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신과 그의 작품
봄바람이 불었다.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자, 앙상했던 벚꽃 나무에도 작은 꽃봉오리가 맺혔다.
봄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위에도 스며들고 있었다.
내가 공부하는 미술관은 산세가 아름다운 등산로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차를 타고 국도를 따라 30분쯤 달리면 도착하는 곳.
등산로 입구에서 내려다보면 저수지가 멀리 보이고, 겹겹이 포개진 산줄기가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자연이 만든 풍경화 속으로 첫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었다.
미술관은 먹고 마시는 것에 엄격했다.
하지만 커피 한 모금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이었다.
첫 수업의 긴장과 기대를 삼키듯이, 나는 몰래 숨긴 아이스 라떼를 가방 속에서 꼭 쥐었다
오늘 수업이 열리는 세미나실로 들어섰다.
강사는 유명 대학의 교수라고 했다.
나는 그 말만으로도 이미 허영심이 채워졌다.
정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전공자에게 직접 배운다는 것 자체가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마이크를 타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퍼졌다.
“이번 수업은 이 지역에서 활동한 미술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앞으로 12번의 수업 동안,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미술가들의 작품을 깊이 들여다볼 거라고 했다.
매주 다른 주제, 강사마다 다양한 전문 지식이 융합된 강의. 기대감이 점점 커졌다.
나는 미술가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미술가들은 특이하다.’
적어도 내 편견 속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오늘 수업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니, 그 편견이 더욱 굳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초록색 나무 한 그루가 걸어가듯이, 화려한 초록 정장을 입고 나타난 사람.
조각상처럼 흰머리를 단정하게 틀어올린 노신사. 그리고 바람이라도 맞은 듯 헝클어진 머리로 깊은 사색에 빠진 사람. 그들은 한 폭의 초현실주의 그림 같았다.
그러다 문득 스크린에 나타난 초상화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좌한 채 관복을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
미간의 주름, 길게 늘어뜨린 수염, 무엇보다 그 눈빛—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마치 화면 너머에서 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나는 움찔했다.
그리고 똑같이 화면을 노려봤다.
“허담 채용신(1854~1920)은 초상화의 대가로, 일찍이 도화서 화원이었던 심전 안중식, 소림 조석진과 함께 어진(御眞) 모사 작업에 참여할 정도로 이름이 나 있었습니다. 초상화뿐만 아니라 화조화, 인물화, 산수화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죠.”
강사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지만,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을까?’
이건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었다.
그림 속 인물은 나를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갑자기 켜진 히터 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채용신의 눈빛이 더 또렷해진 것만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이건 첫 수업이 아니라, 첫 번째 미스터리였다.
결국, 거대한 깨달음은 하나의 작은 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방금 내 가슴을 울린 이 한순간의 전율이, 앞으로 이어질 12번의 수업을 이끌 힘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알 수 없는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다시 한 번 화면 속 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