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영원한 마음에 대하여
여기만 아니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을 때가 있다. 여기만 아니면 인생도, 인간관계도, 사랑도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마음. 여기가 아닌 저기에는 분명히 행복이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예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를 떠도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면 예감은 확신이 된다.
그런 마음에 이름을 붙여 주었다.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병.' 그리고 그 병이 또 도졌다. 서른이 넘어가고 어느 정도 견디는 법을 터득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개뿔.
오산이었다.
사실 살아오는 동안 자주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이라고 외치며 다녔다. 글이든 관계든 잘 안 풀릴 때는 대책 없이 휴학을 했다. 4년이면 졸업할 학교를 8년이나 다녔다. 고작 1년 남짓 있었던 호주에서도 멜버른, 애들레이드, 캥거루 아일랜드, 브리즈번, 시드니까지.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곧장 거처를 옮겼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3개월은 신나게 다니다가, 점점 일이 익숙해지면 퇴사 충동에 사로잡혀 포트폴리오를 다급하게 추가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병,
과연 나만의 마음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출근길에 문득 퇴사를 다짐하고 곧장 사표를 올렸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여러 번 읽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중 정말 일이 고되 급작스럽게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더는 이 일에 힘을 쏟을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해진 마음, 완전히 질려서 돌아서버리는 일. 이른바 '번아웃 퇴사'라고 할 수 있겠지.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병의 필수조건은 바로 '번아웃'이 아닌데도 그만두고 싶은 데 있다. 여기가 완전히 싫은 건 아니지만, 또 완전히 마음에 차지 않는 애매모호한 마음. 여기에서는 내가 찾는 것을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은 불안. 하루라도 빨리 여기를 떠야 할 것만 같은 어떤 강박. 내가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저기에 있는 남들은 행복과, 사랑과, 우정과, 돈을 모두 찾아버릴 것만 같은 초조. 결국 나만 여기에 남겨져 오래오래 외로울 것 같은 공포.
그런 이유 때문에 자꾸만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이라 외치며 옮겨 다니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만족스럽지 못한 오늘이 시원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자 문득 휴학과 입사, 퇴사와 여행을 반복한 나는 여행과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도망치는 걸 잘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와 저기 어쩌면 어디도,
하지만 어디엔가
이번에도 거의 비행기표를 끊을 뻔 한걸 겨우 추슬렀다. 콘텐츠팀이 없어지고 난데없는 부서에 발령받은 게 2개월, 그동안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일은 그대로라고 하지만 직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 피차간 불편한 일이었다.
왜 일까. 늘 여기만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주말 내내 사람인과 스카이스캐너를 습관처럼 뒤지다 그냥 드러누웠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시간에 출근했다.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병'을 누를 수 있는 건, 오직 단 하나. 멀리 떠났다 돌아와도 내가 찾는 마음은 그곳에 없었다고 꾹꾹 타이르는 것뿐이었다.
마음이 지옥일 때는 여기도, 저기도 그 어디에서도 괜찮아질 수가 없다는 걸 이미 태평양을 가로지르면서 깨달은 바가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멋진 일이 거기에 간다고 해서 벌어질 리 없다. 그건 1년 넘게 떠돌며 비싼 값에 터득한 인생의 진리였다. 찜찜한 걸 여기에 남겨두면 저기에 가서도 영 마음이 불편할 거라고. 그러니 내게 주어진 마지막 몫만 해결하고 시원하게 떠나자고 다짐해본다. 어른의 일이란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어디에 간다한들 나는 완전히 안녕할 수 있을까. 늘 어디에 중요한 걸 두고온 느낌.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나는 어디를 가도 또 어딘가를 헤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영영.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 내 청춘의 영원한/최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