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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파리타Lee Nov 10. 2020

집에서 혼자 요가해보니까 어때?

집요가 6년, 무엇이 바뀌었나?

"옴나마, 시바야~시바야~"

욕이 아니다.

힌두 만트라(mantra)다.

그것도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신(Shiva)을 경배하는, 꽤 성스러운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가 집에서 요가를 할 때 가끔 만트라 음악을 틀어놓는다. 

쫙 내리깐 중저음으로 반복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만트라가 집중력을 높여주기 때문.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집에서 요가하는 나를 6년간 지켜봐 온 띤군은 뜻도 모르면서 힌두 만트라를 흥얼거리곤 한다. 

6년의 '서당개 경력'은 생판 모르는 외국어 음악 따라 부르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요가를 평소에 하지도 않는 그가 내 요가 자세를 잡아주게 된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인고 하니, 아쉬탕가에는 접었는데 거기서 또 비틀고, 꼬고 하는 자세가 많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엑소시즘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자세 말이다. 

몸이 참 뻣뻣한 난 이런 자세를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이 살짝 필요하다. 

요가원에서는 샘들이 도와주지만, 집에서는 어쩌랴, 혼자 하는 수밖에. 

그렇게 한참을 혼자 해오다가 일 년 전쯤 띤군을 끌어들이게 된다. 

요가 샘한테 받았던 자세 교정을 그에게 알려주고 비슷한 느낌이 나나 봤더니, 웬걸, 그가 생각보다 너무 잘하는 것이 아닌가! 요가는 몰라도 요가 자세 교정에는 소질이 있는 게 분명하다. 

예상치 못한 인재 발굴로 내 집요가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남편이자 베스트 프렌드인 그는 이제 내 홈요가 '조교'이기도 하다. 

덕분에 내 요가 수련이 더 활기를 띠게 되었으니, 가족의 멀티플레이어 능력에 감동받지 아니할 수 없다.

하마터면 이 책 저자인 줄. 띤군은 비주얼도 요기 구루(guru)




집요가의 시작은 멕시코였다.

집 주변에서 마땅한 요가원을 찾을 수 없던 나는 그냥 집에서 혼자 하기로 한다.

띤군과 푸에블라(Puebla)에서 침대방 하나가 다인 원룸에 살 적에는, 나는 침대 옆 바닥에서 요가를 하고 띤군은 침대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곤 했다. 

둘의 거리는 1미터 남짓. 

띤군의 기타에서는 리드미컬한 라틴음악과 팝송이 흘러나온다. 그럼 난 그 리듬을 에너지원 삼아 요가를 한다.


푸에블라 원룸 이후로 이사를 4번 더 했다. 

이제는 여분의 방이 있어 원한다면 혼자 방 하나를 차지하고 요가를 할 수 있지만, 이전에도 지금도 내가 요가를 하는 곳은 거실이다. 

띤군이 재택근무를 하는 요즘은 그가 일하는 식탁 옆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화상회의를 하고, 난 이런 소리들을 배경으로 요가를 한다. 


이런 무작위한 소리들이 방해가 되진 않냐고? 당근 그렇다. 

그것 외에도 요가 와중에 초인종이 울리기도 하고, 전굴 하는 내 머리 위로 띤군이 왔다 갔다 건너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방해 요소는 집에만 있을까? 아니다, 어디에나 있다! 

그게 어쩌면 내 호흡 템포보다 빠른 요가 샘의 디렉션일 수도 있고, 내 머릿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일 수도 있다. 그것들이 어디서 왔든 간에 중요한 건 그것들을 불평해서는 좋을 게 없다는 거다. 방해받는다고 생각하면 심기가 불편해지기 마련인데, 그런 심기로는 당연히 수련에 집중을 할 수 없다. 

저가 호텔방에 매트가 반밖에 안 펴지는 공간이 다인가? 실망할 것 없다. 그럼 그 정도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동작을 하면 된다. 한창 집중해서 수련 중일 때 갑자기 벨이 울려 집중이 깨졌는가? 괜찮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매트 위에 선 순간, 바깥세상을 향해 보이지 않는 막이 쳐진다. 나만의 온전한 템플Tempel이 되는 것이다.

당장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수련을 하는 것, 이것이 어쩌면 내가 집요가를 하면서 깨게 된 첫 번째 일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살던 시절, 리프레싱 차 며칠 요가원에 나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이탈리안 선생님, 한 시간 반 짜리 아쉬탕가 프라이머리를 마치고 나오자 나에게 묻는다.

"너 한국인이지?"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던 그녀.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녀의 대답이 이어진다.

"같이 요가하는 친구들 중에 한국인이 좀 있는데, 다들 요가를 엄청 열심히 하거든."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업 중에 몇 번을 나에게 와서는 '릴랙스~'를 속삭이고 갔다. 내가 자세를 만들기 위해 낑낑대며 애쓰는 게 신경 쓰인 것일 터.

생각해보니, 그것이 원인이었다. 열심히, 잘하려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러니 몸이 경직돼 될 자세도 안된다. 자세가 잘 안 나오니 또 몸에 힘을 잔뜩 주고 푸시한다. 악순환이다. 내 요가 수련은 이름하여 '열심熱心의 함정'에 빠져있었던 것! 힘을 과도하게 쓰다 보니 몸도 아프다. 내 수련이 체력적으로 그토록 고달팠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열심히 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돌이켜보니 나는 이제껏 참 여러 방면에서 나를 무리하게 다그치며 살아왔다.

열심에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는 1도 의심하지 않은 체.

습이 된 것은 깨달음이 있을지라도 자동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도 내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많은 것들 속에서 적정선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휘몰아치기보다는 릴랙스를, 

의무감 대신 재미와 흥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가 수련은 이 모든 변화의 선발대다.


다행히도 홈요가는 이런 훈련을 하는데 안성맞춤이다. 선생님의 디렉션을 따라가다가 호흡이 꼬일 일도 없고, 누군가에게 평가받을걸 걱정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을 느낄 일도 없다. 

내 몸과 마음의 템포대로 느긋하게 수련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아이러니하지만,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이나 띤군의 S.O.S처럼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드는 일상의 것들이 훈련의 강도를 높여준다. 나름의 하드 트레이닝인 것! 

나의 균형 잡기는 이제 요가의 영역을 넘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발바닥에 오장육부가 다 있듯, 요가 수련에는 우리의 삶이 녹아 있습니다.

차파리타의 홈요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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