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초여름. 우리나라 1호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의 강의를 유튜브 영상으로 접하고, 그의 책 『거인의 노트』 를 읽었다. 그 후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시작했나 메모 어플을 보니 6월 25일부터 매일 적었고, 12월 11일 어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하루하루 적다보니 벌써 반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의 기록은 핸드폰의 메모 어플을 이용한다. '삼성노트'는 폴더를 생성하고 메모들을 모아두기 쉽다. 자동 저장 기능도 좋아서 글을 쓰다가 어플을 닫거나 다른 어플로 넘어가도 쓰던 글이 날아가지 않는다. 이동 중이거나 외출했다가 뭔가를 적고 싶을 땐 손으로 적지만 대부분은 들고 다니는 블루투스 키보드로 글을 쓴다. 가방에 항상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를 갖고 다닌다.
핸드폰 말고도 수첩 두 개를 더 사용한다. 하나는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거나 인터넷을 보다가 모르는 개념이나 이야기가 나오면 정리하는 용도로 쓴다. 나머지 하나는 일상 기록을 적는다. 펜으로 직접 글을 쓰는 건 핸드폰에 글을 쓰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직접 글씨를 쓸 때 속도가 더 느리고, 그 덕분에 쓰는 동안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힘들 때, 마음이 엉켰을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보통 수첩에 직접 쓴다. 글 쓰는 행위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
처음엔 틈틈이 있었던 일들을 적었다. 그 일이 가치 있거나 의미가 있어야 적은 것은 아니고 그냥 아무 일이나 적었다. 일단 겪은 일을 간단히 적고,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적었다. 글을 쓰는 시간과 장소를 적다가 한 달쯤 지나서부터는 시간과 장소는 적지 않았다. 한두 줄짜리 기록이 4~5개 적힌 날도 있었고 긴 기록을 남기는 날도 있었다.
일상을 기록하면서 나는 나를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평소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장소에서 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때 그 순간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냥 사라졌을 마음과 태도들이 기록 속에 담겨 있었다. 일주일 혹은 한두 달에 한 번씩 지난 기록을 읽으면서 대충 알고 있던 나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주체적 삶을 살 수 있다. 자기 욕구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잘 구분할수록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 확률이 높다.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줄이라도 적었던 지난 반 년의 기록. 그 속에는 내가 잘 몰랐던 나의 모습과 잘못 알고 있던 내가 모두 담겨 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들어 있다. 내가 커피와 술과 책과 글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써 나갈지는 모른다. 그러나 매일이 아니더라도 자주 써 나갈 것이고 꽤나 오랫동안 이어져 갈 것이다.
나를 나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께 기록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