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첫 번째]
매일 쓰는 사람 정지우의 쓰는 법, 쓰는 생활에 관한 글쓰기 단상이다.
저자는 글쓰기에 관한 증언에 가깝다고 했는데 정말 하나하나가 그가 글쓰기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으로 지냈는지 알 수 있다.
#첫 문장을 기다린다.
어떤 글이든 첫 문장이 떠오르면 그 첫 문장 속에 담겨 있는 힘으로 써나갈 수 있다.
내가 글을 쓸 때는 '첫 문장'이 내게 왔을 때다.
그것이 흑백인지 컬러인지 그림인지 글인지 평면이지 입체인지도 알 수 있는데 글을 써나가다 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글쓰기란 문장을 하나하나 개척해 가는 일이라 가기보다는 무언가를 받아 적는 일에 가깝다.
세상일이란, 대게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자기에게 꼭 맞는 무언가를 부지런히 찾아가야 간신히 어느 정도 자기에게 어울리는 걸 알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람이든, 사랑이든, 일이든, 글쓰기든 크게 보면 다르지 않은 구석이 있다.
#시작할 동기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그 이유가 주로 글쓰기에 '부수적인 욕망'을 붙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좀처럼 잘 안 된다면 거기에 다양한 목적으로 덧붙여보면 좋다. 사실, 많은 중요한 일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아니, 많은 중요한 일이 그런 식이 아니면 아예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시선의 힘을 드러내는 일
시선을 잘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이해하는 자신의 맥락을 써야 한다.
자신의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모든 순간에 대해 그 맥락을 스스로 짚어나가고 보듬어나가는 일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풍경이든 어떤 대상에 대해 글을 쓸 때는 그 대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내 안의 어떤 당위, 기준, 편견 같은 관념이 앞서면, 결국 대상은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대상을 폭력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대상화하는 것. 규정하는 것, 바라보는 것이 곧 글쓰기이다.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응시하고 그 응시의 기록을 남기고자 글을 쓴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은 곧 가장 생생하게 살아가는 일이다.
#지연과 절제
글쓰기는 '지연'에서 시작되어 '절제'에서 결식을 거둔다. 역기에서 지연이란 글의 내용적 핵이 될 부분을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미루면서 그러한 미룸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피어오르는 언어를 건져 내는 일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무수한 불순물이 끼어들게 된다. 그다음에는 진흙에서 진주를 골라내듯이 좋은 문장 좋은 표현을 뽑아내는 일을 해야 하나도. 그러한 작업을 거치고 나면 글의 핵이라 부르는 것이 핵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보다 드넓고 풍성한 어떤 커다란 덩어리로 완성된다. 그것이 글쓰기의 결실이다.
#타자를 붙잡는 기술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나는 타자를 꼽는다. 글쓰기는 철저히 혼자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항상 타자와 함께 하는 일이기도 하다. 쉽게 읽히는 문장자체보다, 문장이 담아낼 수 있는 진실이나 논리가 더 중요한 글도 있다 모든 글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타자에 대한 상정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보면 글쓰기의 기술은 '타자를 붙잡는 기술'이다. 적절한 지면에서 적절한 태도로 적절한 타자를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이 글쓰기의 능력이다.
타자는 가능한 한 자주 만나는 것이 좋다. 하루 30분이라도 만나다 보면 매일 기도하는 사람에게 신이 그러하듯 타자가 공기처럼 익숙해진다. 말도 글도 삶도 그 지평에 놓아두고자 애쓰는 게 그다지 고생스럽지 않은 일이 된다. 그러니 무엇이라도 쓰되, 타자와의 끈을 놓지 않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