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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Apr 12. 2017

[D+23] 포르투, 아베이루, 다시 리스본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 달 살아보기


#1. 할아버지들 오랜만입니다- 고래군


 예전에 이곳 포르투Porto에 왔을 때, 커피와 쉴 곳을 찾던 그녀와 나의 앞에 불현듯 나타난 가게가 있었다. 가게 바깥 유리에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합쳐서 1유로’라고 붙여놓은 종이를 보고, 우리는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빛 입자처럼 안으로 들어섰다. 뭐라고 주문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녀가 과감하게 행동했다. 바깥에 붙어있던 종이를, 손에 들고 다니던 카메라로 찍어 와서는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던 할아버지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본 할아버지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정말 말 그대로 ‘빵’ 터진 것이다. 어리둥절한 채로 어색하게 웃고 있는 우리에게 머리 위로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말이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린 우리도 함께 웃기 시작했다. 그녀가 기껏 카메라에 담아온 그 종이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줄에 매달린 상태로, 바람에 빙그르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함께 웃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그 할아버지에게 묻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는 거였을 테다. 그러고 보니 일하는 분들이 모두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다. 빵 터진 할아버지가 사정을 설명했나보다. 갑자기 가게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들이 전부 얼굴이 붉어지도록 크게 웃기 시작했다. 가게 전체가 유쾌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상 벤투 역Estação de São Bento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나의 시선은 바닥 타일들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다음 걸음이 닿을 곳을 찾으며 지구의 중심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짧은 포르투 여행을 마치고 이제 이곳을 떠나는 길을 걸으며, 그 때를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 포르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그곳에 대해 말이다. 그런데 앞서가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나를 묘한 눈빛으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왜요? 왜 안 가?”

“오빠, 안 갈 거야? 그렇게 그리워하던 할아버지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어스름한 기억을 더듬어 완성한 과거의 그 시간과 공간이 갑자기 ‘지금-여기’가 되는 마법이 일어났다. 우리는 지금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나 지금 여기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아요. 그래서 일부러 이쪽으로 길을 잡았어.”

“우리 기억하지는 못하겠지?”

“당연하죠. 몇 년 전에 한 번 들렀던 건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전히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할아버지들이다. 여전히 느긋하고 푸근하기만 하다.


 다행이다. 떠나기 전에 다시 이곳을 만날 수 있어서.

 그리고 다행이다.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어서.







#2. 포르투갈은 종합선물세트 - 미니양


 포르투에서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아베이루에 들러보기로 했다. 포르투에서 1시간 거리인데다 어차피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다고 하니 어떤 곳일까 궁금했으므로. 상벤투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포르투갈 날씨답지 않게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겨울에도 비가 쏟아지는 날은 많지 않은 편인데, 마치 우리나라 여름 장맛비 같았다.


 완행열차인 아베이루행 기차는 세찬 빗속을 뚫고 아베이루로 향하고 있었다. 비오는 날의 기차여행은 뭔가 분위기가 있었다. 비오는 포르투갈 풍경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니, 고래군은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글쓰고, 술 마시는 것만 좋아하던 그가 여행 좋아하는 나를 만나 힘들게 사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1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비는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비가 오다가는 아베이루 구경은 커녕 아베이루역에서 제대로 기차나 갈아탈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베이루역에 내렸을 때는 거짓말같이 비가 그쳐있었다. 흐리긴 하지만, 간간히 맑은 얼굴도 보이는 날씨에 기분좋게 걷기 시작했다. 아베이루는 운하의 도시라서 포르투갈의 베니스라고 불린단다. 아제냐스 두 마르는 포르투갈의 산토리니라고 하던데, 생각해보면 포르투갈은 유럽 곳곳의 좋은 풍경을 축소해놓은 종합선물세트 같다.







#3. 아베이루에서 처음 만난 ‘할아버지’ - 고래군


 아베이루 역Estação de Aveiro에서 큰 길을 따라 걷다 문득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길이 나를 부른다. 이쪽이 궁금하지 않아? 이리 와 보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저쪽으로 가보자!


 별 거 없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 뭐. 그런데 길이 나를 부른 이유가 있었다. 그 길 안쪽으로 들어서자, 우리 앞에 시장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침 잿빛 먹구름이 다시 빗방울을 두어 개 우리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 안으로 들어가 보라는 거지?


 우리가 만난 시장의 이름은 ‘마누엘 피르미누 시장Mercado Manuel Firmino’이다. 이미 시각은 정오를 한참 지났다. 그래서인지 건물 주변은 물론이고, 시장 안에도 인적이 드물다. 몇몇 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문을 연 가게들도 슬슬 정리하고 있나보다.


 시장 건물 가운데를 관통해서 반대편 끝에 다다르자, 테이블 여러 개가 놓여 있다. 아마 시장 상인들과 동네 주민들이 밥 먹는 식당이겠지. 그러고 보니, 우리는 지금 ‘배가 고프다.’


 무작정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판을 들여다 보니, 모두 포르투갈어로 되어 있다. 뭐 이제 대충 몇 가지 메뉴는 읽을 수 있다. 보자… 수프가 있고, 구운 닭요리가 있구나. 그리고 또 이건 뭐지? 이 단어는 사전을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주문을 받으러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쩌고저쩌고 잉글리쉬?”라고 물어본다. 그녀가 끄덕이자, 갑자기 할아버지가 주변에 돌아보며 사람을 찾는다. 뭐지? 뭐 하시는 거지?


 이윽고 연인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한 남자 손님이 손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그에게 다가가 우리 테이블을 가리킨다. 그리고는 가게 안쪽으로 그냥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그 젊은 남자 손님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영어로 메뉴를 설명해주고는, 주문을 받아 간다. 어라? 저 사람 손님 아니었어? 할아버지 손자인가? 잠시 후 한없이 푸근한 표정이 인상적인 주인 할아버지가 말없이 우리 앞에 음식을 내려놓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셨다.


 잠시 후 나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따스한 감자 튀김 때문이다. 아, 도저히 내가 가진 언어의 장(場)에 포착할 수 없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리고 이 나라는 할아버지가 있는 곳은 왜 한결같이 나에게 행복한 추억만을 남겨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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