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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31. 2017

[D+22] 포르투에서 일어난 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비행기 티켓, 그냥 날려버릴까? - 미니양


 포르투갈에 한 달 머물기로 하고난 뒤, 유럽까지 갔는데 다른 나라라도 잠깐 다녀올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유럽이야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육로로 다른 나라로의 이동이 편하니까. 그래서 옆에 붙어있는 스페인과 가려고했다 가지 못한 모로코까지 묶어서 일주일만이라도 다녀오자 싶었다. 일찌감치 저렴한 가격에 저가항공을 예매해놓고 스페인, 모로코로 떠나려고 했는데!! 막상 리스본에서 지내다보니, 리스본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워 다른 곳으로의 여행이 썩 내키지 않았다. 결국 스페인, 모로코 티켓은 그냥 날려버리고 리스본에 계속 머무르기고 하고, 가까운 포르투나 다녀오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도 1박 2일로.


 기차보다 싸게 나온 라이언에어 티켓으로 끊는 바람에 새벽같이 일어나야했다. 아침잠이 많기로 유명한 나는 아침 7시 50분 출발이라는 시간이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새벽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으니까. 당일 아침 울리는 알람소리에 깨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 고래군에게 말했다.


"오빠! 가지말까? 나 리스본에 있어도 좋은데..."

"그... 그럴까?"

"흠...... 아니야, 가자!"


 모로코행 비행기 티켓을 날려버리고 나서 포르투 가는 비행기 티켓까지 날려도 될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가지 않으면 포르투에 예약해놓은 호스텔 비용도 날아간다는 사실이. 내가 부자도 아니고, 돈을 그렇게 날려버린다는 게 아깝기도 하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공항으로 향했다. 심야버스와 데이버스 첫차를 갈아타고 공항 제 2터미널로 가는 버스까지 탄 끝에, 라이언에어에 몸을 실었다. 리스본 상공을 구경하다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포르투에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2. 결국 문은 열리지 않고- 고래군


 이륙 전에 눈을 잠시 감았는데, 착륙하는 기체 충격에 눈을 떴다. 아…… 난 얼마든지 더 잘 수 있는데……. 그런데 내가 언제 잠 들었지?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려 공항에 내린 우리는 포르투 시내를 향하기 위해 전철을 탔다. 리스본에서 사용하던 교통카드는 이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꽤 긴 시간을 기다려 자동판매기에서 새로 교통비를 충전한 교통카드를 구매해야 했다.


 문득 인천에서 리스본까지의 길고 긴 하루가 떠올랐다. 아마 어쩌면 오늘도 꽤나 긴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새벽부터, 아니 사실 어제 밤으로부터 이어지는 포르투를 향하는 길은 이제 비로소 오전 시간에 이른 셈이다.


 공항 역에 들어서자 열차가 곧 출발하려고 출입문을 닫으려다, 뒤늦게 잡아타는 사람들이 다시 문을 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으악!’하는 비명을 작게 지르면서 우리도 허겁지겁 뛰어서 간신히 맨 뒷 칸에 올라탈 수 있었다. 우리처럼 뒤늦게 잡아탄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지, 앞 칸에는 상대적으로 한적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저기 앞 칸에는 사람 적은 것 같은데? 아이고 숨차네. 유난히 힘든 것 같다?”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래. 다음 역에서 옮길까요?”

“지금 걸어서 말고 다음 역에서? 아! 내렸다가 다시 타자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와 함께 우리는 바로 다음 역에 열린 출입문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어떤 남자 한 명도 함께 내렸다. 그리고 그는 전력을 다해 앞 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뛰려는데, 오히려 그녀는 천천히 걷는다. 하긴 버튼 누르면 문이 열릴 테니까… 그 남자가 잡아탄 문이 닫히고, 잠시 후 우리도 그 출입문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녀가 열림 버튼을 눌러대는데, 문이 안 열린다. 그리고 잠시 후 열차가 출발했다. 우리를 남겨두고 말이다.


“…….”

“………….”


잠시간의 정적이 지나고 나서, 정신을 차린 그녀가 제자리에서 동동 뛰기 시작한다.


“아악!! 문 왜 안 열려!! 눌렀잖아! 문 열라고 눌렀잖아!!”

“그렇게 우리는 낯선 곳에 남겨졌다.


 리스본의 지하철역은 개찰구를 통과하지 않으면 플랫폼으로 들어갈 길이 없는 폐쇄된 구조이다. 그리고 달리는 차량도 기차(train) 형태에 더 가깝다. 마치 한국처럼 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포르투의 전철은 현대식 트램이 먼 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구조에 더 가깝다.


 우리가 덩그러니 남겨진 포르투의 전철역, 그러니까 부티카Botica라는 이름을 가진 그 역은 리스본과는 조금 달랐다. 일단 발걸음을 막는 개찰구가 없다. 플랫폼도 개방되어 있고 말이다. 그냥 사람들이 오가는 길과 바로 맞닿아있었던 것이다.



“우리 어떻게 할까?”

“지금 웃음이 나오냐!! 아우 약 올라! 문 열라고 버튼 눌렀잖아! 다음 차가… 이십칠 분 후에 도착? 아악! 약 올라!!”

