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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Feb 03. 2023

어느 똑쟁이의 물음

에세이_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상

우리 반에는 여러 똑쟁이가 있는데

그중 한 명은 예의 바른 똑단발이다.

머리를 하나로 야물딱지게 묶고 다니 다

오른쪽 머리카락 여러 가닥이 자꾸 흘러나와, 

늘 1교시가 지나면 오른쪽 눈만 가려져

괜스레 아련했었는데,

어느 날 똑단발을 하고 와 완벽한 똑쟁이가 되었다.

간혹 학교에서 무서울 게 없는,

대부분 나보다 키가 커 올려다보게 되는 6학년 어린이들은 1학년 어린이들이 매일 지나가는 복도도 새롭다는 듯이 두리번거리며 겨우 줄지어 가면,

“우와, 진짜 작다! 귀엽다!”라고 외친다.

이때 똑단발은 혼잣말하듯이 받아치곤 한다.     

“우리가 아기도 아닌데 뭐가 귀엽다는 거야.”     

자기만 혹은 옆의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중간 크기의 목소리가 6학년 어린이들에게도 닿았을까?

덕분에 나는 종종 어디서든 허를 찌르는 똑단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쉬는 시간, 수업 시간, 점심시간,

무심히 들려오지만 똑단발인 것을 알 수 있는,

혹은 나에게 직접 또박또박 전달되는 말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한다.     


“선생님,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뭐예요?”

나는 진지하게 초록과 보라랑 고민하다

“음, 선생님은 보라색이 좋아요.” 한다.

“아, 그렇구나. 그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뭐게요?”

“음, 뭘까? 하늘색?”

(똑단발은 푸른 계열의 옷을 즐겨 입는다.)

“아니요. 저는 남색이 제일 좋아요.”

“우와, 똑단발이랑 정말 잘 어울린다.”

“감사합니다. 그럼 진보라색이 좋아요? 연보라색이 좋아요?”

사실 진보라, 연보라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역시 똑쟁이는 다르다.

왠지 눈앞의 똑쟁이가 연보라와 잘 어울려서 연보라색이라 답하는데,

똑단발은 마치 내게 연보라를 선물해 줄 듯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렇구나.”

그럼 정성을 다하고 싶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예요?”

“선생님, 선생님은 무슨 초등학교 나왔어요?”

간혹 똑단발은 내가 답하여도 자신이 절대 모를 것들을 묻고는 한다.

그냥 아무것이나 대답해 주면 될 텐데,

왠지 어린이의 질문에는

거짓이나 귀찮음 대신 진심이 더 커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생긴다.

이에 거짓과 귀찮음을 최대한 덜어 본다.

무엇을 대답해야 하나 고민한다.

왠지 정말 내 친구와 다녔던 학교의 이름을 그대로 말하기가 어색해 고민하던 나는

아예 하지 않았으면 좋을 식상한 답을 뱉고는 만다.

“똑단발은 모를 텐데... 안 알려줄 거예요. 비밀이에요!”

“아아~ 알려주세요! 제발!”

뭐라 답할지 고민하다 끝끝내 답하지 않는 나를 보고는

“쳇!”

그럴 때마다 똑단발은 똑쟁이가 아니라 아이의 모습이 된다.

똑단발 자신이 “어휴, 저 말썽꾸러기 녀석들. 못 말린다니까.”라고 소리 내어 지칭하던 

녀석들의 모습이.


“선생님,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 **선생님은 100살이라는데.”

“선생님은 200살이에요.”

“에이, 그렇게 대답하지 말고요. 아닌 거 알아요. 근데 선생님이 **선생님보다 더 적을 것 같은데.”
이때는 뭘 좀 아는 아이의 모습이.

     

“선생님은 어렸을 때 뭐가 되고 싶었어요?”

간혹 이런 질문도 한다.

이를 받으면 묻는 이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지해진다.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뒤늦게 어렸을 때 되고 싶었던 것들을 차곡차곡 꺼내어 본다.

