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차린 밥이 사치가 된 이유

한 끼가 가벼워진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by 보석바

요즘 내가 일하는 곳은 농촌의 한 면사무소다. ‘한시임기제’라는 다소 낯선 고용 형태지만, 경력 단절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과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인 오후 다섯 시에 딱 맞춰 끝나는 근무 조건이 좋아 벌써 7개월째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친구가 이 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다. 내가 이곳에서 일한다고 말한 지 불과 며칠 만이었다. 군청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팀장으로 오면서, 나는 한시임기제로, 친구는 관리자로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됐다.


관계는 그대로인데 위치는 달라진 묘한 풍경 속에서, 어느 날 우리는 지역에서 유명한 순두부집으로 점심을먹으러 갔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 단출한 반찬, 그리고 갓 지은 밥 한 공기. 특별할 것 없는 식사였지만, 그 한 끼는 유난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식사는 단순한 ‘먹는 행위’가 아니라 **‘제대로 차려진 한 끼’**였기 때문이다.


도시의 식사는 왜 늘 허전한가

도시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음식을 접한다. 배달 앱, 편의점, 프랜차이즈, 밀키트까지 선택지는 넘쳐난다. 하지만 “오늘 잘 먹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도시의 식사는 이제 ‘식사’가 아니라 **‘연료 보충’**에 가까워졌다. 혼자서, 빠르게, 화면을 보며 틈새 시간에 해치우듯 먹는다. 음식은 많아졌지만 식사를 구성하던 요소인 시간, 사람, 자리는 사라졌다. 식사는 원래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니라, 하루의 흐름을 멈추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사회적 장치였다. 그러나 도시의 속도는 이 구조를 해체해버렸다.


집밥이 가장 비싼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가장 사치스러운 식사는 ‘집밥’이다.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재료비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장을 보고 메뉴를 계획하고 조리하고 치우는 시간과 노동을 함께 지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부담은 대개 워킹맘에게 집중된다. 우리에게 집밥은 휴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업무’다. 배달과 외식은 편리함이 아니라, 이 과도한 노동을 피하기 위한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 된다. 문제는 그 결과로 우리가 ‘누가 차려준 식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점이다.


순두부 한 그릇이 특별했던 이유

면사무소 근처 순두부집의 점심은 비싸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식사에는 도시에서 사라진 것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나를 위해 차려진 밥상, 마주 앉은 인연, 그리고 온전한 식사 시간. 그날의 순두부는 영양이 아니라 정서와 관계를 회복하는 식사였다.


우리는 지금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음식을 먹지만, 훨씬 적은 ‘식사’를 경험하고 있다. 맛집은 늘어나는데 기억에 남는 밥상은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대로 차린 밥’이 사치가 된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음식이 아니라 삶의 리듬과 돌봄의 구조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 그리워하는 것은 집밥의 맛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밥상을 차려내던 그 다정한 시간과 자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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