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 12일 이야기(오늘은 6월 14일 화요일)
정신이 없었다.
솔직히 난 결혼이 많이 하고 싶은 상태였고,
지금의 아내를 처음 본 순간 첫눈에 반했기 때문에 결혼을 생각하고(아이까지도 몇 명 낳을지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번 안 되는 소개팅의 만남 동안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런 정성이 통했는지 다행히도 아내가 진지한 만남에 응해주면서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100일도 안된 시점에서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내도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었고,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맞았던 우리는 신속하게 준비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작년 7월 말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 바로 식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고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아내가 흔쾌히 우리 아버지의 말에 동의를 해주며 서울에서 식장을 잡았다.
식장을 잡고 난 뒤의 결혼 준비 과정은 천천히 정리해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솔직히 결혼식 당일에 정신이 없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한숨 돌리니 폐백이고, 이제 커피 한 잔 할까 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그리고 짐 챙기고 8일 동안의 신혼여행 역시도 순식간..
이 역시도 중요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글을 남기고자 한다.
어쨌는 오늘 글의 핵심은 부부로서 처음으로 양가에 인사를 다녀왔다는 것이다. 물론 결혼을 약속하고 난 뒤 몇 번 다녀왔지만, '예비'와 '진짜'는 달랐다. 우리 집에 갔을 때 아내는 온전히 며느리가 되었다. 결혼 전에 아내를 대하는 데 조금 어색했던 부모님도 조금은 더 가깝게 느끼시는 것 같았고, 아내도 친근하고 친숙하게 부모님을 대해주었다. 티는 많이 안 냈지만 너무 고마웠다. 흐뭇하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아내 집으로 갔다. 꽤나 자주 갔지만, '진짜' 사위로 가는 건 처음이라 왜 이리 긴장이 되는지 가는 내내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도착하니 장인어른, 장모님, 처제, 조카들(처제 아들들)이 1층에서 시장을 가기 전 우리를 맞이하려고 내려와 계셨다. 차 안에서 심호흡을 하고 내렸다. 언제나 인자하고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셨다. 결혼식 때 보고 2주 만에 뵙는 장인어른의 얼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장 보러 가시려는 찰나, 나와 아내도 따라나섰다. 은근히 아가들을 돌보고 싶었다. 장모님께서 허리가 아프시다는 말씀을 듣자마자 바로 아기띠를 매고 아가를 안았다. 너무 포근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직 친조카는 없어서 그런지 더더욱 애착이 갔다. 그렇게 장도 보고 오후에는 조카 1명과 단둘이(조카는 쌍둥이다) 산책도 다녀왔다. 왠지 더욱 친해진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저녁시간이 되었다.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사위라고 토종닭 백숙을 해주셨다. 아까 장 보러 다녀오신 건 인사 온 나를 위한 장이었다. 백숙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많이 차려져 있었다. 늘 잘 대해주신 장인어른, 장모님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진정한 식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에 새롭게 와닿았던 것은 처제 가족과의 관계다. 나 역시도 처제, 동서 이런 표현이 익숙지 않고 생소해서 조금 오글거린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가 많은 동서는 결혼 후에 형님으로 계속 불러주시고, 처제도 형부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낯간지럽긴 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나 역시도 이제 가족이 된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조카들이었던 이쁜 쌍둥이들이 이제 나의 조카도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모부'라고 불리는 건 축복과 같은 덤. 내가 어릴 때 이모부께 이모부라고 부르는 건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내가 그렇게 불리니 기분이 좋은지. 이게 가족이 된 행복인가 보다.
오늘 하늘이 참 깨끗하다. 어제는 소나기도 내리고 흐린 적도 있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한 하늘이다.
부부관계나 가족 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일이 행복할 수 있겠소냐. '진짜' 가족이 된 지금 이 설레는 마음을 잘 간직하며 잘 살아나가야 되겠다.
당신과 내가 만난 지 423일 그리고 결혼하여 우리가 된 지 18일 되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