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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21. 2020

'조제' (영석의) 조제

<조제>를 보고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은 조제와 츠네오를 조제와 츠네오라고 나란히 부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리메이크한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조제와 영석을 어떻게 부를 수 있는 영화일까. 아마도 영석의 조제라고 불러야 하는 영화이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시선을 가진 자는 바로 영석이니까 말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조제>


영석(남주혁)은 조제(한지민)를 동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영석에게서 조제의 형편에 대해 들은 후배 수경(이소희)은 조제를 딱하게 여기지만 영석은 요즘 세상에 집 있는 게 어디냐며 되레 조제를 집 있는 여자라고 치켜세운다.


또한 영석은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다나베 세이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2004) 조제를 만난 순간부터 저절로 알게 되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름은 조제고 아버진 외국인이며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는 말에도, 여행을 하도 많이 가서 이제 더는 가고 싶지 않다는 말에도, 창밖으로 호랑이를 봤다는 말에도 영석은 조제를 슬쩍 놀릴 뿐 기꺼이 그의 세상에 동참해 그 세상이 계속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영석은 결국 조제의 곁을 떠나는 사람이다. 조제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영석이 한밤중의 추위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난로를 찾으러 이부자리에서 나오는 장면이 그것을 암시한다. 이 장면에서 조제는 영석과 달리 이 정도 추위쯤은 견딜 수 있다며 이불 속에 가만히 있는다. 그럼으로써 연인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여자와 나아지길 바라는 남자로, 자리를 지키는 여자와 자리를 벗어나는 남자로 절묘하게 대비된다. 난로를 가져온 영석은 그 순간 만족하지만 간신히 몸만 데우는 삶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삶을 원했기에 조제와 이별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조제>


<조제>는 누군가에게 조제의 집 구조를 그려줄 수 있을 만큼 세세한 영화다. 로드뷰를 따라가듯 골목을 지나 조제의 집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들어가면 카메라는 작아서 보이지 않던 가게 상호를 확대하듯 곳곳의 오래된 살림살이를 비춘다.


떠다니는 먼지가 창문으로 떨어지는 햇빛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헌책이 수북이 쌓인 조제의 방과 집 뒤편 조제가 엄선한 위스키병 컬렉션이 전시된 비밀 공간은 이미지를 포착하고 수집해 특유의 안온한 무드를 만드는 데 능한 김종관 감독의 솜씨가 돋보인다.


집 밖을 나와서도 감독은 가이드처럼 깃발을 들고 이곳저곳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감독의 전작인 <최악의 하루>(2016)의 남산 숲길만큼이나 경치 좋은 단풍 길, 대관람차가 돌아가는 놀이동산과 평온한 수족관 모두 데이트 장소로써 예쁘게 화면에 담긴다. 그러나 후반부 스코틀랜드 시퀀스에까지 이르면 인물 묘사의 지분을 풍경 묘사가 차지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조제>


원작 영화와 달리 <조제>는 대학 졸업반으로 구직 중인 남자 주인공의 서사가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취업 문은 더 좁아지고 캠퍼스의 낭만이랄 게 사라진 상황에서 지방대학을 다니는 영석은 츠네오 보다 덜 활기차고 어느 정도 삶에 체념한 얼굴이다. 더 팍팍해진 청년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으로 감독은 17년 전에 만들어진 원작과 차이를 두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한다.


그러나 늘어난 영석의 서사는 영화의 톤과 매너를 깨뜨릴 만큼 이질적이고 겉돈다. 극 중 영석과 두 교수의 관계는 교수의 권력과 그들의 말 한마디에 학생의 취업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반영할지라도 중심인 영석과 조제의 관계가 위축될 만큼 몸집이 지나치게 크다. 영석과 지도 교수(이성욱)의 두 번의 면담 장면에서 교수가 드립 커피와 위스키라는 자신의 고급 취향에 대해 말하는 대목은 필요 이상으로 길며, 영석이 결혼한 여자 교수(박예진)와 부적절한 사이라는 설정은 당위성이 떨어져 두 사람이 붙는 장면 전부가 어색하다.


수경은 영석과 또 하나의 서사를 만드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청년 취업 문제를 맡은 영석 옆에서 청년 주거와 결혼 문제를 담당하는 보충적인 인물로 느껴진다. 그는 여기(고시원)보다 좋은 데서 살려면 휴학해야 한다는 대사나 결혼하기에는 겨울이 더 싸고 편하다는 대사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조제>


풍경 묘사에 분량을 할애하고 영석의 불필요한 개인 서사가 늘어나면서 조제와 영석의 공동 서사의 비중은 줄어버린다. 두 사람 사이의 깊이는 때때로 감독이 만들어 놓은 어떤 분위기 이를테면 사랑하는 것 같은, 따뜻한 것 같은 분위기로만 어렴풋이 전달된다.


무엇보다 조제의 개인 서사가 줄어들어 조제라는 인물은 표현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다. 예쁘고 슬프고 비밀스러운 조제는 자칫 사연 있는 여자로 관객에게 간단히 해석될 우려가 있다. 영석에게 부탁한다는 말 말고 조제가 할 수 있었던 말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그에게서 본명도 듣지 못했다.




[chaeyooe_cinema]

조제 Josée

감독 김종관



너무 조심한 나머지 살갗에만 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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