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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택시 Mar 15. 2018

[출근 5일째] 담쟁이 덩굴이 벽을 넘으려 한다

“게으름은 피곤하기 전에 쉬는 습관일 뿐”_쥘 르나르

#1 2015년 여름, 입사 3개월차…여의도 금융투자협회 기자실


하루가 부족하리 만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혼자 스무군데 정도의 증권사와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 보도자료를 처리하다보니 오전에는 다른 것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주식시장이 문을 열기 전에는 아침 일찍 메일로 날아든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리포트를 처리해야 했고, 개장하면 시황을 작성해야 한다. 그래도 3개월간 나름의 변화가 있다면, 짧은시간 독하게 공부했던 결과물이 슬그머니 나오는 것 같았다. 주식시황은 이제 제법 괜찮다는 소릴 듣기 시작했다. 하루일과 중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을 자기개발에 투자한 결과다.


나는 그간 담당 업무 관련된 서적을 대부분 구매했다. 다음에 주식과 파생상품, 재무제표, 공시, 회계 등 증권에서 다루는 대부분 영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 한권 읽을 시간도 빠듯했지만 출퇴근 시간과 잠들기전 2시간 정도는 공부에 투자했다. 물론 업무에 바로 적용하기 위해 필요만 내용만 체크해 따로 정리한 다음, 모르는 단어는 인터넷을 이용했고, 다음날 출근해 관련 취재원(전문가)에게 확인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절약했다. 미처 읽지 못한 부분은 일요일 혼자 있는 시간에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정리했다. 증권쪽은 알아야 할 지식이 많다. 증권사 직원들처럼 실무를 다루진 않지만 업계 배경지식과 어느정도 전문지식은 갖춰줘야 이해할 수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공부를 한다. 이래야 기자로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이쪽 분야에 별로 흥미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업무상 필요로 하다보니 없던 흥미도 생겼다. 흥미가 생기니 일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취재에 나설 수 있게됐다. 대부분 증권출입 기자들은 특정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사용해 시황이나 데이터 분석에 나섰지만, 나는 코스콤에서 만든 체크익스퍼트가 가장 좋았다. 자료도 많고 사용법도 쉽고, 무엇보다 전문가용이다 보니 흔히 말하는 ‘가오’가 사는 것 같아 선택했다.


시황을 쓰고 한참 보도자료 처리에 정신이 팔려있던 중 금융투자협회 홍보실장님이 기자실을 돌아다니며 기자 한명 한명에게 오늘 점심약속이 있냐고 묻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친분을 쌓은 홍보실이나 업계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저걸 왜 물어보지?”하고 생각했다. 실장님이 내게 다가온다.


“기자님 오늘 점심약속 있으세요?”


“아뇨...”


“그럼 저랑....”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늘은 금융투자협회 홍보실 직원들과 기자들간의 점심일정이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쓸 기회가 될지 모르지만 일부 출입처의 매체 차별은 존재한다. 당시는 그런걸 느낄 겨를이 없었지만, 왠지 나같은 마이너 기자까지 챙겨주려 하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회사에 들어와서 그나마 좋은건 점심식대는 인당 5만원까지 지원이 된다. 단 5만원이 넘어가면 당월 월급날 초과된 식대를 회사가 가져간다. 기자생활 초기에 별다른 점심약속이 없던 나는 매일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대와 내 사비를 털어 식사를 해결하던 차였다.


"밥값 굳었다..."


#2 점심 여의도 한 식당


점심시간에 오전 홍보실장님이 초대한 식당으로 걸어갔다. 아는 기자도 한 명도 없는데 가기가 조금 꺼려졌지만, 뭐 언젠간 친해지는 날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섰다.


