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을 맞이하는 주부의 자세
주부생활을 하면서 절기를 챙기는 일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꼭 이런 느낌은 아니더라도 내 인생의 365일 중 특별한 날을 점을 찍어 가며 기념하는 일은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을 잠시 메어두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절기가 표시된 달력을 사무실 책상에 세워두고 초복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초복날에 우리 가족을 위해 뭔가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주부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사실 나는 대학 때 한식을 전공했는데 한식을 전공했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요리를 못한다. 요리는 기능인 것인가. 쓰고 연습하지 않았더니 모든 게 백지장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칼을 잡고 요리의 기능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물가가 왜 이래 하며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들을 기웃거리다가 영계닭을 2천 원이나 싸게 구입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열어보니 약간 이상한 냄새가 나고 색도 변해있었다. 푹 고아서 닭죽을 한 번 만들어볼까 생각했던 내 고귀한 생각이 물거품이 되었다.
닭만 건져먹고 국물은 자꾸 처음 닭을 꺼낼 때 맡았던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서 버렸던 일을 생각해 보며 이번에는 좀 큰 닭으로 멀쩡한 놈을 골랐다. 초복이라 그런지 전복이 6개에 6천 원이라 그것도 한팩 샀다. 요리를 잘 못하다 보니 맨날 그 밥에 그 나물인지라 했던 요리 또 하고 했던 요리 또 하고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할 때마다 맛이 다르니 이건 그날의 온도와 그날의 습도가 크게 좌지우지하는 것인가.
이번 삼계탕은 푹 고와 맑은 국물에 닭을 연하게 찢어 맑은 닭개장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했다. 거기다 전복까지 넣으면 정말 보양이 될 것만 같은 비주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물론 생각만큼의 비주얼은 나오지 않았다. 요리 전공자라 한 가지 얻은 건 멋진 요리를 많이 봐왔던지라 요리 이미지에 대한 눈이 생각보다 높다.
요리를 하다 보니 가장 하기 쉬운 요리는 뭔가 푹 삶거나 푹 끓여 재료 본연의 맛을 우린 후 거기에 약간의 간을 첨가하는 요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제는 돼지고기를 사서 보쌈고기를 만들었더니 그래도 훌륭한 한 끼가 나왔다. 오늘은 닭과 간 마늘과 양파를 넣고 1시간 푹 고아 뚜껑을 열어보니 뽀얀 국물이 맛있게 우러나 있었다. 여기에 소금 간을 살짝 하고 국물맛을 보니 역시 맛있다. 전복의 내장을 빼지 않은 게 약간 미스라면 미스인데 그래도 내장이 터지지 않고 삶아져 비릿한 냄새는 나지 않아 나름 성공이다.
펄펄 연기 나는 닭을 커다란 접시에 담고 한 김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잘게 찢어 그릇에 담고 전복도 큼직큼직 썬다. 여기에 후추소금을 함께 내어 식탁에 올려놓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식기다. 맛없는 요리도 멋진 그릇에 담으면 맛있어 보이는 효과라고나 할까. 평소엔 그릇장에 넣어두고 쓰는 젠스타일 파스타 용기를 꺼내 담는다.
그리고 가족들을 부른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남편과 만 2세 딸이다. 내 요리를 해보니 평가가 궁금하다. 내 눈은 남편의 입만 따라간다. 우리 남편의 평가는 '괜찮은데요'가 맛평가의 전부다. '이런...'
맛이 있다는 건지 맛이 없다는 건지 애매한 답을 들은 후 '맛있어 죽겠는데요'라는 평가를 받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운다. 다시 달력을 보니 초복이 열흘 정도 남았다. 다음 요리는 뭔가 색다른 걸로 준비해야겠다.
주부가 되어보니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내 요리를 어쩔 수 없지만 먹어주는 가족들이 있어 행복하다. 대학 다닐 때는 실습하고 남은 음식을 가족들에게 갖다 줘도 아무도 먹지 않아 키우던 개에게만 주었는데 이제는 내 음식을 먹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족들이 있다는 생각에 책임감과 행복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열심히 요리 기능을 익혀 나도 우리 딸이 나의 음식이 그리워지는 따뜻한 엄마의 집밥으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