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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노잼' 동네들은 정말 재미가 없을까

by 황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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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주혜진, 스리체어스, 2023.


1. 노잼도시 대전

대전광역시 하면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 흔히 따라붙는 표현이 '노잼도시'다. 대전하면 떠오르는 것이 성심당 말고는 없다(그나마 엑스포?). 사람들은 대전을 재미없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성심당에 빵 사러 갈 것 아니면 굳이 대전까지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무위키는 '대전광역시/관광' 페이지를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노잼도시라는 타이틀로 모든 설명이 끝난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놀 곳이 "실제로도 정말 얼마 없다"라고 말한다.


주혜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도대체 대전에 어떤 재미가 없길래 '노잼도시'라고 불리는지. 사람들이 '재미가 있다'고 말하는 도시는 대체 무슨 재미가 있다는 것인지.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란 도대체 무엇인지.


대전이 '노잼도시'라면, '유잼도시'는 어디일까? 지방에서 꼽자면 부산이나 강릉 같이 바다가 있는 도시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에서 누구도 '노잼도시'라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 또는 못하는 도시가 하나 있으니, 바로 서울이다. 대전이 성심당, 강릉이 동해안, 부산이 해운대/광안리로 단순화되는 것과 달리, 서울은 다채롭고 다양하다. 서울의 여러 특색은 항상 재발견된다(22-23쪽). 서울은 홍대, 연남동, 성수동, 서촌, 북촌, 이태원, 강남 등 항상 새로운 '유잼동네'가 발견되는 도시다. 서울은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기에 새로운 모습이 계속해서 발견되어 다른 지방 도시와 달리 하나의 특징이나 대표성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서울이 누리는 '위세'다(24쪽).


도시의 노잼/유잼 여부가 중요한 것은 관광 수익과 지역 경제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방 도시 거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자생할 수 없다. 기업과 산업체는 대개 서울로 향한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강제로 지방으로 내려 보냈지만, 직원들은 주말만 되면 서울로 올라가기 바쁘다(금요일에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일요일 밤에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가는 고속열차 표가 얼마나 빨리 매진되는지 겪어 보셨는가?). 지방 도시는 살아남기 위해서 관광객 유치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잼도시'라는 타이틀이 붙어 버리면 관광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구태여 방문할 매력이 있는 도시, '유잼도시'가 되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것이다(37쪽).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도시와 공간의 재미라고 여길까? 주혜진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공간이 무엇인지를 분석한다. 그 공간은 바로 카페다(95쪽). 그것도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올릴 만한, 예쁘고 분위기 있는 카페. 주혜진이 네이버 블로그 데이터를 분석해 찾아낸 사람들의 여행 동선은 천편일률적이다. 사람들은 지방을 방문하면 그 지역에서 유명하가도 하는 예쁜 카페에 찾아가 커피랑 디저트를 먹으며 사진을 찍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문제는 그런 카페들은 서울에도 많다는 것이다. 서울이 모든 힙하고 핫하고 예쁘고 멋진 것의 표준이 된 나라에서 결국에는 지방의 힙함과 핫함은 얼마나 서울을 모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103쪽). 그래서 카페를 포함해 지방의 장소들은 서울을 모방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그런 힙함과 핫함은 서울에도 다 있는 것이기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냥 인터넷에서 예쁜 것으로 유명하다고 알려진 카페에 가서 '우와 멋있다'라고 감탄사 몇 마디 하고 커피와 디저트 시키고 사진 찍고 인스타나 블로그에 올리고 나면, 더 할 것이 없다. 서울하고 다른 경험을 하지 못한다. 노잼일 수밖에 없다.


노잼도시 대전은 이미 너무나 유명한 밈이 되었다. 사람들이 대전을 방문하는 이유는 밈을 확인하고 밈의 재생산에 동참하기 위해서지, 대전만의 무언가를 새롭게 경험하고 발견하고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86-87쪽). 더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니 유명 관광지 한 두 곳, 유명한 카페, 성심당 찍고 바로 대전을 떠난다. 대전에서 무언가 특별한 경험이나 느낌을 얻지 못하니 재미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노잼도시 대전이라는 이미지는 더욱 강화되고 사실로 굳어져 간다.


그렇다고 서울과 차별화되는 무언가 특색을 만들자니 모든 좋고 매력 있는 것의 표준이 서울이 되었기에 서울과는 다른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기는 위험하다(109쪽).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지방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다. 위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인스타 감성으로 유명해지지 않으면, 블로그에서 핫플로 알려지지 않으면 사람들이 찾아오지를 않으니, 어떻게든 인스타 감성이 나는 공간을 만들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오도록 해야 한다. 결국 그렇게 전국의 카페들이 모두 찍어낸 듯이 비슷한 인스타 감성을 가진 공간이 된다. 들어간 순간에야 예쁘고 멋지겠지만, 그 공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나 느낌은 없으니, 사진 찍고 끝나 버린다(100쪽).


