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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Nov 21. 2021

'작은 카페' 하나 차리는 게 꿈이라면


 “회사 때려치우고 그냥 작은 카페나 하면서 살고 싶어.”

 직장을 다닐 때 주변에서 숱하게 들었던 말이다. 회사 동료들도, 다른 회사 친구들도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작은 카페 창업’을 탈출구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꿈을 자의 반 타의 반 실현하며 살고 있다. 잠시 휴직을 한 뒤 춘천에 내려와 작은 가게 하나를 열게 되었으니까. 아담한 공간치고는 정체성이 잡다한 가게이긴 하다. 공유서재이면서, 북스테이도 하고, 창작자 마켓도 열고, 북살롱도 하고, 그리고 카페이기도 하다. 원래는 서재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음료까지 팔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손님이 주변에서 커피 한 잔 사 오기도 힘든 옛 동네라, 애써 찾아오는 분들 번거롭게 해드리지 않으려 음료를 내어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의도와는 달리 ‘서재지기’가 아닌 카페 사장님 혹은 알바생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는 날이 부쩍 늘었다. 고풍스러운 공간에서 우아하게 읽고 쓰는 낭만을 꿈꾸며 서재를 열었는데, 적어도 손님이 몰리는 주말 오후엔 그런 우아미는 단념해야 한다.

 그렇게 가게 문을 연 지 8개월. 이제는 누가 ‘그냥 카페 하나 차리고 싶다’고 얘기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게 되었다. ‘카페 차린다’는 말 앞에 ‘그냥’이라는 수식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린 탓이다. 물론 음식점이나 다른 고된 장사에 비해 노동력이 덜 요구되는 업종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손님 시각에서 봤을 때처럼 온종일 앉아 있다 커피 한 잔 툭 내어주는 일과는 결코 아니더라. 혹여나 지금 누군가 막연하게 카페 사장을 꿈꾸고 있다면, 공감하기에 앞서 감수해야 할 ‘카페의 이면’부터 조목조목 첨언을 해주고 싶다.

 먼저 카페를 열면, 매일 한 시간씩 청소하는 삶이 시작된다. 나의 가게는 열댓 평도 채 안 되는 작은 가게인데도 늘 그 정도 공력을 들여야 한다. 그저 쓸고 닦는 차원이 아니다.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결한 사태들, 변기 휴지통에 묻은 더러운 것들, 손님 지나간 바닥마다 놓인 머리카락, 그리고 생전 처음 본 벌레의 사체들도 포함된다. 나의 가게는 앞마당에 나무가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매일 떨어지는 낙엽과 새똥도 치워내야 한다. 자신의 공간을 돈을 받고 남에게 내어준다는 건 그만큼 청결할 의무를 떠안는 것과 같을 테니까.

 두 번째, 홀은 평화롭지만 주방은 시끄럽다. 손님들은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지만, 주인장이 있는 주방은 늘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우렁찬 제빙기 소리, 냉장고 팬 소리, 온수기 물 데우는 소리, 커피머신 자동 세척 소리가 주기적으로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 손님이 적은 시간에 평화롭게 책 읽고 작업도 하며 한가로이 보내고 싶지만, 그 소리들은 마치 짠 듯이 돌아가며 두 귀를 잡아당긴다. 그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고요의 시간은 하루 중 30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손님은 몰리는 시간에만 몰린다. 주변 어디 가나 카페가 잘 되는 것 같아서 ‘나도 해볼까’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아마 당신도 여느 손님들처럼 북적거리는 시간에 그곳을 찾았기에 늘 잘 되는 것처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대개 오후 1~2시부터 4~5시까지다. 나의 가게는 테이블이 몇 개 되지 않다 보니, 주말에는 그 시간대에 손님이 오시면 ‘자리가 꽉 찼다’며 돌려보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정작 문을 갓 여는 오전 11시나 문 닫는 저녁 무렵에는 텅텅 비어 있을 때가 더 많다. 물론 평일과 주말에 오시는 손님 수도 크게 차이 난다.

 네 번째, ‘멋짐’에는 대가가 따른다. 다른 업종에 비해 카페는 특히 인테리어와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쓰기에 더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 가게는 서까래와 목조지붕을 살린 천장이 멋스럽다. 대신 그 고풍스러움을 드러내느라 콘크리트 천장을 걷어내고 보니 대류현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온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뜨거운 공기가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지붕 틈으로 다 새어 나간다. 결국 전기요금 폭탄을 감수해가며 전기 히터와 팬히터를 대량 동원해야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지경이다. 바깥과 내부를 훤히 이어주는 통창(벽 한 곳을 완전히 헐어서 창을 낸 형태)도 그렇다. 보기에는 시원하지만,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햇볕의 복사열을 이겨내기 힘든 경우가 생긴다. 이토록 겉으로 드러나는 멋과 속에 품은 사정은 얄밉게도, 대체로 불일치한다.

 마지막으로, 공간을 연다는 건 공간에 갇히는 것이다. 자유롭고 싶어 회사 관두고 카페를 차리려는 이들에게 꼭 건네고 싶은 말이다. 물론 회사보다 정신적 자유를 더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로 공간에 속박되는 자신을 감당해야 한다. 어쩌면 휴가를 꼬박꼬박 보장해주는 회사보다 더 마음껏 돌아다니기 힘들지도 모른다. 당신이 카페에 들를 때마다 일상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던 건, 명백히 당신이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의 주인이 되는 순간 해방감은 구속감으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공간은 어느 한순간에도 절대로 알아서 굴러가지 않으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내가 가게에 갇혀 불행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는 않다. 눈에 띄거나 띄지 않는 행복도 차고 넘치게 주워가며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저 누군가 바라보는 이면에 이런 힘겨운 요소들도 있다는 걸 글에서나마 들춰냈고 싶었을 뿐이다. 게다가 나의 가게는 카페가 아닌 다른 정체성도 수두룩하다. 서재, 북살롱, 북스테이, 창작자 마켓을 운영하며 얻는 만족감은 위에서 종알거린 고충을 전부 덮고도 남는다. 다만 ‘카페’에 한정해서 누군가 내게 ‘다음에도 카페를 차리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을 정해놓았다. 앞으로 ‘카페만’ 차리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아이스라떼 한 잔 마시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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