로를 원하는 마음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다. 현실을 이겨 보려는 용기는 무책임함이 되고, 용기만 있는 마음을 주는 것은 이기심이 되는 것이 어른의 연애이다. 용기가 없는 그를 오랫동안 탓하고 원망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정말 그가 나를 위해 우리를 포기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다.
웃는 얼굴로 울게 되는 노래라는 그 곡은 아직도 내 플레이 리스트에 담겨 있고, 점심시간에 더 이상 산책을 하지 않는 것은 평균 영하 10도의 추위와 발목까지 쌓인 눈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그와 처음으로 만났던 맥주집은 문을 닫았고, 스핀 마스터 역은 어느 날부터인가 헬로 프레쉬 (Hello Fresh) 역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도 헬로 프레쉬라니... 그것은 정말 저주였고 난 이제 그 저주에서 풀려난 것일까? 이제 그를 잊을 수 있을까?
'안녕 N, 그냥 생일 축하해주고 싶어서. 새해에는 당신이 찾고 있는 성공과 행복을 이루길 바래.'
한 달 전쯤, 나는 그의 생일을 기회삼아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그가 나에게 들려주었던 그 꿈을 이루기를, 언젠가는 그의 아이들이 그를 이해해 주기를, 그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그 삶 속에 잊힐 우리가 어느 날 잠시 그의 마음속에 되살아 날 때에, 미안함이 아니라 다정함으로 남아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고맙다 말과 미소 이모티콘이 담긴 그의 마지막 인사처럼.
슬픈 노래를 들으며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프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슴에 담아 둘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그는 나의 럭키 넘버 세븐이 맞았다.
사진: 브로콜리 너마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