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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 Feb 19. 2020

고구마

수확철의 고구마를 바라보며.....

회색 빛 하늘과 숨 쉬는 것도 일이었단 걸 느끼게 해주는 높은 습도.. 그리고 쏟아지는 비.

올해도 장마가 찾아왔다.

말복이 지나야 조금 살 만할 텐데.. 란 말을 의식적으로 뱉으며 여름이란 계절에 힘들어하는 나를 달래준다.    말복을 품고 있는 8월.    말복이 지나면 그나마 더운 바람이 가고 무더위가 꺾이는 것을 피부로 몇 번 느끼고부터는 8월의 말복을 손꼽아 기다렸다.


3년 전 어느 여름날.

 그 날은 아마도 8월이었을 거다.  부모님 댁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시내버스 안 차 창밖으로 보이던 무성한 고구마 잎들이 보였으니까.


어느 해에  우리 식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물려주신 아담한 밭에 처음으로 고구마를 심었다. 고추도 조금 파프리카도 조금 심었다.  농사 중에서 그나마 제일 쉬운 편에 속한다는 고구마 농사는 아담한 밭이 결코 아담하지 않은 넓이였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초보 농사꾼이었던 우리 식구들의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땅은 고구마 줄기와 다른 작물들을 잘 품어주었고  그 해 8월  무성해진 고구마잎을 걷어내며 우리 식구들은 첫 고구마 수확이라는 걸 해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잘 영근 고구마들이 고구마 줄기 밑 뿌리에  붙어 있었고 수확량도 많아 주변 지인분들에게 첫 수확이라고 말하며 나눠줬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또다시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고구마잎이 무엇인지 보이는 눈이 생겨 남의 텃밭이나 길 한 모퉁이 작은 평수에 심어진 식물의 잎을 보고 고구마를 심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날 버스 차 창밖으로 보이던 그 무성한 고구마잎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 곧 수확해야겠네... 밭주인은 수확물이 생기겠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 인생의 수확물은 뭐가 있지... 란 생각을 해 보았다.

인생은 결과론보다는 과정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나였는데...   그 날 생각지도 않게 내 인생의 '고구마'라는 수확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것이다.


고구마 줄기를 땅에 심으면서 고구마가 주렁주렁 열리게끔  땀과 노동과 인내심으로 하루하루를 쌓아왔고 고맙게도 땅은 농부의 마음을  고구마 줄기와 함께 품어주어   8월 그 한여름의 더위속에서 고구마라는 합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그리고 한 달 한 달.. 사무실 일과 그 달의 월세, 공과금, 생활비 계산을 멈출 수 없었던 나에게   내 인생의 ' 고구마 '라는 나만의 수확물을 수확하고 싶다는 생각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의 나는 그 수확물을 향해 글쓰기라는 미약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고 있다.




p.s  바람 많이 부는 장마철에 문득 거실 바닥에 앉아 있다가 지나쳐 버릴 뻔했던 나의 생각들을 잡아두고 싶어 이렇게 용기 내어 글로 남기기로 다짐했던 2019년 여름 어느  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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