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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초연 Nov 06. 2020

브런치 글을 퇴고하지 않는 이유

지극히 날것 그대로의 마음에 대하여

브런치를 시작한 건 순전히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해서였다. 차오르는 어떤 감정을 아무렇게나 뱉어낼 익명의 공간이 절실했는데 브런치는 그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플랫폼이었다. 그 무렵엔 마음이 번잡해 차마 퇴고를 할 여유도 없었고 그 까닭에 발행한 글은 단숨에 쓰인게 대부분이었다. 특유의 비문과 오탈자, 문장의 나쁜 습관이 곳곳에서 드러나 맨 정신으로 두 번은 읽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님들이 공을 들여 글을 쓰는 데 비해 내 글은 너무 날것 그대로가  아닌가 머쓱한 날도 적지 않았다. 구독자가 열 명, 백 명, 오백 명이 넘었을 땐 '이 정도면 죄송해서라도 각을 잡고 써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브런치 글마저 1)구조를 잡고, 2)초고를 쓰고, 3)빨간 펜으로 좍좍 그어가며 비문을 잡아내고, 4)쓴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퇴고하고 끝내 ‘나도 모르는 내가 쓴 글'로 탈바꿈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극히 날것 그대로의 마음


1. 타이틀

오탈자, 비문보다 가장 큰 부끄러움을 준 건 매거진 타이틀이다. '초연하게 마음 읽기'라는 타이틀에 무색하게 글에서의 나는 단 한 번도 초연하지 못했다. 그라데이션 분노가 여실히 느껴지는 글이나,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잔뜩 부려놓은 글도 적지 않았다. '찌질이의 우당탕탕 고해성사' 정도가 어울릴 듯한 글을 절뚝절뚝 발행해놓고선 초연하길 바라다니, 부끄러웠다. 그 까닭에 매거진 제목을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일었지만, 끝의 끝의 끝까지 그러지 않았다. 너무나도 모든 일에 초연하고 싶었던 그때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었다.


2. 주제

그간 여러 마음을 남겼다. 물론 제대로 읽은 마음은 몇 개 없다. 내가 겪은 마음이 어느 하나 명료하지 못했던 까닭도 있을 터였다. 퇴고하게 된다면 마음은 하나의 색깔을 가지게 될 게 분명했다. 깔끔한 구조, 군더더기 없는 문장, 확실한 맺음까지. 두 번 읽어도 부끄럽지 않고 '잘 썼네' 생각하고 지나갈 깨끗한 마음을 남겼겠지. 내가 지나온 시간은 분명히 그게 아닐 텐데. 슬프면서도 기쁘고, 안타까우면서도 화나고, 미안하면서도 시원하고, 이상하게 덕지덕지 엉겨있던 그 마음을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게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으로, 찌질함은 찌질함으로 스무 개 남짓의 글로 고스란히 남았다.  


3. 문장

퇴고하지 않은 문장에는 날것 그대로의 내가 있다. 주저함이 많은 성미를 고스란히 빼닮은 쉼표 많은 문장.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처럼 고치기 어려운 오탈자와 맞춤법 오류, 굴곡 많은 매일을 통해 얻은 특유의 호흡, 회피형 특유의 급작스러운 끝맺음까지. 너무나도 나를 닮은 문장이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고백하고 있다. 바꾸고 싶던 과거 한 시절을 끝내 수정하지 못했던 것처럼, 엉망인 문장을 엉망인 채로 남겨두었다.

서른 살의 마음을 서른하나가 되어 다시 읽는다. 헤어져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뭐 그런 글은 도대체가 제정신으로 썼나 싶다.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그런 걸 썼겠지. 문장, 구조, 마음까지 어느 하나 유치하지 않은 게 없다. 글을 싹 밀어버릴까 생각했지만, 한동안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지난 1년간 이 이상한 고해성사를 무려 700명이나 구독해주었고, 그 말은 즉 700명의 누군가에겐 이 엉망인 글이 마음에 닿았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 까닭에 앞으로도 마음에 대한 글은 퇴고하지 않을 예정이다. 나쁜 마음이 움트는 날이면 나만 이렇게 나쁜 년인지, 나만 이다지도 찌질한지 궁금해하면서 멍청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일기를 쓸 것이다. 너무 좋아서 저 멀리 도망가버린다거나, 또 너무 싫어서 덥석 안아버리는 이상한 시절을 남길 것이다.


싫으면서 좋고, 좋으면서 싫고, 기쁘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화나고, 화나면서 기쁘고, 그렇게 어리둥절 지나간 마음을 지나간 그대로 두지 않고 차근차근 복기하다 보면, 또 언젠가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혼란스러운 마음에 위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 나만 찌질한 사람이 아니구나, 그걸 알게 되는 순간 사는 게 조금 덜 외로워질지도. 그런 마음이 모이고 모여 내일도 모레도, 다음 달도, 다음 계절도 살아낼 작은 온기가 될 수도 있으므로.




* 늘 생각하지만... 브런치는 익명이라 정말 다행이다.

불나방...너무나도 불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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