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모양성제(10.9~10.13)
어렸을 때 축제라 하면 '전주난장'이 떠오른다. 엿가락을 길게 늘이고 가위질을 해대며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엿장수하며 내가 스스로 걷고 있는 건지 공중 부양해서 떠가는 건지 모르게 인파에 휩쓸렸던 어린 시절 기억 속 축제. 그래도 뾰족하게 남아 있는 한 가지 잔상은 바로 일상과 다른 '흥이 있었다'라는 점이다.
그러고 나서 갓 어른이 되어 가본 축제는 일부러 흥을 만들기 위한 커다란 음악소리와 먹거리 부스, 그리고 꽃이나 나무를 전시해 놓은 풍경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그래서 그런지 축제를 외면하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러다 요즘 가을을 맞아 오랜만에 지역 축제에 다녀보니 또 다른 면모들이 많아 한껏 즐기고 있다. 특히 이번에 다녀온 모양성제는 더욱 그랬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창을 참 좋아한다. 선운사를 비롯해서 고창 읍성, 청보리밭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에 가끔 압도당한다고나 할까. 버스로 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운전을 하고 가야 하는데 오가는 시간이 꽤 걸린다.
이번주에 정말 오랜만에 선운사에 꼭 가고 싶어 먼 길을 떠났다. 아쉽게도 꽃무릇은 많이 졌지만 선운사로 향하는 등산길은 녹음이 조금씩 저물어가는 풍경과 맑은 공기, 시원한 시야로 기분을 좋게 하기 그지없다. 그러다 우연히 고창읍성에서 늦은 점심이나 할까 하고 방향을 틀었는데 축제를 한다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고창읍성은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하러 간 기억이 있어서 특별하다. 특히나 읍성을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같은 것이 특별해 왠지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가족단위 관광객들도 지역주민들도 행복한 힐링을 한다.
지난번 보령머드축제에서 즐긴 것처럼 패밀리존, 피크닉존, 플리마켓존 등으로 세심하게 구분하여 축제 대상자를 타기팅했다는 점이 참 좋다. 특히 슬로건 자체를 ‘온고 Z신, 옛것에 MZ를 얹다’라는 흥미를 자아내는 워딩에서도 뭔지 모르지만 재미를 불러일으켰다.
우리 가족은 3인으로 끄트머리에 살짝 걸친 MZ세대 부모와 3세 아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이와 반나절 놀기에 너무 좋았다. 먼저 축제가 시작되는 부스에서부터 아이가 좋아하는 에어바운스와 빈백, 돗자리가 깔려있어 가족 단위로 놀기가 아주 좋았는데 우리는 먼저 파머스 마켓에서 땅콩빵을 한 봉지 사서 들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고소한 맛에 돈이 아깝지 않았다. 역시 아이의 눈을 가장 끄는 간식은 솜사탕이 아닐까. 우리 아이도 역시 현란한 무지개 솜사탕에 넋이 나갔다. 어쩔 수 없이 작은 것 하나를 사주고 모양성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모양성은 정말 성다운 면모가 있다. 일단 자연석 주춧돌을 쌓아 올려 만든 성곽의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일까. 고창의 푸른 하늘과 성곽, 그리고 나부끼는 깃발이 뭔가 그 시대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성문을 들어가면 잔디밭이 넓게 깔려있는데 그곳에 작은 텐트들이 있어 쉴 수 있다. 특히 곳곳에 재미있는 콘텐츠가 설정되어 있는데 먼저 미리 소원을 받아 등을 켜놓은 길을 걸어가며 우리 가족도 소원을 빌어봤다. 그리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허름한 초가집에서 귀신과의 윷놀이, 제기차기를 한번 하고 돌아다니는 한량 화동에게 초상화도 그려봤다. 지나가다 보니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니 한복도 빌릴 수 있는 모양이다. 조금씩 어두워지니 조명이 하나둘 켜지는데 우리는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오랜만에 축제를 제대로 즐겨본 것 같다. 사람에 치이는 축제도 좋지만 곳곳에 사람이 쉴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심어놓으니 소소하게 축제를 개인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 모양성제는 특히나 축제의 주제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구성해 놓으니 더욱 일상과는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앞으로는 지역축제에 열심히 참가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