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코로나가 없었다면 올해 우리나라의 키워드는 바로 이것이 되었을 것이다. 바로 '트로트' 혹은 '트롯'. 작년 미스 트롯을 통해 트롯의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송가인이라는 특급 여성 트롯 가수가 등장하였고, 트롯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서막에 불과했다. 이제 트롯은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나, 나이가 달라도 전 세대가 열광하는 장르로 다시금 관심을 받으며 음악계의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송가인이 전국을 다니며 뽕을 신명 나게 따주었고, 유재석은 부캐 유산슬로 음악계를 싹 다 갈아엎으며 트롯으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지막 마침표가 더해지니 바로 미스터 트롯.
올 겨울은 유난히 추위가 매서웠다. 겨울철 따뜻한 국물로 추위를 녹여주던 시대는 지나갔다. 미스터 트롯들의 열정적인 무대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인기는 다시 겨울이 시작되는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이번 겨울도 유난히 춥다고 하는데, 생각만큼 춥지는 않을 듯하다.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며 마음을 녹여줄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미스터 트롯들 덕분이다.
물론 미스터 트롯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지만, 주변 대부분의 어른들 그중에서도 어머님들은 거의 요즘 아이돌 팬그룹 저리 가라 할 수준의 스밍 화력과 콘서트 예매율을 보여주신다. 코로나 때문에 몇 번이고 취소되고 다시 예매를 진행하며 거의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수준으로 어려운 티켓팅을 성공해내(직접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보통 자녀들이 해주는 경우가 많다.) 몇 차 레나 콘서트에 가시는, 생전 처음 사용하는 유튜브에 구독을 누르고, 멜론 정기결제를 하며 밤새 노래를 틀어놓으시는 바로 그 팬 여러분들의 마음이 춥지 않으실 것이다. 아니 오히려 여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뜨거우실 것이다.
위와 같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예전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유행할 때 일본 어머님 세대들이 엄청나게 열광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떠올랐다. 일본 열도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배용준이 욘사마, 최지우가 지우히메로 등극하는 등 한류 열풍의 시초인 그 모습이 순간 오버랩되었다.
당시 겨울연가에 열광한 일본의 어머님들은 자식들이 모두 장성하였고, 이제 어머니로서의 삶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속의 감성을 채워줄 것들이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겨울연가가 등장했다. 민형이와 유진이의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이야기는 자신들을 다시 첫사랑에 빠진 소녀로 되돌아가게 해 주었다. 이런 것들이 바로 겨울연가가 꽤나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이유라고 들었던 적이 있다. 미스터 트롯을 보면서 겨울연가가 많이 생각난 것은 기분 탓일까?
트롯은 90년대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온 우리나라의 국민 음악 장르 중 하나이다. 지금은 댄스, EDM, 힙합 등 수많은 장르에 밀려 힘쓰기가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님들도 20대가 있었고,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하루하루 뜨겁게 살 던 때가 있었다.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사회 속 주인공이었었다. 시간이 지나며 부모가 되고, 주인공이 아닌 이제는 옆에서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역할로 변했고 어느새 나 자신은 사라져 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주름은 가득하고, 마음의 열정은 잠시나마 식은 지금 이 순간 미스터 트롯이라는 기폭제가 마음속 불을 다시 지펴나갔다.
지방에 내려와서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하는 나로서는 미스터 트롯들이 무척 고맙고 감사하다. 평생 주부로 특별한 취미 없이 시간을 보내오신 어머니께서 그렇게 즐겁고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신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도 충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으셨고, 열정을 쏟으면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미스터 트롯 신드롬은 단순히 트롯을 넘어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을 뒤흔든 열정의 신드롬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찬란한 순간이 있었고, 하나쯤 마음속에 품은 순수함과 뜨거운 열정이 있을 것이다.
지금 무대 앞에서 빛나는 미스터 트롯들의 찬란함은 당신들의 모습임을.
순수함과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언제든 모든 순간이 찬란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