“기왕 이렇게 된 거 다음 역까지 걸어가 볼까?”

“다음 역이 어딘지 어떻게 알고?”

“그냥 선로 따라 걸어가면 되겠지 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가 오늘 하루 할 일은 딱히 정해져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열차 티켓 처리 방식도 나갈 때 다시 찍는 게 아니라, 타기 전에 기계에 체크만 하는 방식이고 말이다. 뭐 다음 역까지 가다가 열차 놓치면 또 다음 차를 잡아타면 되겠지.


“어쨌든 여기도 포르투Porto니까”

“응? 뭐라고요?”

“아, 우리 오늘 할 게 포르투 돌아다니는 건데, 여기도 포르투라고.”

“그렇지 뭐.”


그렇게 우리는 다음 역Verdes까지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시의 교통카드 이름도 안단테Andante(느리게)이다.








#3. 어쩌다 마주친, 과부네 - 고래군


 예전에 리스본Lisboa과 포르투Porto를 거쳐, 베를린Berlin으로 떠나는 순간 그녀가 내게 질문했다. 리스본과 포르투 중에 어디가 더 좋은가를 말이다. 그리고 곧바로 자기는 리스본이 더 좋다고 먼저 답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이미 포르투의 구 시가지와 도루 강Rio Douro이 보여준 풍경에 흠뻑 반해있던 상태였다.


 예전에 왔을 때 미처 들르지 못했던 볼량 시장Mercado do Bolhão에도 들르고, 근처의 쇼핑몰과 상점가 등을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예전 찾아왔을 때의 기억과 느낌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 시가지를 한참 헤집고 걸어 다니는데, 문득 우리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우리는 쏟아지는 빗줄기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갑자기 길 건너편으로 이끌었다.


“오빠! 저기 사람 많다. 저기 가서 밥 먹자. 어차피 점심 먹어야 하잖아.”


 소나기를 피해 무작정 들어간 Casa Viúva라는 이름의 그 식당은, 아무리 봐도 그 동네 사람일 것만 같은 ‘아저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제히 우리를 돌아보는 아저씨들의 분위기 때문에 나는 잠시 다른 곳으로 향할까 고민했다. 반면 그녀는 로컬 식당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누군가 방금 식사를 마치고 떠난 듯 미처 정리하지 못한 테이블 하나만 비어있었는데, 냅다 그 테이블에 가 앉은 것이다. 나는 따라 앉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이 식당 손님 중에 여자는 당신 한 명뿐이라고. ‘아 그래?’라고 대답하는 그녀는 별로 괘념치 않았지만 말이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매니저 같은 아저씨가 홀연히 걸어와 메뉴판을 건네주고는 다시 사라졌다. 메뉴판의 겉장에는 오늘 날짜와 함께 ‘오늘의 메뉴’라고 적힌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우리는 단어들을 하나씩 찾아보면서 메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우리 옆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는 메뉴판의 한 줄을 가리키면서, 자신이 들고 있는 요리 하나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한 줄을 또 가리키면서 나머지 요리 하나를 보여준다. 활기차게 움직이다 우리 곁에 멈춘 아저씨의 활기찬 표정에 우리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추천해주신 두 가지 음식과 레드 와인 한 팟pot을 주문했다.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 한 분이 매니저 아저씨와 농담을 나누면서 장난스럽게 투닥거리며 계산하고는 가게를 나선다. 우리보다 먼저 주문한 사람들에게 차례대로 음식이 전달되고, 드디어 우리에게도 와인과 음식이 도착했다.


식사를 마친 그녀의 얼굴은 어느 새 와인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서며 영수증을 확인한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돌아섰다.


“오빠! 가서 1유로 받아와!”

“응? 왜?”

“우리 빵 안 먹었는데, 여기 먹었다고 찍혀 있어. 가서 물어봐.”


다시 들어가서 영수증을 보여주며 ‘빵 안 먹었는데?’라고 하자, 아저씨가 찡긋 하면서 동전을 내게 건네주었다. 다시 나오자 그녀가 나를 맞이해준다.


“잘 했어요. 그런데 ‘과부’래.”

“응? 뭐가?”

“여기 식당 이름이 비우바Viúva잖아. 그게 과부라는 뜻이래. 여기 이름이 과부의 집Casa Viúva이었어.”

“과부네라고 부르면 되겠네!”





#4. 신발 때문에 힘들다고!! - 미니양


 점심부터 와인을 거나하게 마시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다행히 그 사이 비도 그쳤길래 열심히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힘들면 도루강에 털썩 주저 앉아 쉬기도 하고, 커피도 한 잔 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가 온다며, 길이 미끄러우니 고래군이 신으라고 했던 무겁고 딱딱한 워커 신발 때문에 난 힘들기 시작했다. 열심히 걸을 수는 있었지만, 많이 걸으니 발바닥이 아팠다. 도루강 건너편 '빌라 노바 데 가이아'에서 Trindade역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얼마나 멀어보였는지 모른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한 후 맥주 한 캔을 수면제 삼아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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