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일상의 회복'

저는 지금 일상을 회복하는 중입니다.

by 애나

내가 번아웃을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인지한 것처럼 그것을 회복하는 방법도 직감적으로 얻을 수 있을까? 휴직 후 4달의 시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나의 답은 확신의 ‘아니요’이다. 번아웃된 사람들이 회복하는데 평균적으로 6개월이 걸린다고 하던데 그렇게 치면 나는 지금 3분의 2쯤은 괜찮아졌을까? 그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이지만 적어도 나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휴직 기간 동안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지나간 시간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지냈다. 전시회들을 찾아가고 평일 낮의 비교적 한산한 서울의 이곳저곳을 경험했다. 그리고 천천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번아웃이 되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이 뭘까 생각해보니 그건 갈등 상황에 대한 무조건적 회피였다. 어디를 가든 누군가를 만나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고 필연적으로 매우 사소하더라도 갈등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소 같으면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일들도 번아웃된 후엔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영향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래서 내가 취한 방법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어디도 가지 않으면 그에 따라 발생하는 갈등 상황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고착화되고 더하여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무엇을 할 때마다 나 스스로 허들을 높이는 것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북토크나 평소 궁금했던 소위 핫플이라는 곳에 가기 전 망설임의 시간이 늘어났다. ‘거기에 가기에 나는 나이가 너무 많은 것 아닐까?’, ‘내가 실수를 해서 뭔가 나쁜 상황을 만들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론적으로는 하고 싶던 일의 반 이상은 포기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나에게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로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일어나지도 않을 나쁜 일들을 생각하며 나의 행동반경을 나 스스로 좁혀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제한된 생활을 계속할 생각도 없고 성격에 맞지도 않기 때문에 이 상황을 타계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고 나에게 떠오른 말은 ‘일상의 회복’이었다. 물론 일상의 내용은 사람마다 당연히 다르겠지만 나에게 일상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거기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두 가지를 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는 경험들을 쌓아가는 것이다. 큰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필수적이 듯 이를 행복의 경험에도 적용해보기로 했다. 먼저 지레 신포도라며 피하는 여우가 되진 말자고 생각하며 나쁜 경험으로 기분이 상하더라도 무엇이라도 우선 해보고 후회하자고 생각했다. 이것에는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애정하는 탄이들 때문이었다. 얼마 전 탄이들이 컴백을 하면서 오래간만에 음악프로 공방을 한다며 신청 공지가 떴고 그것을 보고 내가 한 생각은 ‘이 나이 먹어서 내가 갈 자리가 아니야. 그리고 지금은 사람 많은 곳에서 많이 힘들잖아.’였다. (물론 당첨이 되어야 가는 것이긴 한데… 워낙 평일이고 한 방송은 시간상 성인만 신청할 수 있었으니 신청했다면 어딘가 한 군데라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쩌면 오랜 기간 동안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 후 나는 지레 포기한 행복에 대한 후회는 다시 하지 않았으면, 어떤 결과일지 모를 일에 미리 최악의 수를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후 여러 가지 이벤트에 신청하고 참석했고 그 결과는? 물론 내 상식에 어긋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불만인 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좋은 경험만 남았다.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DM으로 나에게 용기를 준 분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직접 만나러 갔다. 이렇게 쌓인 작은 좋은 경험들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좋은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다고 확신한다.


두 번째는 루틴을 정하기. 지금의 나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하진 않지만 모든 시간의 운용이 온전한 나의 몫인 상황에서 나를 관리하는 최소한의 규칙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일 최소한 1시간간 이상은 걷기 또는 운동을 하고 (이 부분은 애플 워치가 절대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글 올리기를 하기로 정했다. (블챌 덕분에 루틴은 되었으나… 브런치에 올리는 루틴이 필요한 듯) 글을 쓰는 건 다른 무엇보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나를 아는데 도움 되고 운동은 나의 육체적/정신적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위의 두 방법이 지금의 내가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한 ‘일상의 회복’ 과정 중에 있는 방법이다. 사실 이렇게 글로 풀어쓰고 있어서 뭔가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고 한량처럼 적당히 하고 있다. 최근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시간을 보내며 굳이 극복하기 위해 힘을 내며 살지 않기로 했다. 힘이 안 나는데 억지로 힘을 내려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도 뭔가 아이러니하고. 위의 방법이 지금은 도움이 되지만 조만간 이건 아니야 하며 때려치울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위해 내가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찾아가는 나를 회복시키는 방법들이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힘들어질 때마다 나를 좀 더 쉽게 삶의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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