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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Nov 09. 2022

달리기 변곡점

에세이_사랑하는 나의 일상

“사람이 걸어 다니면 되지, 왜 뛰어야 해?”

한참 달리기가 젊은이들의 유행처럼 번지게 되어 언짢아졌다.

왠지 그 대열에 껴야 할 것 같은데

난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늘었구나

씁쓸해졌다.

사실 한두 번 뛰어 보긴 했다.

초여름의 날씨에도 짧게나마 뛰어 보니 기분이 좋아져,

‘이것이 러너스 하이인가?’ 하고

설레발을 쳤던 기억이 스친다.

결국 꾸준하지 못한, 이틀의 뿌듯했지만,

아직 무릎이 성치 않다는 것을 되새긴,

짧은 시간으로 덮어졌다.

이후 달리기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꽤 오래,

그러니까 순전히 내 입장에서 꽤 오래 달리고 있다.     


딱 봐도 운동과는 무관한 몸을 가진 사람은

욕심도 없다.

내가 그렇다.

어릴 적 엄마를 졸라, 혹은 엄마 손에 이끌려

무용도 하고 수영도 하고 농구도 배우고

힙합 댄스, 차차차도 배웠지만

뭐 하나 적성에 맞다거나 약간이라도 특출 난 것이 없었다.

태권도를 배우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무튼 엄마는 나에게 이것저것 시켜보고 깨달았는지 동생에게는 덜 시켰다.

달리기라고 뭐 다를 게 없었다.


“와아-!” 하는 함성 소리가

부근의 아파트 단지까지 떠들썩하게 했던

그 시절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선생님들께 혼나가며 배운 꼭두각시 춤도, 부채춤도, 콩주머니 던지기도 다 괜찮았지만

달리기만은 하기 싫었다.

청군 백군 이어달리기는 아예 다른 세상이었기에, 

대표로 뽑힌 친구들이 멋져 보일 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친구들처럼 목에 힘을 주어 가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학년별 달리기는... 

도대체 가족들까지 불러 놓고 왜 하는 걸까.

나는 1학년 때부터 꾸준히

‘도착’ 도장 외 어떠한 도장도 상품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늘 꼴찌만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느 해 가을 운동회 점심시간,

친한 이웃들끼리 평화롭게 김밥을 먹다

달리기 도장 이야기가 나왔다.

유독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들만 모여 있던

그 모임에서 ,

자랑할 게 넘쳐나는 아이들 옆에서,

나는 김밥만 묵묵히 집으며 침묵을 지켰다.

어른들도 나에게는 딱히 무엇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던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운동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부채춤 대장정을 마치고는

달리기 1등 도장을 손등에 받았다.

처음으로 달리기를 하고 무언가를 얻어 왔다.

그러니까 6학년 달리기는

다른 학년과 조금 달랐다.

우리는 잠시 달리다 쪽지를 뽑고,

‘흰색 모자를 쓴 사람’, ‘3학년 아무 반 담임 선생님’ 등을 찾아 헤매다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장애물을 헤쳐가며

골인을 하면 되었다.

놀랍게도 ‘3학년 아무 반 담임 선생님’은

내 옆에 계셨고

매우 적극적이고 잘 달리는 분이셨다.

선생님은 내가 그를 찾아다니기도 전에

내 쪽지를 보고는

내 손을 홱 낚아채 마구 달렸다.

나는 그렇게 끌려갔다.

그와 함께라면

어떤 장애물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질질 끌려가지 않고

좀 더 그의 발을 맞출 의지가 있었다면

우리의 기록은 더욱 놀라웠을까?

하늘을 나는 것은 이런 기분 이구나를 경험하고

나는 1등 도장을 얻었다.

그는 잠시 기뻐하더니

바람같이 그의 반으로 사라졌다.

달리기가 끝나고 모두 나와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달리기 몇 등 했어?”

“1등!”

“뭐? 민정이가 1등?!”

“선생님이 민정이 끌고 달렸어요!”     


조금 부끄러웠지만 1등은 좋은 것이었다.     


달콤했지만 내 것이 아닌 듯한 1등을 뒤로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역시나 잠시 내신에 목숨을 걸어보고자 노력했던 1년 반을 제외하고

체육 시간은 그저 앉아 떠들고 싶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직 어리지만

운동을 일찍이도 포기한 중닭들을

내버려 두지 못하고 이어달리기를 제안하셨다.


뭐요?! 이어 달리라고요?!


이렇게 또 내신이 떨어지는구나 싶었지만

선생님이 제안하신 이어달리기는 조금 달랐다.

팀을 랜덤으로 구성한 후,

팀원들이 이어 달린 총시간이

각각의 1학기 때 100미터 달리기 기록보다

많이 단축되면 단축될수록

높은 등급을 주겠다고 하셨다.

학년 계주로 뽑힐 만큼 달리기를 잘하던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달리기와 연이 없던

우리 팀의 안색이 밝아졌다.

