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단상
이벤트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사회학과 철학을 전공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IT랑도 상관이 없고, 이벤트와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 PD와 비슷하게, 콘서트 PD도 다양한 스킬들을 필요로 하고, 그 스킬들을 숙련시키는 데에는 딱히 전공이 무관하다. 그리고 나는 나의 전공이 결과적으로는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멘토로 생각하는 분들 중 고주원 감독 님이라는 분이 있다. 한 때 비주아스트 라는 회사의 대표로 우리나라의 미디어 아트, 특히나 프로젝션 매핑 분야에서 기술의 최첨단을 달렸던 분이다. 나와는 문화창조아카데미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인연을 갖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평창 패럴림픽 영상감독을 역임하기도 하셨다. 이 분과 처음으로 술자리를 했을 때였다.
엑씽크는 관객과 무대를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게 현존성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현존성이라는 단어, 대학교 이후로 처음 들었다.
발터 벤야민, 아우라, 현존성.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 분은 엑씽크의 맥락을 정확하게 짚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의 기록을 뒤져보면 많은 사람들이 환영했다. 이제 관광지에 가지 않고도 집안에서 그곳을 체험할 수 있다고.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가 되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더욱더 그 관광지에 가고 싶어 지게 되었다.
우리는 모나리자의 사진을 구글에만 검색해도 손쉽게 볼 수 있지만, 유럽여행을 계획할 때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는 코스를 꼭 넣기 마련이다.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모나리자 앞에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방탄에 진공 상태를 유지해주는 그 두꺼운 유리 너머로 있는 모나리자는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보는 모니터 속의 화면보다 결코 선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모나리자를 실제로 보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실제 모나리자를 본 사람들 중에 실제로 보는 것이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것인가?
자크 데리다는 파레르곤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 '주변'을 뜻하는 para와 '작품'을 뜻하는 ergon의 합성어인 파레르곤은 작품은 아닌데 그렇다고 작품의 외부라고 말하기는 애매한 것들을 말한다.
모나리자가 놓여 있는 방탄유리와 그 작품을 둘러싼 넓고 흰 벽과 관광객들의 동선을 제어하는 차단봉이 그것이다. 만약 모나리자가 우리 집 거실 벽에 걸려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의 가치를 지금처럼 인정할 수 있었을까?
공연도 마찬가지다. 공연은 단순히 무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함께하는 관객들과 높은 천장의 거대한 공간. 그 속을 채우는 함성.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파레르곤이다.
파레르곤이 있기에 그 공연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무대 위 아티스트의 아우라가 더 뿜어져 나오게 된다.
엑씽크의 기술은 그 현존성을 더욱 배가시키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공연 무대는 어쩌면 VR 등의 기술이 발전하면 마치 내가 객석에 있는 것처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내가 카드섹션에 참여했다는 경험, 혹은 투표나 퀴즈를 통해 공연에 직업 참여했다는 그 느낌은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이렇게 쓰니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가?
사실 통시적인 사고는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핵심중의 핵심이다. 통시적 사고야 말로 거시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포지셔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