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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y 29. 2022

책 내고 열흘이 흘렀다

<'고작 이 정도의 어른'에게 벌어진 일들>


 출간 전 날. 

 출판사에서 작가 증정용 책 열한 권이 도착했다. 공들여 고른 표지 재질과 재생지로 만든 속지 감촉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잠 들 무렵엔 천장을 마주 보고 누워 괜히 책을 얼굴에 덮어봤다. 지금이야 스마트폰만 자꾸 콧등에 떨어뜨리지만 어릴 적엔 책 읽다 잠들 때 자주 그랬던 것 같아서. 증정본과 함께 배달 온 편집자님의 손글씨 편지도 아껴 읽어내렸다. 출간 과정 내내 담백하고 깔끔한 일처리에 감사하고 감탄했는데 편지 내용 역시 그러했다. 나보다 더 내 글을 많이 읽고 고쳤을 사람이지만 표지에는 편집자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편집자 이름은 박시솔이다.

 출간 첫날.

 출간 소식을 주변에 알렸다. 온라인에만 책이 풀렸지만 곧장 회사 동료와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 세례를 받았다. 주문인증샷을 찍어 보내주는 친구, 십몇 년만에 연락이 온 고교 선배, 개인 돈으로 책 구매 이벤트까지 열어준 회사 동료. 취한 듯 보낸 하루의 문은 늦은 새벽 엄마의 카톡이 닫아줬다.


석아. 오늘 비로소 너에게 고백하건대, 손에서 책을 놓은 지 오래됐지만 엄마는 아직도 글 잘 쓰는 사람을 제일 존경한단다. 그래서 네겐 더더 미안하구나. 글 잘 쓰는 그 누군가를 존경하면서도 내 아들은 좀 더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곤 해서 네 맘을 다치게 했네. 사과하마. 그리고 엄마 너무 기뻐. 어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소리치고 싶어. 언감생심 그 누구에게도 못한 말 : 내 꿈을 이뤘어요 라고~~♡


출간 둘째 날.

 서울에서 책을 사고 싶다며 손님이 오셨다. 아직 온라인으로만 판매 중이라 첫서재에 책을 몇 권 들여놓지도 못한 터였다. 내일부터 판매하려고 했는데 멀리서 오셨다니 드릴 수밖에 없었다. 만오천 원을 결제하자 손님께서 작가 서명을 부탁했다. 책 맨 앞장에 글씨를 쓰는데 기분이 묘했다. 첫 구매 영수증은 카운터 벽에 붙여두었다.

 출간 셋째 날.
 
 출판사에서 프로필 사진이 필요하대서 생전 처음 스튜디오에서 단독 사진을 찍었다. 첫서재 단골 수린님네 헤어샵에서 머리를 손질해주셨는데 카드 결제된 걸 보니 좋은 날이라고 원래 값의 절반도 받지 않으신 것 같았다. 사진 촬영은 이웃가게 길몽 스튜디오 사장님이 맡아주셨다. 약속된 시간은 15분이었지만 50분 가까이 땀 뻘뻘 흘려가며 찍어주셨다. 돌아오는 길에 첫서재의 유일한 거래처(?)인 오가는정과 사장님께 잠시 들렀다. 스승의 날 선물을 주문하려고 갔는데 이미 책을 일곱 권이나 구매하셨다더라. 이 도시에 머문 지 일 년 남짓. 다정한 기억이 버거울 만큼 쌓였다. 다 두고 돌아가야 하겠지만.

 출간 다섯째 날.

 네이버에 책 이름을 검색하니 처음으로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었다. 아직 2쇄도 채 찍지 못했는데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다.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같은 대형 온라인서점에도 순위에 턱걸이로 들기 시작했다. 에세이 부문 100위 안에 겨우 이름 올린 수준이지만 그래도 캡처해서 저장해뒀다. 이것조차 마지막 순위일지 모르니까. 무명작가의 책이 며칠 만에 이 정도나마 팔린 건 필력이 아닌 지인들의 정성 덕일 게다. 날 모르는 사람이 벌써 책을 사봤을 리는 없으니.

 출간 여섯째 날.

 28년 전 은사를 찾아뵈었다. 책에도 감사의 글을 썼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김영석 선생님. 책을 드리고픈 마음에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그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두 녀석과 함께, 선생님께서 밭을 일구고 산다는 홍천의 산골 농막으로 찾아갔다. 이 이야긴 따로 기록해두려 한다. 아주 오래 선명하게 기억될 꿈같은 하루였다.
   
 출간 여덟째 날.

 반나절짜리 서울 나들이를 떠났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책이 진열된 모습을 눈에 새기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책은 거의 그곳에서 샀다. 교복을 입고 첫사랑과 데이트할 때도, 대학생일 때도, 직장에서 땡땡이치던 시간에도 늘 일순위로 찾은 안식처다. 신간 에세이 코너에 책이 눕혀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책이 세상에 나오긴 나왔구나. 남이 볼까 얼른 사진을 찍어뒀다.

 출간 아홉째 날.

 평소 좋아하던 몇몇 독립서점에 책이 입고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약국 서점인 ‘아직 독립 못한 책방’, 제주의 만춘에도 책이 닿았단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따로 시간을 내어 책이 놓여 있는 작은 책방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설레발일 테지만 설레는 발걸음인 걸.

 출간 열흘째. 
 
 책을 다 읽었다는 지인들의 연락이 속속 왔다.
 ‘딱 남형석 다운 글이네.’
 ‘나도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살고 싶어졌어.’
 ‘회사에서 아픈 일이 있었을 때 너의 힘든 마음을 내가 얼마나 살펴보려 했던가 부끄럽고 미안했네.’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을 걷다가 고민스러울 때마다 다시 꺼내 읽을게요!’

 20년 지기 친구, 회사 선배, 첫서재 손님의 메시지 혹은 손편지였다. 그리고 늦은 밤. 아버지의 카톡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했다.


나는 요즘 행복한 노인이다. 아들과 며느리의 인생관에 내가 차츰 공감하고 동의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조용히 혼자 너의 문집을 읽어내려가는 시간은 행복했다.




 영원한 나의 첫 책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이 출간되고 열흘. 강제로 인생을 중간정리 당한 기분인데 더할 나위 없이 누렸다. 언젠가 잊힐 장면이고 잊힐 책이겠지만 뭐, 세상 일은 다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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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책을 읽으셨다면 온라인 리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블로그, SNS, 온라인서점 어디든 다 감사할 거예요. 제가 모르는 이에게 책이 읽힐 유일한 방법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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