대놓고 좌절하던 계주 친구의 얼굴도

다시 제 색을 찾았다.

선생님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도 잘 뛰고 싶어 져

매번 성실히 연습을 하였다.

대망의 평가 날,

한참 남의눈을 의식하던 시기였지만

이번만큼은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피하지 않고 기쁘게 맞이하며,

신나게 팔을 휘저으며,

앞만 보고 달렸다.

시끌시끌 웃음소리와

우리 팀 계주 친구의 우렁찬 응원 소리가 들렸다.

후련하게 들어온 나를 보고

반 친구들은 내가 집중해서 달리는 모습이

엄청 귀여웠다고 시끌벅적 맞이해주었다.

이게 과연 좋은 뜻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아 얼떨떨 거리다가

좋아하던 남자애까지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수줍게 받아들였다.

우리 팀은 6초 이상을 단축하여 1등급을 받았다.

이런 달리기라면 좋다.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보내고

내 몸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달리기는커녕 조금 빨리 걷기만 해도,

계단을 오르기만 해도

쉽게 지쳐 헉헉거렸다.

이 상태로 달리면

이미 허술한 무릎과 몸에 비해 가는 발목이 불쌍해질 것이 뻔했다.

그렇게 집 앞 하천을 달리는 MZ세대들의 달리기를

부러움 반 시기 반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우리 집 또 다른 MZ가 달리기 시작했다.

MZ는 달리기를 시작하겠다고 하더니

나이키를 하나씩 사들였다.

러닝화, 기능성 상의, 신축성이 좋은 하의,

새벽 달리기를 위한 바람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하이 서포트 스포츠 브라,

심지어 무릎 보호대도 나이키를 샀다.

나이키와 더불어 유명하다는 다른 무릎 보호대,

스포츠 테이프, 실리콘 물병,

달리기용 핸드폰 가방(?)이라지만 그냥 복대,

생소한 해외 브랜드의 무언가 들.

MZ는 풀 마라톤은커녕

10km 마라톤도 나갈 생각이 없지만,

그저 런저씨(‘런데이’라는 달리기 어플 내의 조력자)가 시키는 대로 하천을 성실히 뛰는 사람이었지만,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사 들였다.

나는 그 모습에 그럼 그렇지 했지만

어느 날 MZ의 안색이 밝아졌음을 느꼈다.

혼자만의 무언가를 해내고

조잘조잘 집에 와서 떠들고

자꾸 알아듣지 못할 주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이키를 사들이는 모든 모습이 빛나 보였다.

심지어 달리다 다쳐 한의원에 가는 모습까지도.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처서 매직이 시작되기 이틀 전,

그렇게 많은 이들을 따라 달려보기로 했다.    

지금 보다 낫겠지.

‘따라달린다민정’

그렇게 Y와 런저씨,

그리고 오프라인 런저씨의 도움을 받아

새벽과 아침의 사이의 시간 4시 45분,

현관에 놓인 신문을 들여놓고,

아직은 깜깜한 시간 덕분에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지 않고,

주황색으로 깜빡거리는 신호등에 익숙해져

바로 길을 건너고,

낯선 어둠이 두렵지 않게

함께 걷고 뛰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1분 달리다 2분 걷다를 반복하다,

약 두 달 후 30분을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달리기는 기대만큼 무언가를 크게 바꾸어 놓지는 않았다.

살이 조금 빠졌을지는 일부러 재지 않아 모르겠고,

춤을 출 때도 여전히 휘청거리는 것을 보면

코어도 아직은 잡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나이키 포함 운동복을 보면 왠지 사고 싶고

출근길 금세 빨강 불로 바뀔 것 같은 횡단보도를 보면 그리 힘들지 않게 뛰어버리는 정도.

뛰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정도.


“맨발로 달리는 인간은 행복하다.”     


전공과 무관한 듯했으나

수업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말이다.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수업만 하셨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 교수님이셔서 그랬을까.

달리지 않고 달리기 싫음에도

어쩐지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아

결국은 계속 떠올리게, 달리게 했다.  

열심히, 어느 때보다 꾸준히 달리고 있는 요즘

(사실 8주 30분 달리기 도전을 끝내고 조금 나태해졌다.),

뭐 별나게 행복하지도,

체력이 좋아진 것 같지도 않지만,

오히려 뛰고 나면 졸음이 밀려오는 와중에

씻고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매번 억울해지지만,

새벽의 달리기는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때로는 해가 뜬 아침의,

해가 진 저녁의 달리기가 되겠지만

이것이 마치 대자연의 법칙인 것 마냥

지켜져야 할 것 같다.

맨발은 어렵겠지만, 맨몸으로, 홀로, 달려야

잘 살아갈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미신 하나가 생겨버린 요즘이다.

이러다 50분을 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걸까 하다,

무릎을 다친 MZ를 보고

일단 30분만 달리는 사람으로 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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