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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린 Feb 24. 2021

다이나믹 듀오, 겨울이오면

내 맘에 겨울이 오면


내가 이 노래를 정확히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이나믹 듀오가 그들의 분야에서 아주 유명한 뮤지션이고 많은 노래가 사랑받았음에도 그들의 음악에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 노래를 아주 오랫동안, 아주 많이 들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써 내려간 이 노래의 가사였다. 다른 이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가사.


힙합은 꽤나 많은 양의 가사를 쏟아낸다. 나는 아주 현실적인 가사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은 함축적이고 시적인 가사를 좋아하는 나에게 힙합 장르의 수많은 가사들은 별로 들을 기회가 많이 없음에도 이 노래는 그래, 아주 현실적이고 적나라해서 나를 울렸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진학해서 평일에도 매일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휴학 한번 한 적이 없고 졸업 전에 취업을 해 미친 듯이 달렸다. 여행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내가 가는 길에 의심을 해본 적도, 후회를 해본 적도 없이 내가 가는 그 길을 믿고 그대로 내달렸다. 그리고 넘어졌다. 길을 잃었다.


단풍처럼 붉게 불타던 열정은 

낙엽처럼 색이 바래고 바닥을 쳐

뜻 모를 배신감에 사무쳐 

비정한 세상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펴


그제야 현실이 보였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나와 같은 또래들과 취업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젊은이들, 그래서 더욱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사람들. 나도 어느새 그 세상 속에 뚝하고 떨어졌다. 아니라고 생각해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맞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찾아보겠다! 말했다. 잠시 동안의 휴식이면 정답을 찾을 것만 같았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서 조급해졌다. 무엇보다 돈이 없었고 그리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잘 벌고, 잘 살고, 모든 게 행복해 보이는 SNS 속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당장 나와 함께 학교를 다니고 진로를 고민했던 주변 사람들마저 자신의 할 일을 잘 찾아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부지런한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천성이 바쁘게 일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매일이 불안했다. 


이 시대 유감 이 기분 나만은 아닐 테지

하지만 다들 모아이 입을 못 떼지

그래 나도 두려워 찬 바람의 매질

회색 이불속에 숨어서 사탕이나 깨지

깊은 무기력감 내 천성은 채찍이 돼 

날 후려쳐 부지런한 의지는 침묵 속에 수감돼 자기 심판에 시달려

난 동면을 취하듯 멈춰서 봄을 기다려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어서 울 것 같을 때,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 노래의 멜로디나, 최자와 개코의 목소리만큼이나 무덤덤해진다.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그들의 아픈 가사는 아프지만 무심해서, 나 또한 나의 슬픔에 울지 않았다. 이 상황을 보다 나은 상황으로 치유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나를 공감해주는 무언가를 만나 상황을 받아들이고 덤덤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힙합 하는 사람들 특유의 마이웨이 같은 그런 느낌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 분명한 건 나를 내가 스스로 더 갉아먹게는 하지 않게 해 준 노래였다는 것이다.


죽은 듯 자빠져 한 숨 푹 자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난 기다려 까맣게 해를 가린 구름이

지나가고 내 눈에도 눈부신 푸른빛 하늘이 

식어버린 날 데워주겠지 

(이 밤 뜬 눈으로 나 봄을 기다려)


이 노래의 후렴구 가사가 이제는 외워버릴 정도가 되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렇게 잘 울던 내가 이젠 잘 울지 않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늘어갈수록 잘 울지 않는 것 같다. 소리 내어 펑펑 어린아이처럼 우는 것보다 마음으로 운다는 것이 더 이해가 가게 될 줄이야. 후렴구에서 무덤덤히 내뱉는 가사들처럼 우는 것보다 죽은 듯이 자거나, 혼자 동굴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그런 것들이 요즘의 어른들이 힘들고 아파하는 방법인 것 같아 더욱 공감이 갔다. 그렇게 죽은 듯이 있다 보면 힘든 시간은 모두 지나갈 거라 믿으면서.


내 맘에 겨울이 오면 내밀어주는 손은 얼음 같고 

위로의 말은 찬바람 같고 

내 걸음은 쌓인 눈을 밟듯 무거워 

혈관에 덮인 만년설 

그 산 중턱에 홀로 둔 나는 텅 빈 창고

여름은 전설을 전해 듣듯 와 닿지 않아 

봄은 발 디딜 엄두도 못 내는 날씨가 지금의 나야 

낙하하는 자존감은 끈을 당기지 못하고 

추락해 그래 난 나약해


힘든 시간이 지속되다 보면 친구들까지 만나는 게 힘들 때가 온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마저도 그들이 나에게 하는 위로의 말이 상처가 되고 같짢을 때가 있었다. 오랜만에 모여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나만 빼고 모두가 잘 살아가는 것만 같고 행복한 것 같은데, 나만 힘든 소리 하는 것 같아 힘들다 말하는 도중에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될 만큼 나는 나약해져 갔다.


