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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하루 Aug 25. 2020

잠시 쉬고 가세요

2020년 8월 중순의 어느 날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딱히 어떤 주제로 써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없었기에 소재가 고갈되기 쉬웠고, 그렇다고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라서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견해를 내세울 수도 없었다. 또한 전문 작가도 아니고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써 가면서 늘겠지...'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글이 어느새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일이 몰아치는 방학 즈음부터 지금까지 그냥 글에 대해 스트레스받지 말자 생각하며 손을 놓고 있었다.


8월 중순에 부모님께서 환갑을 맞이했다. 과거 의료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평균 수명이 상당히 짧아 60년을 산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환갑(또는 회갑) 잔치도 벌이곤 했다고 하는데, 인생 100년을 내다보고 있는 현재로서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는 추세다. 그래서 딱히 잔치 같은 것보다 소소한 식사나 여행 또는 선물 등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가족도 멋진 풍경의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하고 산책길에 올랐다.


우리는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에 도착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어떨지 궁금했는데, 올라가는 길이 아주 대단했다. 경사는 40도 이상이 되는 것 같고,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 올라가는 시간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 한 창 장마가 지속되는 시기라 비도 내리는 것이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 조금은 오싹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끙끙대며 차를 타고 올라와 수종사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보이는 수종사에서의 풍경

거의 다 올라오니 생각보다 풍경이 너무 좋았다. 설악산의 신흥사는 너무 낮았고, 서울의 봉은사나 불광사는 매일 보는 빌딩 구경만 실컷 하고 왔다. 위와 같은 정도의 풍경은 눈 내린 어느 날 단양 구인사의 끝에 도착해 올라온 곳을 되돌아 눈 덮인 산을 바라볼 때의 느낌과 오묘하게 겹치는 듯했다. 멋지기도 했지만 산에 너무 오랜만에 올라온 것이기도 했다(운동부족). 갑자기 절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은 종교가 없다. 관광을 갔을 때 또는 할머니 댁 근처였기 때문에 갔던 것일 뿐.


다 올라가자 수종사의 역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내용을 간단하게 읽고 향 냄새에 이끌려 대웅전으로 가 잠시 머물렀다. 처마 밑에 앉아 비가 내리는 강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생각이 봄이 찾아온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짧은 시간이나마 생각할 시간을 가졌는데 몸과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여기에 나의 고민을 조금 덜어놓고 갈 생각인가 보다.


참 절이라는 곳은 신기한 힘이 있다. 종교적인 느낌이라기보다 흘러온 시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아련한 힘이라고나 할까?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온 고즈넉한 나무 냄새. 작은 불씨로 타들어가며 은은하게 퍼지는 향냄새. 산속 이슬과 뒤섞인 짙은 풀내음. 그리고 바람이 불면 장단을 맞춰주는 풍경까지. 조금 과장을 보태 그 속에 있으면 나 역시도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물아일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절에 오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뭔가 편안하고 포근했다. 잠시 쉬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와 힘이 되는 같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템플 스테이도 해보고 싶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수종사의 작고 아담한 오솔길

수종사에서 잠깐의 시간을 가진 후 내려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계속 뒤를 되돌아보게 되고,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딱 그 정도의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내려와 차를 타니 생각보다 내가 가진 미련이나 고민을 많이 두고 오는 것 같아 몸이 가벼웠다. 앞으로 종종 산사를 찾아 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곤 해야 되겠다.


너무 급하게 달리기보다 바람 또는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자연스러움이 좋을 때도 있다. 


이렇게 또 하나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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