식당에는 협회를 출입하는 15명 정도의 기자가 홍보실 직원들과 앉아 있었다. 식당안 끝자리에 빈 곳에 앉아 같이 마주하고 있는 기자들과 인사를 했다. 매우 뻘쭘해서 가벼운 인사외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괜시리 친한기자들과 모여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는 다른 테이블이 부러웠다. 지금은 기억 못하지만 당시 식사자리에서 분명 누군가 내게 말을 걸긴했다.


“(수줍어 하며)안녕하세요”


“아..네 안녕하세요”


흔히들 기자들 끼리 명함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고들 하지만...(왜 그런지는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요즘은 언론 문화도 많이 바뀌어서 명함교환을 한다.


“ㅇㅇ뉴스는 정치 전문매체 아닌가요?”


“네..정치를 주로 다루는 매체인데 최근에 증권도 출입하기 시작 했어요”


“아~ 위에 선배는 누가 계신가요?”


“혼자하고 있어요..”


“에?? 혼자요? 그럼 데스킹은 누가 봐요?”


“산업부장님이 대신 봐주고 계세요”


“진짜 힘드시겠다...”


신입기자 시절 대부분의 기자들은 내가 혼자 한다고 하면 다들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내곤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였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나는 홀로서기가 빨랐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 홀로 우리 3남매를 키우기 위해 식당 주방을 전전긍긍 하실때 부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했다.

흔히들 기자를 ‘정의’에 빗대어 말한다. 하지만 내겐  ‘생존’이었다.


그랬다. 기자들은 어디에 내놓더라도 뒤지지 않는 화려한 스펙과 고학력, 그리고 배경까지 더해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에 속해 있다. 이에 비하면 나는 집안 배경은 당연히 볼 것도 없고 학벌도 좋지 않았으며, 그 흔한 연줄도 없었다. 가끔은 잠들기 전 몰래 방문을 잠그고 눈물도 흘렸다. 내 자신이 창피했다. 그래서 쓸모있는 존재가 되려 남들보다 ‘고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깐. 그래야 내가 저들 틈에서 살아 남을 수 있으니깐...


#3. 퇴근 후 종로 A카페

“(웃으며) 어! 왔어!?”


퇴근 후 여자친구가 일하는 카페로 갔다. 당시 그 친구는 내가 일이 끝나면 항상 본인의 일터로 오길 바랬다. 여자친구가 일하는 동안 나는 다음날 쓸 기사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카페 특성상 여자친구도 밤 10시쯤이나 돼야 퇴근이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일같이 어떻게 만났는지 신기하다.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자기랑 먹으려고 여기 찾아봤지 헤헤”


“오~ 왠일로 기특한 일을 했어? 이번 주말에 어디갈까?”


“새삼스레...나야 맨날 기특한 짓만 하지. 날도 좋은데 어린이 대공원 갈까?”


“오! 괜찮다. 내가 도시락 만들어 올께”


“푸핫 자기 요리 못하자나. 내가 만들어 올께. 알지? 나 예전에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한거”


“히히. 그럼 자기는 내꺼 만들어와. 나는 자기꺼 만들께”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길 내내 여러생각이 들었다. 신입기자 시절 경제적인 여건에 더해 내 장래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다. 평생 언론인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었더지라 장래에 대한 욕심이 컸지만, 왠지 능력도 없는 놈이 남의 귀한 자식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 등.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좋은 사람 만나도록 놔줘야 하는건지 나만 좋자고 붙잡고 있어야 하는건지...


“잔액 조회.......5만원....월급날이 몇일 남았더라....”


누나에게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냈다.


“누나 자? 미안한데 나 월급타면 줄테니깐 5만원만 빌릴 수 있을까?”


“미친새끼야. 맨날 돈달래!! 돈 없으면 헤어져!!”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진 날이었다.


“능력없는 남자친구라서 미안해...남들 하는 만큼은 해주고 싶었는데...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나 때문에 네가 희생하는 것 같아.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아.

나 때문이 아냐. 널 위해서 얘기하는거야.  때문에 고생하지마. 이젠 네 삶을 찾아...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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