싸늘한 눈과 바람보다 매서운 건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눈  

나에서부터 비롯된 이슈는 죄가 돼

심판을 받아 기요틴이 돼 노리는 명줄 

들숨은 방지 턱을 몇 개 넘어 

그러면 눈물은 겨우 멈춰도 

멈출 수 없는 행군

짐 짊어진 어깨는 푹 꺼져 생명이 꺼진 길은 

길어 언제일까 이 혹한기의 끝


힘들다고 말하면 이 말들은 결국 나를 타인에게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리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남들에게 나에 대해 좋은 일들보다 좋지 않은 일들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었다. 괜히 내 자랑 같고 으스대는 것 같아서 나를 낮춘다는 명목으로 이야기한 것들이 결국 모두 나의 단점이 되었다. 한없이 작아진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열변을 토하다가 문득 내가 초라하고 비참하다 느껴 말문이 막힌 그 순간부터 나는 그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삐끗한 것만 갖고도 사방이 시끌 시끌

이 바닥은 발 디딜 틈 없이 얼어 미끌미끌

난 버려지기 싫어서 날 버렸어 그 삶에 절어

맛은 변했고 형태만 겨우 남은 피클

지금 모두 미쳤지 남 싸움 구경에 참 무정해

승패가 성패가 된 사실 아직 난 부정해

하지만 난 무력해 현실에 안주밖에 없어

더 취할 수 없네


결국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그것들만 하면서 살지 못한다. 내가 하고 있는 지금의 일이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니고 진심으로 가슴 떨리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평생 앞으로 이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결국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노래를 자주 듣지 않는다.



죽은 듯 자빠져 한 숨 푹 자고 난 지금의 나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적어도 한겨울은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절정기는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혹한기의 겨울이 올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나는 나를 사랑해야겠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 천성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성취를 느끼고 있다.


나의 혹한기가 거의 끝나갈 때 고향 친구들을 만났고 그중 한 명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그냥 나의 이야기를 했고 이 노래를 언급했다. 그리고 겨울잠 푹 자고 나면 나아질 거라는 한마디의 말로 위로와 조언을 끝마쳤다. 반년이 지나고 다시 만났을 때, 그 어느 말보다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 노래와 나의 이야기를 남겨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혹한기를 만난 미래의 내가, 혹은 나와 내 친구가 겪은 혹한기를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내 맘에 겨울이 오면 

내 속은 텅 빈 하늘에 구름처럼 붕 떠

몸은 얼어붙은 강물처럼 굳어 굼떠

난 굴을 파고 숨어 차가운 현실로부터 

높아지는 망설임이란 문턱 그저 바라볼 뿐 

단풍처럼 붉게 불타던 열정은 

낙엽처럼 색이 바래고 바닥을 쳐

뜻 모를 배신감에 사무쳐 

비정한 세상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펴 

이 시대 유감 이 기분 나만은 아닐 테지

하지만 다들 모아이 입을 못 떼지

그래 나도 두려워 찬 바람의 매질

회색 이불속에 숨어서 사탕이나 깨지

깊은 무기력감 내 천성은 채찍이 돼 

날 후려쳐 부지런한 의지는 침묵 속에 수감돼 자기 심판에 시달려

난 동면을 취하듯 멈춰서 봄을 기다려


죽은 듯 자빠져 한 숨 푹 자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난 기다려 까맣게 해를 가린 구름이

지나가고 내 눈에도 눈부신 푸른빛 하늘이 

식어버린 날 데워주겠지 

(이 밤 뜬 눈으로 나 봄을 기다려)


내 맘에 겨울이 오면 내밀어주는 손은 얼음 같고 

위로의 말은 찬바람 같고 

내 걸음은 쌓인 눈을 밟듯 무거워 

혈관에 덮인 만년설 

그 산 중턱에 홀로 둔 나는 텅 빈 창고

여름은 전설을 전해 듣듯 와 닿지 않아 

봄은 발 디딜 엄두도 못 내는 날씨가 지금의 나야 

낙하하는 자존감은 끈을 당기지 못하고 

추락해 그래 난 나약해

신의 존재는 의심 안 해도 사랑과 사람과 미래는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나의 겨울을 더 길고 아리게 만드는데

의지해 독주가 든 잔과 녹슬은 난로 앞에 

내가 지켜야 할 자리를 오랜 시간 결근하면 

책임감의 굴복하곤 해 쪽 잠의 뻐근함에 

짓눌리네 우연히라도 떨어지는 게 

이 고독의 빙산 중 일각이었으면 해


죽은 듯 자빠져 한 숨 푹 자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난 기다려 까맣게 해를 가린 구름이

지나가고 내 눈에도 눈부신 푸른빛 하늘이 

식어버린 날 데워주겠지 

(이 밤 뜬 눈으로 나 봄을 기다려)


싸늘한 눈과 바람보다 매서운 건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눈  

나에서부터 비롯된 이슈는 죄가 돼

심판을 받아 기요틴이 돼 노리는 명줄 

들숨은 방지 턱을 몇 개 넘어 

그러면 눈물은 겨우 멈춰도 

멈출 수 없는 행군

짐 짊어진 어깨는 푹 꺼져 생명이 꺼진 길은 

길어 언제일까 이 혹한기의 끝


삐끗한 것만 갖고도 사방이 시끌 시끌

이 바닥은 발 디딜 틈 없이 얼어 미끌미끌

난 버려지기 싫어서 날 버렸어 그 삶에 절어

맛은 변했고 형태만 겨우 남은 피클

지금 모두 미쳤지 남 싸움 구경에 참 무정해

승패가 성패가 된 사실 아직 난 부정해

하지만 난 무력해 현실에 안주밖에 없어

더 취할 수 없네


죽은 듯 자빠져 한 숨 푹 자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난 기다려 선명한 미간에 주름이 

지나가고 내 눈에도 눈부신 웃음이 

눈물이 텅 빈 날 다시 채워주겠지

(이 밤 뜬 눈으로 나 봄을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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