“선생님.” 이라기에는 난 정규직 선생님이 아니고

“작가” 라기엔 왠지 로망이 더 커 부끄럽고(책을 좋아하는 똑단발 앞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의사” 는 그저 스쳐 지나갔던 장래 희망이었고...

나는 내 처지를 곱씹어 보며 오래 말을 하지 못한다.

“글쎄, 선생님은 뭐가 되고 싶었을까?”

결국 혼잣말을 하는 나를 뒤로하고 똑단발은 위로하듯이 조잘조잘 무슨 말을 이어간다,

그럼 난 고요한 복도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다음 시간을 준비하자며,

똑단발의 등에 손을 대고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똑단발은 힘차게 나보다 앞서 나아간다.

1학기에 똑단발은 여러 번 내게 물었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반 선생님인 게 좋아요?”

그때 나 몹시 초췌했었나?

마스크를 뚫고 나올 만큼?
“그럼 당연히 좋지요. 왜요? 똑단발이 보기에는 어때요?”

“음, 반반인 것 같아요.”

이런데 어떻게 거짓을 고할 고.

“선생님, 선생님은 뭐 할 때 가장 행복해요?”

“음, 선생님은 친구랑 놀 때 가장 행복해요.”
 “아, 나도 인데. 어제 해 질 때까지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아서 진짜 좋았어요.”

우리의 대화가 깊이 이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진로, 행복 이런 것은 갑자기 맞닥뜨려 빠지고 싶지 않은 이야기니까.

똑단발의 예기치 못한 물음이 오래오래 내 머리를 떠다녀 때로는 심란하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내 답을 듣고 기뻐하는 똑단발을 보자니 긴장된 마음이 풀린다.

그래, 언제나 노는 게 제일 좋지.

그건 정말 사실이야. 똑단발.


“선생님.... 아니에요.”

“선생님, 아, 아니다 까먹었어요.”

가끔은 이렇게 묻는 것을 멈추기도 한다.

똑단발의 물음을 오래오래 새기고 있는 나는 궁금해진다.

어떤 게 묻고 싶었을까?

그럼 난 어떤 대답을 하는 게 맞을까?

“선생님, 해리포터 몇 권까지 읽었어요?”

“선생님은 다 읽었지롱.”
 이런 류의 쉬운 질문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가끔은 내가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며 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똑단발 역시 나와 같이 해리포터를 좋아하지만

받아쓰기나 수학 평가보다는 만들기 활동에 열광하는 어린이인 것을.

나는 그저 내 앞의 문제를 자꾸자꾸 피하려는 어른인 것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정말 조금이라는 것을 자각한 날.

어쩌면 내가 너무 힘이 빠지고 지친 날,

언제나 가장 늦게 손을 씻고 교실로 향해

나와 똑단발 둘만 남은 복도에서의 시간,

질리지 않고 같은 것을 묻는 똑단발에게 답을 해주었다.

“선생님 제일 친한 친구는 OOO이고, 선생님은 ^^초등학교를 나왔어.”

“아~ 그렇구나.”

똑단발은 그 둘을 정말 아는 냥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자, 이제 우리도 수업 들어가자!”

“네-!”


아침에 웃는 눈을 마주하며 하는 예의 바른 인사와

도저히 이해 못 하겠는 남자 어린이들을 보며 인생 다 산 듯이 뱉는 한숨 소리,

하지만 여자 친구들과 있을 때는 한 톤 높아져 고양이 울음소리나 애기 소리를 흉내 내는 밝은 목소리,

허를 찌르는 질문,

좋아하는 것을 나누던 복도에서의 사담,

한지 공예에 들떠 맨날 공예 선생님이 오셨으면 좋겠다는 귀여운 바람,

자신에 대해 혹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사소한 것도 고쳐주는 단호함,

남색이, 연보라가, 하늘색이 잘 어울리는 얼굴.

이제 그 모든 것들을 오래 새기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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