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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원 Sep 20. 2018

가장 두려운 경쟁자

불안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론

누군가 내게 가장 두려운 경쟁자가 누군지 묻는다면 누구라고 대답할까.

인사이트 넘치는 사람? 압도적인 자본가?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복한 사람'이라 답할 것이다. 

불안에 대처하는 본인만의 방법론을 구축한 사람. 

그리고 난 그 방법론을 찾고 있었다.




어느덧 20명에 달하는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가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곤 한다. 


'만약 내가 우리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난 왜 이 조직에 존재할까? 뭘 기대할까? 내가 그 기대를 채워주고 있을까?', '성장 그래프가 수렴할 때 우린 방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건강한 부담감으로 간주하지만 가끔 업무 과다로 심신이 쇠약해질 땐 그 불안감에 짓눌리곤 했다.




남성들이 '맨 박스'에 갇혀 남자다움을 강요받는 것처럼 리더들은 그들만의 '리더 박스'에 갇혀 리더다움을 강요받는다. 대중이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것처럼 슈퍼 히어로가 되어 업무를 만능으로 처리하며 구성원에게 인사이트를 뿜어내며 지쳐선 안 된다고. 


나 역시 5년 전 창업 당시 책임감에 취해 그 박스로 스스로를 무장했었다. 그땐 꽤나 잘 작동했다. 


'대표'.


그 박스가 참으로 멋져 무슨 업무든지 쉽게 보였고 내 역량으로 해결 가능했다. 세무사 수수료를 아끼려 독학으로 부가세 신고를 했으며, 특허 출원 수수료를 아끼려 홀로 5일 만에 특허 출원하기도 했다. 함께하는 동료는 3명이었으며 우린 친구와 같았다. 힘들어도 내색할 수 있었고 지칠 땐 쉴 수 있었다. 호칭 문화 따위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회의 문화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이름이 호칭이었고, 고개 돌려 입을 열면 그게 회의였다. 


하지만 멤버가 20명에 접어드는 지금은 아니다. 책임져야 할 이는 많아지고 업무 범위는 광활해졌다. 더는 그 박스에서 행복하지 않다.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고, 이젠 성장을 위해 이 박스를 전략적으로 폐기하려 한다.


몇 개월간의 성찰 결과, 난 어느샌가 대표의 목적을 '대표다운 대표가 되는 것'으로 간주했었고 돌이켜보면 참으로 단순한 사실을 잊고 살았다. 대표의 목적은 대표다운 대표가 되는 것이 아닌 조직의 사명 달성이라는 걸.




슈퍼 히어로인 대표가 운영하는 조직은 생존할지라도 성장할 순 없다. 전문 인력이 확보되는 성장 단계에서 리더가 만능을 지향하는 건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 한계에 발버둥 치다 보면 행복할 수 없다. 생존 이후 성장은 생존의 절실함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불행한 리더가 야심 찬 비전을 품을 수 있을까. 항상 리더의 의견이 베스트라면 그 조직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억압받고 있거나, 성장하지 못하고 있거나, 바보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리더 박스'에 갇히지 않는다는 건 위임할 수 있음을 뜻한다. 위임은 업무의 권한과 책임을 이양하는 것으로 생태계를 만든다. 그 생태계는 건강하게 발전할 수도, 분열된 정치를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생태계는 기대와 불안의 산실이다.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시장에서 생태계 만드는 건 숨 쉬듯 얘기하면서도 정작 조직 내 생태계 만드는 것엔 무지하다는 것도 실은 여기에 기인하지 않을까. 생존 이후 성장의 열쇠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것이다. 


성장에 실패한 많은 조직들의 사례는 실은 전략의 실패보다 이에 가까울 것이다. 언론들은 기업의 실패를 전략의 실패로 규정하지만 과연 그럴까. 생존에 성공한 기업이 잘못된 전략으로 무너지기도 쉽지 않다. 전략이야 린하게 개선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대표가 출근하기 싫은 조직은 살아날 수가 없다.




최근 나의 불안 역시 여기서 비롯되었다. 나는 이를 극복할만한 나만의 방법론을 찾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절대 떨칠 수 없는 그 불안에 대해 방법론을. 그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런 의문이 들 땐 전 세계 걸출한 CEO들은 타고난 사이코패스처럼 보였다.


첫 번째 방법론은 지속해서 죽음을 상기하는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우린 영원히 사는 것처럼 간주해 불안을 느끼니 죽음을 반복해 리마인드시키는 것이었다. 내 휴대폰 배경화면은 'We will die soon'이라는 문구로 채워졌고 '우린 언젠가 죽는다'고 아침부터 죽음을 되뇔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잘 작동하지 않았다. 이미 10대 때부터 죽음을 생각했기에 내성이 생긴 듯했고 어쩐지 나에게 있어 이 방법론은 일종의 현실도피 같았다. 그래. 그건 단순히 타인에게서 카피한 방법론이었다. 내 배경화면은 다시 돌아왔다.




두 번째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다. '그냥 해. 뭐 어때. 잘 안 될 때도 있지. 가끔은 실패할 때도 있지.' 그렇다. 그냥 일해도 되었다. Just Do It. 얼마나 멋진가. 이미 끼니 때울 걱정은 잊은 지 오래지 않은가? 마음을 비우고 집착하지 않는 여유가 오히려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동안은 두 번째 방법론을 애용했다. 나름 정답을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나 생각할법한 이 정도 수준의 방법론이 정답일까?' 이런 의문이 들 때 깨달았다. 이러한 '의도된 여유'는 오히려 사치스러워 나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내가 증오해 마지않는 힐링을 스스로 주입하는 꼴이었다. 내게 있어 정신 승리란 승리가 아니라 패자들의 자존감 주워 담기였다. 승리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날 즈음 세 번째 방법론을 찾을 수 있었다. 


'Satisfy the desires of Love'


그건 조직 사명에 대한 믿음을 넘은 신념이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수익 창출을 위한 전략일지 모를 바로 그 사명. 사실 사명은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던 개념이었고 이미 내재해 신념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질문을 나에게 던짐으로써 비로소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조직 내 모든 구성원이 떠나도 혼자 사명 달성을 위해 다시 시작할 수 있나?'


그 답변에 '그렇다'라고 얘기하는 순간 나를 감싸던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모름지기 조직의 리더들은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음해, 파산, 배신, 정치 등에 대한 불안들은 사라졌다. 이 질문을 통해 내 개인적 자아와 비즈니스적 자아는 일치될 수 있었다. 내 삶의 사명이 곧 조직의 사명이 되었고 조직의 사명이 곧 내 삶의 사명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조직원들과 함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의 사라짐을 가정하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나 자신의 신념에 대한 증명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출근하는 것이 아주 행복하다. 물론 매일 수십 번의 컨텍스트 스위칭이 일어나고 이슈들이 터지지만, 그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감정은 분명 행복이다. 순간순간의 등락 데이터는 더 이상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간 멘탈로 영향받던 일들을 점점 수학 문제처럼 인식하게 되었으며 일이 되지 않을 땐 감정적인 대응보다 논리적으로 이를 해결할 방법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사명감 때문에 또 열정인 듯 열정 아닌 열정 같은 분노가 터져 충돌을 일으킬 순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충돌 없는 조직이야말로 가장 위험하지 않은가. 


곧 20번째 멤버, 새로운 공간, 진화된 사명과 함께 우리 조직은 2.0을 준비하고 있고 난 가장 두려운 경쟁자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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