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을 보고
이충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콜>은 보고 나면 결국 전종서라는 배우 한 사람에 관해 떠들게 되는 영화다. 20대 여성 연쇄살인범 오영숙을 연기한 전종서가 영화에서 내뿜은 화력이란 실로 엄청나서 영화의 실밥 같은 부분을 깡그리 태워 버린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개연성을 따져 보다가도 조연 캐릭터들이 기능적이고 밋밋하다고 생각하다가도 그가 등장하면, 사고는 정지된다. 그러므로 <콜>은 언제라도 멈출 수 있는 넷플릭스 영화이지만 좀체 그러기 힘든 재밌는 스릴러 영화다.
<콜>은 불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서연(박신혜)의 아빠(박호산)가 화재 사고로 죽었다는 점에서 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핵심적인 불은 박신혜와 전종서다. 기본적으로 두 배우는 모두 뜨거운 연기를 한다. 박신혜가 벽난로처럼 영화 전체를 은근하게 데우면 전종서가 토치처럼 영화 곳곳에 불을 질러 장면의 온도를 급격하게 높인다.
상대보다 끓는점이 낮고 주로 리액션을 하는 역할이기에 박신혜의 연기는 덜 부각되지만 충분히 인상적이다. 아빠에 이어 엄마까지 죽이겠다는 영숙의 전화에 욕을 내뱉고 온몸으로 절규하는 그의 모습은 TV 드라마에서 자주 보았던 심성 착한 캔디의 모습이 아니다. <침묵>(2017), <#살아있다>(2020), <콜>까지 영화배우로서의 그의 최근 행보는 대중에게 익숙한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종서는 관객이 그의 다음 역할 선택을 걱정할 만큼 잊히지 않는 연기를 선보인다. 피가 튀긴 얼굴에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19)의 전도연을, 마룻바닥에 흥건한 피를 닦을 땐 <화차>(2012)의 김민희를 떠오르게 한다. 그는 좀체 속내를 알 수 없어 상대를 긴장시키는 마력을 가졌는데 그것은 연쇄살인범의 광기와 악마성을 극대화하기도 하고, 성에 갇힌 소녀의 신비로움과 애처로움을 강화하기도 한다.
<콜>은 빨간 영화이기도 하다. 서연의 엄마(김성령)는 붉은색 매니큐어를, 영숙의 신엄마(이엘)는 붉은색 립스틱을 늘 바르며,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든 날 영숙의 드레스 코드는 레드다. 과거 서연의 집에서 넘칠 듯 끓는 냄비는 빨간색이고, 사람을 향해 겨눠지는 소화기 역시 빨간색이다. 산 사람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딸기는 새빨갛고, 죽은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피는 검붉다. 이 영화에서 빨강이 불길한 건 그것이 잘 익은 과일의 색이 아닌 죽음에 가까운 피의 색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피를 바르고 피를 입고 피를 먹으며 계속 죽음을 부른다.
스릴러 영화에서 뜻밖에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서연과 영숙이 교감하는 초반부다. 2019년의 서연과 1999년의 영숙이 이제는 사라진 큼지막한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하는 모습은 불가능하기에 애틋한 구석이 있다. 서연이 전화 너머로 들려주는 서태지의 노래를 영숙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는 장면이나 영숙이 보답으로 보낸 간식 통을 서연이 집 앞마당을 파서 발견하는 장면은 시간 영화만이 부릴 수 있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마법으로 완성된 아기자기한 장면으로 줄곧 긴장한 관객에게 숨 돌릴 틈이 되어 준다.
이쯤에서 서연과 영숙을 친구라고 불러도 될 듯하지만 어쩐지 그 말은 두 사람 사이를 정의하기에는 단순하고 맞춤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스물여덟 동갑내기에 아버지가 부재하고 엄마와 불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은 <장화, 홍련>(2003)의 장화와 홍련처럼,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의 칠월과 안생처럼 자매 같기도 하고 사실상 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둘 중 서로의 인생을 먼저 구해준 건 화재를 막아 서연의 아빠를 살린 영숙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연이다. 서연은 다짜고짜 엄마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섬뜩한 전화를 무시하지 않고 먼지 쌓인 영숙의 다이어리와 영숙이 찍힌 사진을 지하실에서 해방함으로써 영숙을 부활시킨다. 또한 서연은 오영숙이란 사람을 궁금해하고 그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영숙이 속한 X세대를 검색해보고 영숙이 좋아하는 서태지를 공부한다. 당장 사라진다 해도 상관없을, 어쩌면 죽어야만 하는 과거 여자의 존재를 미래의 여자만이 인정하고 끄집어내는 과정은 파국이 예정되었을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아름답다.
[chaeyooe_cinema]
콜 CALL
감독 이충현
영화의 실밥 같은 부분을 깡그리 지져 버리는 전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