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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Mar 23. 2016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아

이책이글 4회_이글_시차


오늘도 면접을 보고 왔다. 꽤 많은 면접을 보고 다녔더니 이제는 면접장의 분위기만 봐도 누가 합격하고 누가 탈락할지 대강 맞출 수 있게 됐다. 얼마 전까지는 대단한 스펙으로 훌륭한 대답을 하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이 주로 뽑혔었다. 하지만 요즘은 뚜렷한 소신이나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이 취업에 성공하고 있다. 진부하지만 세련되거나, 투박하지만 개성 있거나.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끼어있는 나처럼 어중간한 사람은 끊임없이 다음 이력서를 쓰게 될 뿐이었다.


면접을 보고 온 날에는 성현이를 만나곤 했다. 항상 술값을 내주는 오랜 친구다. 포장마차에 들어갔을 때 성현이는 뉴욕 여행 중이라는 여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서울과 뉴욕은 14시간 정도 시차가 나서 지난 일주일 내내 "거긴 지금 몇 시야?"로 시작하는 통화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여긴 새벽인데 화면 너머에 있는 뉴욕은 환한 대낮인걸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딱히 말을 얹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없어서 시차 같은 건 경험해본 적도 없고 어차피 느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으니까.


성현이는 여자친구의 얼굴을 보며 한참을 다정하게 통화하고 나서 전화를 끊자마자 클럽에 가자며 나를 끌고 일어났다. 하루쯤 노는 것도 나쁘지 않고 어차피 돈도 성현이가 내겠지만 오늘은 갈 수가 없었다. 보나 마나 면접도 떨어졌을 테고 교통비와 점심값 정도는 내가 벌어야 했다.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피곤하다고, 일찍 들어가 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말로 설득해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혼자 투덜대며 차로 가고 있는 성현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저 차를 타고 여기저기 같이 놀러 다니기도 했었는데 졸업을 한 이후에는 더 이상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나는 취직 준비하느라 바쁘고 성현이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 배우느라 바빠서. 아버지 회사라.. 뭐 좋겠네. 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딱히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부러움은 버린지 오래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에 대한 질투도 마찬가지고.


성현이 차가 출발하는걸 확인하고 나서 번화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술을 안 마시길 잘했다. 오래간만에 정장까지 입고 나왔으니 좀 더 비싼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핸드폰을 켜고 어플을 실행하니 순식간에 여러 콜이 떴다. 그중 가장 비싼 동네로 가는 차를 잡고 번호를 눌렀다. 바로 근처였다. 빠른 걸음으로 3분쯤 걸어서 손을 만났다. 인사를 하고 키를 건네 받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운전석 옆쪽으로 성현이 차와 같은 종류의 차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손이 멈췄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뉴욕에 가 있다는 여자친구보다 조금 전까지 마주보며 같이 앉아있던 내가 성현이와 더 먼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결코 좁혀질 수 없을 거라는 것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책이글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9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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