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에서조차 성과를 도출하고 싶진 않아요 (feat. KPI)
나는 천성적으로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은 그 사람의 기질, 편견 및 그 외 다양한 요인에 의한 것이라 인구가 70억이면 그만큼의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엇을 하든 Reference를 말 그대로 참고는 하지만 맹신하거나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번 휴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딱히 비슷한 사례나 경험담 등을 찾아보진 않았다. 당연히 휴직의 목적과 지향하는 바가 다를 것을 알기에.
어느 날 도서관 서가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나와 비슷한 사례의 휴직 경험담 관련 책을 만나게 되었다. 작가님 또한 특수 목적(출산, 육아 및 난임 등)이 아닌 휴직을 했고 왜 휴직에 이르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은 없었지만 짐작 가능했는데, 휴직을 대하는 방식은 나와 사뭇 달랐다. 이 부분은 역시 사람마다 번아웃을 극복하는 방법이 이렇게 다르구나, 이런 것은 참고할 수 있겠다 하고 읽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나도 모르게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었다.
그것은 휴직 중 활동을 가시적으로 보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KPI를 세우고 수치화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휴직 중의 모든 시간은 오롯이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고 어떤 시간을 보내는 가에 따라 결과물(?)은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라는 것이 인지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성실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내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이건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의 폐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 따라서 작가님은 KPI가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도출한 것일 테니 그 의도와 말하는 바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KPI라니… 도가 지나칠 정도로 목표 지향적인 한국의 기업들에서 번아웃되도록 회사일에 시달리고 거기에서 멀어지자고 휴직을 했는데 그 기간 동안의 활동 성과를 수치로 나타내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평가하자고? 물론 작가님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나는 절대 이러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황선우, 김하나 작가님들이 최근 여행책을 내고 그들의 팟캐스트에서 풀어낸 여러 가지 에피소드 중 나에게 크게 깨달음을 준 대목이 있었다. (「퀸즐랜드 자매 로드」라는 책이다) 그건 작가님들이 여행지에서 경험한 서핑과 패들보드 강습과 관련된 것이었다. 두 선생님 모두 기본적으로 가장 많이 한 말은 ‘잘하고 있어’였는데 작가님들은 당연히 잘하지 못하는데도 계속 잘한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즐거웠다고 하셨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강한 사교육 영향인 건지 취미로 하는 것에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어 선생님들도 칭찬보다는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더 잘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라, 학생들이 무엇이든 즐기는 것보다 잘해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하셨다. 이런 기저에 깔린 문화가 사람들이 본인을 돌아보기 위한 휴직의 시간조차 낭비하는 것이 될까봐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다들 본인을 볶아치지 못해 안달일까? *상기 작가님들의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참고)
당연히 나도 인간인지라 내가 지금 보내는 시간들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중요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번민한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조차 어떤 작은 성과라도 도출해야 한다고 나를 닦달하며 보내지 말자고 결심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조금씩 행복의 기운을 채워나가고 있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나중에 좋은 결말을 맺으리라 믿는다. (뭐 결말이 좋지 않아도 어쩔 수 없고, 어쨌든 지금 나 자신이 마음에 드는 시간을 보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적어도 이 시간에서만큼은 어떤 것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수치로 관리하는 삶은 지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