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그만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동안 그런 뉘앙스의 책들이 넘쳐나던 때가 있었고, 그땐 나도 그런 글들에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힘듦과 괴로움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꼈을 땐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는 말은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죽을 것 같은데 나중에 나아지는 게 무슨 소용이람.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언젠가 아이유님이 유스케에서 했던 인터뷰를 보았다. 「아이와 나의 바다」 도입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이 부분에 대해 아이유님은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말이 있는데, 시간이 내 편이 아닌 때도 있다. 그 말이 마음의 위안이 안 될 때가 많았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맨 처음 가사를 그렇게 시작하고 싶었다고. 이걸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전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기는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뚜렷해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생긴 상처가 계속 덧나기도 한다. 그럴 땐 오히려 시간이 모두 해결해 줄 거라는 말이 자괴감을 더한다. 남들은 다 괜찮아지는 데 그렇지 못한 내가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그렇다고 계속 상처를 안고 괴로워하며 살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사람이 그런 상태로 계속 살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정신병 하나 정도는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까?) 내가 생각할 때 그냥 시간이 지나가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않고 사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냥 현재의 이슈에 집중하는 것. 후회스러운 과거도 불안하거나 낙관적인 미래도 생각하지 말고 지금 현재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고 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말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밝은 밤」의 주인공 지연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살아온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떻게 살았어요. 할머니?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살 수 있었어요?” 나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럴 거야.” 할머니가 말했다.
‘언젠가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와 뜻은 비슷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말로 들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어떤 불합리한 것이 있더라도 그냥 받아들이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라는 수동적인 말로 들리는 반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라는 말은 지금을 살아내고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어려움을 극복해 냈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라는 능동적인 말로 들린다.
사실 당장 내가 당한 힘든 일이나 괴로움들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 나아진다. 희석이 되는 것이든, 인간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하는 일이든. 하지만 당장 괴로운 사람에게 던지듯, 그게 무슨 고민이냐는 듯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토로하는 것은 십중팔구 그것의 해결책을 달라고 하기보다는 공감을 바라는 것일 거다. 그러니 그냥 조용히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