2. 노잼동네 이문동

서울이 힙함과 핫함과 재미의 표준이 되고, 지방은 살아 남기 위해 서울을 모방하려고 애쓰며 자기만의 특색을 잃어버리며 노잼이 된다. 그러나 위계는 서울과 지방 사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서울은 위계의 정점에 있지만, 세계적 차원에서는 서울 역시 더 높은 위계에 있는 도시들을 모방하려고 애쓰는 도시다. 런던, 뉴욕, 파리 등 서구의 유명 도시가 바로 서울의 지향점이다. 힙하고 핫하고 예쁜 장소는 곧 서구를 모방한 장소다. 서구 분위기를 내는 인테리어가 곧 힙함과 핫함이다. 외국어, 정확히는 영어, 프랑스어 등 서구 언어가 상호와 간판을 지배한다. 영국과는 전혀 무관한 베이글 빵집의 상호에 '런던'이 들어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카페의 메뉴판을 굳이 영어로만 써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동남아시아 음식을 파는 식당이 '생어거스틴'이라는 영어+프랑스어 혼종의 상호를 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 서구가 되고자 하고 서구를 지향하는 열망이 깔려 있다고 본다. 그나마 서촌, 북촌, 인사동 등 서울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한옥 컨셉 카페나 한옥 디자인이 힙함과 핫함의 영역 일부를 차지하고 있지만,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 중 많은 곳이 유럽과 미국의 분위기를 모방한 공간이라는 점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있을까?


서울 내에서도 위계가 존재한다. 합정, 성수동, 연남동 등등은 서울에서도 힙하고 핫하고 재미있는 곳을 대표한다. 다른 곳은 서울에서도 노잼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내가 학교를 다니고 7년 가량 산 동대문구 이문동이 한 예다.


외대를 다니고 졸업한 학생들은 으레 이문동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동네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늘 의아했다. 이문동에 대체 뭐가 없는 거지? 홍대나 합정에는 있지만 이문동에 없는 것이 뭐지? 이문동에도 카페, 술집, 노래방이 있다. 이문동에서돈 홍대에서든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다. 물론 홍대에 더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이 많겠지만, 외대생들이 이문동에 할 것이 없다고 말할 때는 맛있는 커피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문동에서 말든 홍대에서 말든 소맥은 다 같이 처음처럼/참이슬/진로에 하이트/테라/카스를 섞어서 만든다. 이문동에서 가든 홍대에서 가든 코인노래방에는 같은 노래가 준비되어 있다. 대체 이문동이 노잼이고 홍대가 핫플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이문동과 인근 지역에 없는 것은 서점 뿐이다. 이문동, 회기동, 휘경동에는 4년제 대학이 무려 세 곳이나 있음에도 청량리역 교보문고를 제외하면 변변한 서점 하나 없다(외대에 있던 외대서림은 서점과 카페를 결합한 이문107로 바뀌었고, 그나마도 지금은 사라지고 아트박스가 차지했다). 하지만 누구도 서점이 없다는 이유로 노잼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문동은 노잼인 것일까? 이문동이 홍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홍대가 핫플과 놀거리가 많은 동네라는 위계를 차지한 이상, 홍대가 아닌 동네는 모두 노잼이고 할 것이 없는 동네가 될 수밖에 없다. 이문동에 아무리 예쁘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생긴들 홍대가 아닌 이문동이라는 동네의 위계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이문동의 재개발 아파트 단지에 있는 아파트가 10억에 달한다는 사실을 외대생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이문동도 서울이니까 서울 집값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서울 시내 접근성까지 좋으며 인프라도 갖춰질 것은 다 갖춰져 있다는 점은 이문동의 낮은 위계에 관한 인식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주혜진은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공간과 개인의 특정한 경험과 느낌이 결부될 때, 공간이 특정한 의미를 가진 '장소'로 변화한다고 말한다(50-51쪽). 나에게게 이문동은 나의 이십대의 기억이 곳곳에 깃들고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다. 하지만 장소가 가지는 의미, 즉 장소성은 매력이나 재미로 여겨지지 않는다. 추억은 추억이고 재미는 재미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공간은 소비되고 활용되고 전시되는 공간이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다. 그리고 핫플의 위계에서 이미 높은 위치에 있는 공간이다. 이문동에 아무리 홍대 합정 연남동 갬성 카페가 생기더라도 결국에는 홍대 합정 연남동을 모방한 것에 불과해 이문동의 위계를 높이지 못한다.


주혜진은 공간이 장소가 되고 진정성을 부여하려면 공간을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공간의 경험과 느낌을 미리 결정하지 않는 지리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60-61쪽). 그러나 이문동은 이미 노잼동네로 규정되었기에 이문동을 새롭게 감각하고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외대생에게 이문동은 장소가 아니다. 이문동을 장소로 만들려는 의지도 없다. 그러니 소비되고 전시될 공간이 없는 이문동은 노잼이 된다. 노잼이 노잼을 만들고 다시 노잼이 되는 순환인 것이다.


대전이, 이문동이 노잼이 된 것은 그 공간만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재미'를 감각할 능력을 상실한 우리 역시도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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