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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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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Feb 04. 2023

수영이란 세계

낯설고 반가운 너란 세계에 빠지다



어릴 때 냇가 옆에서 자란 난, 학교 끝나고 오면 가방 던져놓고 냇가에서 수영을 했다. 수영이 아니라 물놀이가 맞을 거다.


​어떤 이들은 물이 무서워서 수영을 못 하겠다 했다. 물속에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나에겐 그런 두려움은 애초에 없었다. 물은 내게 너무 친숙한 존재였다. 난 늘 물가에서 놀았으니까.


하지만 마흔의 생을 사는 동안 난 수영장이란 곳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수영이란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스포츠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살을 거의 다 드러내놓고 작은 천 조각을 걸치고 해야 한다는 것에도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영장을 지척에 두고도 단 한 번도 그 문턱을 넘어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수영장이 바라다보이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색깔의 수영 바구니를 들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반쯤 말린 젖은 머리카락을 털면서 다시 수영장을 나왔다. 저 안에서는 도대체 어떤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언젠가는 나도 그 세계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궁금증과 소망을 마음에만 품고 지내던 따뜻한 봄 어느 날, 코로나로 굳건히 닫혀있던 수영장 문이 다시 열렸고 나도 드디어 용기 내어 수영장 문턱을 넘었다. 이렇게 수영이란 세계가 내 삶에 들어왔다.


​수영복은 최대한 내 몸의 많은 부분을 가릴 수 있는 것으로 골랐다. 원피스형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기에 위에는 어깨까지 덮고 하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가장 기장이 긴 수영복을 선택했다. 최대한 내 몸을 가려야 한다는 강한 의지력이 발동했다. 수영복을 고를 때, 애초에 디자인, 기능성, 색상 등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그동안 옷으로 숨겨놓았던 내 많은 살을 드러내놓기가 민망하고 창피할 뿐이었다. 정녕 이 작은 천 조각만 걸치고 내가 남녀가 섞인 그 수영장에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수강 신청 첫날, 새벽부터 긴 줄을 서서 수강 신청을 했고 다행히 새벽 초급반 입성에 성공했다. 강습 첫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수영복 끄트머리를 손으로 아래쪽으로 내리면서 수영장 물속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생각보다 물이 깊다.' 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귀엽게 생긴 여자 강사가 앞에 나타났다.


여리여리한 몸집과는 다르게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오늘 수영 처음 배우시는 분 있으세요?" 하고 물었다.


잠시 주변을 살피며 쭈뼛거리며 오른 손을 올렸다. 다행히 스무명 남짓한 사람 중에 나 말고도 서너명이 더 손을 들었다.



#수영일기

#수영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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