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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31. 2021

쌩초보 넷째 엄마

몸무게가 늘지 않는 아이

 엄마는 세상 전부다. 엄마가 하는 말을 아가가 따라 한다. 엄마가 하는 행동에 따라 아이가 달라진다. 이 무력한 아이가 온전히 내가 해 온 삶의 반영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무섭다.


 지난주까지도 분유병을 빨았다.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젖병 수유가 가능했다. 주말부터인가. 완강히 젖병을 거부한다. 분유병 젖꼭지를 갖다 대면 자지러지게 운다. 마음에서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서럽게 울며 원망하는 말투로 '엄마 엄마'하는 그 모습이 밉다. 무서운 표정을 하고는 젖병을 억지로 입에 갖다 대기를 몇 번. 뒤로 넘어가는 아가를 끌어안고 함께 울고 만다. 에라 모르겠다. 직장 나가야 해서 모유를 반드시 끊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젖 물리자 물려. 이번에도 마음 약해져서 모유 물려서 잠을 재웠다.  



새벽 4시. 아가가 깨서 '엄마'를 부르며 내 배에 머리를 처박으며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운다. 어제까지 난 누워서 젖가슴을 열어젖혀 젖을 물리고 그냥 잠을 잤다. 너무 피곤하고 지쳤던 난 일어나지 않았다. 아가는 지 혼자 젖을 빨다 잠이 들었다. 오히려 신생아 때는 함몰유두인 내 젖을 아가가 잘 물지 못해 누워서 수유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아가도 어느 정도 크고 해서 빠는 힘도 좋아지고 젖꼭지를 다룰 줄 알게 되어 그냥 옷만 열어젖혀 놓으면 스스로 젖을 찾아 빨 수 있게 되었다.


아가의 자립심은 점점 엄마의 게으름을 극대화시켰다. 누워서 빠니 아가는 배가 다 찰 때까지 충분히 젖을 빨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배가 차면 그냥 잠이 들었고 두세 시간 후 또 배가 고프면 깨서 울었다. 그때마다 난 젖을 주었다. 밤새 두세 번 그렇게 누워서 젖을 물렸다.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 새벽 4시 아가가 울었을 때 천근만근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세웠다. 분유를 타러 부엌으로 갔다. 아가가 부엌으로 울면서 기어 나온다. 역시 분유 젖꼭지를 입에 갖다 대니 싫다고 자지러진다. 분유 먹으면 엄마 쭈쭈 주겠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서글피 '엄마'를 부르며 울어댄다. 결국 아기띠로 아가를 안았다. 조금 울더니 지 손가락 두 개를 입에 집어넣어 쪽쪽 빨면서 잠이 들었다. 칭얼대면 무조건 젖을 물렸던 엄마의 습관이 아가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아 나 자신이 너무 밉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거꾸로 가고 있다. 8개월이 되어가는 지금 쯤 오히려 밤중 수유를 끊어야 할 때 밤에 두세 번 수유를 하고 있다. 몸무게는 6개월 때 몸무게인 6.6킬로 그대로다. 아예 정체되어 있다. 초보 엄마처럼 불안하고 무섭다.  하루에도 수십 번도 넘게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모유양이 적었으면 보채거나 할 텐데 모유 먹여놓으면 두세 시간 잘 논다. 발달 속도가 지극히 정상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활동적인 아이다.'


이런 생각들로 자책하는 나를 위로해본다.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과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몸무게가 몇 달 동안 늘지를 않잖아. 이유 연습이 왕성히 되어야 할 이 시기에 오히려 어릴 때보다 더 젖만 찾고 있다. 분유는 물론이고 이유식에도 관심이 없다. 이유식을 떠서 주면 입을 꼭 다물어버린다. 매일 적은 양의 이유식 먹이는 것도 내겐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세월은 흘러가는 데 아가가 무럭무럭 크기는커녕 몸무게가 계속 그대로이니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4시에 깨어 지금까지 초보 엄마처럼 무성한 정보의 숲을 방황했다. 검색 창에 '젖병 거부'라고 치자 수많은 글이 검색된다.

'젖병 거부 ,이유식 거부, 핑거푸드,몸무게 늘지 않는 아이, 8개월 아가 정상 체중....'


 이런 거 검색하다 마음이 더 답답해지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넷째 엄마가 맞나'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글을 쓴다.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이 타들어가는 속을 달랠 길이 없다.


 모유를 아예 끊을까 생각한다. 분유랑 이유식만 먹여볼까 한다. 끊는 과정이 엄청 험난할 것이다. 그 과정을 내가 마음 약해지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대로는 안 되고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마의 게으름이 결국 이런 상황을 만든 것 같아서 너무 괴롭다. 엄마가 잘못해서 바른 길로 돌아가기 위해 이 어린 아가가 치러야 할 고통이 더 크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안 좋다. 그래도 한번 해 보자. 지금 많이 의기소침해졌다.


민찬이 마음 들여다보기....


엄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 주세요.

세상에 태어나 엄마 젖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어요.

엄마 젖이 전부고 엄마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젖을 먹지 말라니요

이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말씀이신가요...

저도 크면 젖이 아니라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 알아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저를 너무 다그치지 말아 주세요.

생김새가 다 다르듯 엄마 젖이 아닌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더 많이 필요할 뿐이에요.

엄마~~ 저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걱정하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지켜봐 주세요. 너무 조급해하시지 마세요.

엄마 전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고 똑똑해요.

제가 아직 말은 못 하지만

제가 울면 그 울음 속에서 제 마음을 읽어주세요.

엄마 사랑해요 감사해요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앞으로도 키워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시겠지요...

늘 감사해요. 우리 엄마....


 갑자기 민찬이 마음이 궁금해서 민찬이 입장이 되어 글을 써보았다. 자꾸 눈물이 흐른다. 정답은 민찬이가 다 알고 있었구나. 평정심을 유지할 때는 나도 인터넷을 뒤지지 않는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졌다. 다른 아가들과 비교되면서 걱정은 더 늘어만 갔다. 내가 마음을 다해 뒤져봐야 할 것은 다른 아이들 성장 속도가 아니라 민찬이 마음이었음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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