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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Dec 20. 2024

풍경이 그대로 눈에 담기었다

몰타 블루 그로토

 몰타 여행을 다녀왔던 한 친구로부터, 자기는 '고조섬(Gozo Isla.)'이 좋았다고 꼭 가보라고 추천을 받았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서라도 고조섬에는 가 보자고 마음을 먹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몰타에 도착하니, 마음을 채우는 건 그저 유유자적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뿐. 고조섬은 몰타의 가장 북쪽에 있는 섬이라서 버스를 타고 다시 배로 갈아타고 가야 일단 도착이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조섬을 다녀오려면 적어도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꼬박 들여야 하는 여정을 필요로 했다. 느긋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과는 서로 등을 돌리는 일이어서 선뜻 길을 나서기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전망이 눈부실 정도로 좋은 숙소에 있으려니 더더욱 어디로 움직이기가 싫고, 에라 그냥 맥주나 와인 한 잔 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만 한가득. 덕분에 숙소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그래도 어디 한 군데는 보러 가자는 생각은 또 들어서 여기저기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이것저것 찾아보던 와중에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이 만들어 낸 아주 멋진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조금 더 찾아보니 <블루 그로토(Blue Grotto)>라고 하는 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몰타 남동쪽 해안에 있는 바다 동굴(해식 동굴)인 모양이다. 그저 사진으로만 봐도 멋져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고조섬을 대신하여 '블루 그로토'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우리의 숙소는 '그지라'에 있었기 때문에 일단 발레타 버스터미널(Valletta A10, Valletta, 몰타)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기서 다른 버스(74번)를 기다려서 갈아타니 '블루 그로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블루 그로토'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진 않았다. 시간표 상 와야 하는 버스편 하나가 중간에 없어지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같은 노선을 기다리는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갔다. 우리도 터미널에서 커피와 파스티찌를 사서 입에 물고는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역시나 뒤늦게 온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래도 우리는 다행히 앉아서 갈 수가 있었다. 대략 1시간쯤 달리니 넓게 펼쳐진 바다와 함께 해안 절벽이 이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조금 걷자, 감탄이 터져 나오는 풍경이 나타났다. 사진으로만 봤던 '블루 그로토'는 실제 풍경으로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일부러 만들어 놓은 돔 건물처럼 뚫려있는 거대한 바위의 모습이 특히 멋있었다. 감탄과 함께 계속 사진을 찍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하는 풍경이었다. 인종이나 연령,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들 연신 풍경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이 제법 많아서 비록 조용하게 앉아서 햇살 아래로 넘실대는 지중해의 모습을 보긴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날엔 동굴 근처로 배를 타고 가까이서 둘러볼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갔던 그 날은 바람이 무척 많이 불었기 때문인지, 배 운행은 하지 않는 듯했다.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챙겨간 음료수와 파스티찌를 먹었다. 그 와중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보기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의 여행이 쉼표가 되어 주기도 하는데, 그런 여행에서도 '블루 그로토'는 다시 한 번 잠시 쉬어갈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살면서 이런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이 행복했다.




 잠시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데, 간혹 볼트나 우버를 타고 여기까지 찾아오는 여행자들도 보인다. 길가에 차를 대고 승객을 기다리는 승용차들도 여러 대 있었는데, 경찰이 와서는 그 차들을 모두 쫓아낸다. 아마도 뭔가 규정 위반인 모양이다. 그래봤자 그 차들은 오래지 않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더라. 그러고 보면 꽤 유명한 관광지인데도 주변에 아무 것도 없다. 뭐랄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둬야 한다는 생각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한국 같았으면 벌써 산을 허물어서라도 건물을 올려서 편의점에 카페에 온갖 상업 시설들이 흉측하게 들어섰을 것이다.


 우리도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 '그지라'까지 단번에 가는 버스는 없으니, 일단 '발레타'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 올 때 탔던 74번 버스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가 저 멀리서부터 오는 것을 발견! 길을 건너 무작정 잡아 타고는 교통편이 많아 보이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정 안되면 볼트나 우버를 부르면 되니까! 다행히 버스를 타고 조금 달리자,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곳에서 발레타로 가는 다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친구가 추천했던 '고조섬'에 갔다면 또 그 나름의 좋은 경험과 추억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블루 그로토'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고조섬'은 다음 몰타 여행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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