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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도댕 Dec 09. 2023

자기애

나르시시즘

한때 자기애를 높여야겠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를 위할 줄 모르는, 오직 남을 위한 태도와 결정이 결국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는 이기심을 장착하려 부단히 애썼다. 나 스스로가 1순위가 되어본 적 없는 삶은 불행히도 불행을 이끌었으니까. 그것이 20대 후반의 나의 다짐이었고, 2년 남짓이 흐른 지금 그것을 잘 지켜왔냐는 물음에는 세모라고 답할 수밖에.


사람들은 점점 더 스스로를 위한다. 자신의 기분을 망치는 모든 것들을 멀리 하려 들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전보다 편해진 사람들도 많다. 좋은 변화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이에요,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우리 기운 내요, 이러한 사회 풍조가 우리가 더 마음껏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준 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좋은 변화다. 그런데 가끔 오직 나만이 소중하고, 나만이 옳다고 믿는 그 강력한 믿음이 불안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누군가 온당히 자신을 비판할 때도 그것을 비난으로만 받아들이거나, 어쩌다 일이 틀어지는 걸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을 볼 때면 더욱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가 손해를 봤다는 이유로, 혹은 내 의견이 부정당했다는 이유로, 네가 뭔데 감히, 라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온다면 뒤로 물러나 상황을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마땅히 나를 위하되 마땅히 나를 사랑하되 나르시시즘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자존감과는 관계없는 일이니까.


시간과 감정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법이다. 상대에게 이를 배려받지 못했다면 기분 나쁜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표출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나의 시간과 감정을 하루쯤 낭비한다고 노발대발하는 것을 넘어, 폭력성을 비칠 만큼 감정조절이 어렵다면 그때야말로 제동을 걸어야 할 때가 아닐까. 즐겨보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자기애성 인격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지나친 자기애가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은 극단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허나 세상을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볼 때 이에 수반하는 위험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금의 내 의견이 대단히 틀린 걸 수도 있다. 다만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틀리지 않으려, 틀렸다면 이를 바로잡으려 애쓸 뿐이다. 아마도 한평생 노력해야 하는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애써야 하는 일이 아닐까. 개인주의적 성향을 넘어 더불어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나를 사랑하되 너도 사랑하던, 오늘은 왜인지 그 시절이 그리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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