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적은 연민이었다
요즘 목요일이 기다려진다.
내 삶에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다시 자리잡았다.
미술관 도슨트 양성과정.
누구에게 말하긴 조금 쑥스럽지만, 이 목요일만큼은 나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누군가의 삶이 담긴 작품을 바라보고,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시간.
햇살이 좋았던 오늘 오후, 나는 평소보다 일찍 미술관에 도착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도는 봄의 초입,
벚꽃나무들은 제멋대로 가지를 뻗어가며 서서히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맨 앞줄 한쪽 끝.
원래는 조용히 뒤쪽에 앉아있고 싶었지만 안경을 두고 온 탓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 끝에, 조금 의외의 풍경처럼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차분하게 웅크린 몸.
깔끔한 군청색 수트.
행커치프와 은은한 향수.
적당히 레트로하고, 묘하게 일본식 정취를 풍기는 감각.
‘역시 미술하는 사람이구나.’
내 안의 편견 회로가 재빨리 작동했다.
하지만 그 청년은 미술학도가 아니라, 오늘의 강사였다.
정제된 목소리와 또박또박한 단어 선택, 작품을 향한 태도에서 느껴지는 깊이.
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되살리는, 작은 연금술사 같았다.
오늘의 주제는 “북으로 간 화가들.”
정창모.
나는 그 이름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 〈북만의 봄, 1966〉앞에서는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소녀가 말을 물가로 끌고 가 물을 먹이는 장면.
전쟁이라는 단어가 암시되어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평화로웠다.
마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단 하나의 기억만 남겨둔 것처럼.
강사는 말했다.
“정창모 화백은 전쟁 중 헤어진 여동생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해요.”
그 순간, 그림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말을 끄는 소녀는 그저 모델이 아니라 화가가 기억하는 ‘누군가’였던 것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에는 기억이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기억은 늘 연민을 동반한다.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타까움, 무너진 일상의 재조각들.
그게 회화의 언어다.
나는 생각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사람을, 집을, 계절을, 말의 소리마저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도 기억을 남기기 위해 붓을 든다.
이별을 그리기 위해, 그리고 아주 조금은 마음을 붙들기 위해.
〈북만의 봄〉은 그래서 더 애틋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기억의 연민’이
그날 미술관을 아주 조용하게 만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 뿔테 안경을 벗고 조용히 정리하는 강사,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살짝 흔들리는 벚꽃 가지.
모든 게 하나의 프레임처럼 보였다.
그림도, 현실도, 어쩌면 같은 프레임 속의 이야기들 아닐까.
우리는 각자의 프레임 안에서 사라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말을 물가로 데려가는 소녀처럼 기억의 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간다.
그 흔적이, 연민으로 남아 이렇게 화폭 위에 오래도록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